Vol. 36
INSIDE[오직서울책보고 다시보기] 최인훈 장편소설 《광장》 , 박목월 자작시 해설 《보라빛 소묘》
오직, 서울책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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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발견해 소개하지 않는 한 그냥 묻혀버리는 숨은 헌책들을 소개하는 〈오직, 서울책보고〉
김기태 교수의 글로 매달 여러분을 만나러 옵니다.
최인훈 장편소설 《광장》 초판본
정향사 / 1961년 2월 5일 발행
작가 최인훈(崔仁勳, 1934~2018)의 장편소설 《광장(廣場)》은 잡지 <새벽>의 1960년 11월호에 실렸다가 1961년 2월에 출판사 정향사(正向社)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광장》 초판본은 가로 128mm, 세로 186mm 크기에 양장 제책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세로쓰기로 조판된 본문은 전체 215쪽 분량이며, 간기면(刊記面) 뒤에 신간 광고를 싣고 있다. 작품 발표 당시 작가의 나이는 28세,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몰락하고 제2공화국이 들어설 무렵이었다. 작가 최인훈은 고등학생 때 겪었던 6·25전쟁과 그로 인한 민중의 고통을 훗날 의식 있는 청년답게 우려의 시선으로 깊이 들여다보았다. 그런 문제의식을 담아낸 작품이 바로 《광장》이었다. 하지만 모두 200쪽 남짓한 자그마한 책 한 권에 담긴 이 작품이 훗날 우리 현대 문학사(文學史)에 미칠 어마어마한 파장을 작가는 과연 예감했을까.
이 작품은 광복과 동시에 남북이 분단됨으로써 본격적으로 조성된 좌우 이념의 분열을 주제로 삼고 있다. 주인공 ‘이명준’은 철학과에 다니는 대학생으로서 어떤 이념이 간직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선택하기 위한 지적(知的) 모험을 결심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작품 속에서 그는 남과 북을 넘나들며 이념의 선택을 시도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진실을 발견하지 못함으로써 일종의 허무주의에 빠진다. 결국 전쟁포로가 된 이명준은 자신이 이념을 수립하는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중립국으로서의 제3세계를 선택하고, 마침내 인도로 향하는 ‘타골호’에 몸을 싣게 된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그는 광장처럼 펼쳐져 있는 바다에 몸을 던진다.
작가 최인훈의 《광장》은 단지 남북의 이념 대립에 대한 고발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밀실만 있고 광장은 없는” 남한과 “광장은 있지만 밀실은 없는” 북한 사이에서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나 할까. 이제 우리는 작품을 시작하기에 앞서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쪽에 가두어 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그럴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르고 밀실에서 광란의 부르짖음이 새어 나온다.”라고 쓴 작가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여하튼 《광장》은 작가 최인훈에게 ‘대한민국 전후(戰後) 최고‧최대의 작가’라는 수식어를 붙여 주었다. 1996년 100쇄를 돌파한 《광장》은 수십 차례 개정을 거쳐 지금도 전국의 서점에서 여러 판본이 공존하면서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2018년 7월 23일, 향년 84세를 일기로 최인훈 선생은 지상에서의 고단했던 일생을 마감하고 하늘의 별이 되었다. 이제 《광장》 초판본의 가치는 문학적 의미를 넘어 문화유산으로서의 보존이 필요할 정도로 커졌다.
박목월 자작시 해설 《보라빛 소묘》 초판본
신흥출판사 / 1958년 9월 10일 발행
박두진, 조지훈 시인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유명한 박목월 시인이 스스로 표지에 ‘박목월 자작시 해설’임을 밝히고 있는 《보라빛 소묘》는 가로 128mm, 세로 185mm 크기에 세로쓰기 260쪽 분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무선철 제책 방식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그 내용은 표지에 밝히고 있는 대로 박목월 자신의 시들을 연대기 순으로 해설하는 한편, 말미에 별도로 당대 주요 시인들의 작품을 살펴보는 ‘한국 현대시 감상’과 더불어 자신의 행적을 적은 ‘문학적 자서전’을 덧붙여 놓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책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Ⅰ. 초기_동시를 중심한 해설’에서는 12편의 작품을 다루고 있으며, ‘Ⅱ. 추천시기_추천작품을 중심한 해설’에서는 8편의 작품을, ‘Ⅲ. 청록집 시기’에서는 7편의 작품을, 그리고 ‘Ⅳ. 산도화 시기’에서는 15편의 작품을, ‘Ⅴ. 산도화 이후’에서는 모두 16편의 작품을 각각 다루고 있다. 그리고 별장의 ‘한국 현대시 감상’에서는 주요한, 변영로, 이상화, 한용운, 박종화, 김소월, 김영랑, 김동명, 김상용, 신석정, 유치환, 노천명 등 다른 시인들의 작품 24편에 대한 감상을 적고 있다. 끝으로 ‘문학적 자서전’에서는 문학적 생애를 중심으로 박목월 자신의 일대기를 요약해 놓았다.
박목월 시인은 1939년 9월 《문장》에 「길처럼」과 「그것은 연륜이다」를 발표하여 첫 추천을 받는다. 같은 해 12월 「산그늘」이란 시로 두 번째 추천을 받고, 1940년 9월 「가을 어스름」과 「연륜」으로 세 번째 추천을 받는다. 그리고 다음 달 「여백」이란 제목으로 추천 완료 소감을 발표한다. 1946년에는 김동리의 권유로 조선청년문학가협회의 준비위원으로 참가하면서 박두진, 조지훈 등을 알게 되어 같은 해 6월 6일 《청록집》을 발간하게 된다. 그리고 1955년 12월에는 첫 시집 《산도화》를 발간한다.
그런데 《보라빛 소묘》를 읽다 보면 의아한 부분도 나온다. 동리․목월기념사업회 홈페이지 소개글 ‘집안 분위기’를 보면 “박목월의 본명은 영종(泳鐘)이다. 그는 1915년 1월 6일, 경상북도 경주군 서면 모량리 571번지에서 아버지 박준필과 어머니 박인재 사이의 2남 2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고 되어 있듯이 대부분의 공식기록을 보면 박목월은 경주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문학적 자서전’ 서두에서 “내가 태어난 곳은, 경남 고성(慶南 固城).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이다. 아버님이 그곳 ‘고을’에 사시게 되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스스로 굳이 자기가 태어난 곳을 경주가 아닌 고성이라고 밝힌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이처럼 《보라빛 소묘》를 읽다 보면 그동안 알고 있었던 시인에 대한 상식을 뛰어넘어 박목월 시인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아무쪼록 이 책을 통해 우리 현대 문단의 거목이랄 수 있는 박목월 시인의 진면목을 살펴보는 귀중한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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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교수
세명대학교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초판본 · 창간호 전문서점 〈처음책방〉책방지기이기도 하며,
출판평론가, 저작권 및 연구윤리 전문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롯데출판문화대상 심사위원장 및 한국연구재단 연구윤리위원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김기태의 초판본 이야기》, 《한국 근대잡지 창간호 연구》,
《소셜미디어 시대에 꼭 알아야 할 저작권》, 《김기태의 저작권 수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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