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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6

BOOK&LIFE

[SIDE A] 너를 좋아하는 사이 나를 응원하게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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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좋아하는 사이 나를 응원하게 됐어

 

희우

작가

 

 

 

칼바람에 차가워진 손을 호호 불어가며 오픈 전 한 시간, 새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꼬박 두 시간을 더 기다렸다. 동글동글 귀여운 얼굴에 말갛게 순수한 두 눈. 엉덩이를 꿍실거리며 걸어와 털 뭉치 다리를 툭 내려놓곤 당근을 아작아작 먹는 너를 보려고. 너를 한번 와락 끌어안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며 판다지아에 들어섰다. 고생 끝에 영광이라 했던가, 두 눈으로 목격한 푸바오는 화면 속 모습보다도 더 사랑스러워 벅찬 기분이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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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스러운 푸바오 ⓒ희우


실은 어떤 존재를 열렬히 응원하고 좋아해 본 적 없었다. 직접적 관계가 없는 사람이나 동물, 캐릭터 등 그 무엇에도 마음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당장 해결해야 할 생활 고민이, 진로와 앞날이, 낫고 말아야 할 아픔이 내게 있었기 때문이다. 오직 나 하나만으로도 벅차서 다른 누구를 응원하기엔 여력이 없었다. 


그러던 내게도 누군가를 마음 깊이 좋아하는 일이 생겼다. 몸 상태가 점점 나빠져 수술을 앞두고 있던 때 에버랜드에 갔다. 수술 후에는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니까, 그전에 놀이 기구를 실컷 타보자! 하는 생각이었다. 그때 놀이공원에는 아기 판다가 태어났다는 축하 팻말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판다가 태어나는구나, 신기하다! 정도로 생각했던 게 푸바오와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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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바오를 보러가던 날 ⓒ희우


수술 후 몸은 점차 나아지고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움츠러들어 있었다. 아프지 않고 매일 9시간을 회사에서 보낼 수 있을까? 타인에게 폐가 되지는 않을까? 진로에 대한 걱정으로 보내던 어느 날, 친구가 내게 조심히 물었다.

"우리 새해에 같이 여행 가면 어때?"

약한 면역력과 저질 체력으로 친구와 여행을 떠나는 게 감히 상상이 되지 않으면서도 설렘이 가득 몰려왔다. 힘들 것 같은데, 아프면 어쩌지, 온갖 고민이 머릿속을 뒤덮는 동안 알아차렸다. 몹시 가고 싶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고민하는 것이라는 걸. 아파도 괜찮다고, 그러면 비행 일정을 당겨 바로 집으로 오자고, 충분히 쉬면서 숙소 근처만 둘러봐도 괜찮다고 친구는 나를 도닥였다. 그렇게 떠난 새해 여행은 걱정과는 달리 순조로웠다. 8시간짜리 근교 투어도 환하게 웃으며 해냈고 건강하게 웃으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매일 출근하는 친구와 비슷한 체력으로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출근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오래 고민하더라도 결국은 직접 해보지 않으면 영영 알 수 없었다. 도전하는 마음으로 회사에 들어갔다.


새내기 직장인으로서 가장 어려웠던 건 '말'이었다. 일은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부탁할 때는 언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부탁해도 되는 일인 건지. 혹은 이런 것까지 물어봐도 괜찮은 건지 영 알 수 없었다. 눈치만 보던 나는 사수가 잠깐 나갔다 돌아올 때면 조르르 따라가 "선생님, 혹시 잠깐 시간 되실까요...?"하고 메모에 적어두었던 질문들을 와르르 풀어놓곤 했다. 


신입답게 거절도 저자세로 하던 어느 날, 다른 직원이 전화로 항의를 해왔다. 내가 제시한 매뉴얼을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그냥 자기가 말한 대로 해주면 되지, 왜 굳이 양식에 맞춰 작성해야 하냐며 소리를 질렀다. 전화기 너머로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계속되는 동안 머릿속은 점차 하얘졌다. 당신이야말로, 그렇게까지 소리를 질러야 하는 일인가요? 그 시간에 양식에 기재하는 게 더 빠를 텐데... 하는 생각만 들었다. 그러나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네, 알겠으니 의견 정리해서 이메일로 주세요. 이렇게 화만 내시면 처리해 드릴 수 없습니다."

감정은 눌러두고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을 마치고 나서 온몸이 다 아팠다. 옆자리 선배들이 나를 데리고 나가 따뜻한 차 한 잔을 사주며, 잘 대응한 거라고 이상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고 위로해 주었지만 감정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퇴근길 지하철 안, 응어리진 슬픔을 달래고자 휴대폰을 켰을 때 푸바오를 다시 만났다. 알고리즘이 내게 그 아이를 데려다준 것이다. 그새 많이 큰 아기 판다 푸바오는 그 자체로 사랑스러웠다. 그 애가 내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닌데도 작은 손짓발짓까지 몹시 예뻐서 어쩐지 위로가 되었다.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컴퓨터 바탕화면을 푸바오 사진들로 바꾸어 두었다. 무례한 사람을 만날 때마다 바탕화면을 켜두고 호흡을 골랐다. 그 귀여운 생명체를 보고 있노라면 어떠한 말에도 지지 않을 힘이 생기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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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우 작가의 컴퓨터 배경화면 ⓒ희우


아기 판다의 걸음마를, 나무 타기를, 첫 독립을 열렬히 응원하는 사이 나도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씩 변했다. 푸바오가 무엇을 증명하거나 효용을 주지 않아도 그 애를 온전히 좋아할 수 있는 것처럼, 이제 막 새내기 직장인인 내가 모두 잘 해내지 않더라도 살뜰히 응원하고 싶어졌다. 선 넘는 말이나 비합리적인 항의 같은 것들이 나의 빛을 쉽게 바래게 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좋아하는 마음은 세상과 나를 구원한다.


아기 판다 푸바오의 책과 신입사원 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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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바오, 언제나 사랑해》는 강철원 사육사가 사랑스러운 푸바오의 모습을 기록한 포토 에세이다. 

 

📚 《푸바오, 언제나 사랑해》, 강철원, 시공주니어

 

곧 새로운 판생(판다+生)을 위해 중국으로 떠나야 하는 푸바오의 한국에서의 마지막 1년을 담은 책. 순수하고 호기심 많은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자면 와락 안겨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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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은 50만 부가 넘게 판매될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책이다. 

(서울책보고 글벗서점8 서가에서도 구입이 가능하다.)

 

📚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정문정, 가나출판사

 

직장인이 되고 나서 재독한 책. 크게 화를 내는 사람에게는 같이 화를 낼 수 있지만, 은근히 무례하게 선 넘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싶을 땐 종종 이 책을 꺼내 든다. 조직 내에서 보상 심리나 피해의식 같은 애매한 감정들을 관리하기에도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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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우

작가

 

매일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툭툭 털고 일어나 걷는 사람. 전교 1등, 학생회장, 서울대 합격까지. 오버 스펙으로만 살다가 열여덟에 희소 난치병 루푸스 신염을 만났다. 선명한 하루를 만들어 가는 일상을 쓴다. 

저서로는 《당연한 하루는 없다》가 있으며,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선명한 하루를 연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