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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7

BOOK&LIFE

[SIDE B] 매뉴얼 없는 인간관계에서 기억할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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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매뉴얼 없는 인간관계에서 기억할 두 가지

 

이지영

교수

서울디지털대학교 상담심리학부

 

 

Emotion Icon북&라이프 side B <책과 심리학>은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교수이자 한국심리학회 공인 임상심리전문가인 필자의 글을 통해,

치유, 개선, 회복의 방법이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오랫동안 적성과 진로를 고민한 끝에, 나는 심리학을 발견하고 내 길이라는 것을 직감하였다. 그렇게 심리학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지나온 20여 년의 내 삶을 돌아보았을 때 변치 않고 관심을 두고 좋아하는 것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궁금하고 사람을 좋아한 나는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연구하는 심리학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문득 드는 생각은 내가 사람을 좋아한 가장 큰 이유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들어가고 싶고 어울리고 싶은 인간관계의 욕구와 그것의 결핍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인간은 모두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사회적 동물로 태어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일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이 욕구의 동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욕구를 가지고 태어나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기본적인 욕구에서부터 개별적인 다양한 욕구까지 끊임없이 바라고 충족시키고자 한다. 그중 가장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는 소속의 욕구이다. 인간은 다른 누군가와 친밀감과 애착을 느끼며, 그 관계 안에 소속되고 보호받고자 하는 욕구를 갖는다. 그 욕구가 충족될 때 안정감과 안전감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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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욕구의 동물이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 소속의 욕구를 충족한다.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학교에 가게 되었을 때, 많은 아이가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보호받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점차 사회성을 배우고 친한 친구들을 사귀면서, 부모에게서 떨어져 생활하는 학교에서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유능감을 발휘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생활하는 어디에서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한 것이다. 가족관계, 친구 관계, 직장 동료 등 인간관계는 우리가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유대감을 갖게 해주고, 그 안에서 느끼는 안정감을 바탕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 학생은 공부와 학교 활동을 열심히 할 수 있고, 직장인들은 능력을 발휘하며 성취와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또한, 모든 인간이 태어나면서 충분히 충족되어야 하는 두 가지 중요한 욕구가 있다. 관심과 사랑받고 싶은 욕구와 인정받고 싶은 욕구 모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만 충족할 수 있다. 그런데 나의 경우,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은 모두 자신들의 삶이 버거웠고 양육이라고 하는 과제를 수행할 여력이 없었다. 자녀를 돌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결국 나는 어릴 때 부모와의 관계에서 마땅히 충족되었어야 할 두 가지 욕구에서 상당히 결핍된 상태로 컸다. 다행히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고 성적이 좋아서 학교생활과 시험 성적표가 나의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어느 정도 채워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관심을 주고받고, 애정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 즉 사람이 좋았던 게 아닐까 싶다. 인간관계에서 충족될 수 있는 욕구가 그뿐이랴. 함께 맛있는 것도 먹고 잔뜩 수다도 떨고 싶고, 노래방도 가고 쇼핑도 하고 가벼운 취미활동도 함께 하고 싶다. 욕구가 충족될 때 인간은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고, 심리적 및 신체적으로 건강한 상태에 놓인다. 그러나 욕구가 좌절될 때, 불만족스럽고 불쾌한 감정을 느끼며 굉장히 고통스러운 상태에 놓인다. 그래서 혼자 있는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사회적 유대감을 잃고 고립감과 외로움이라는 가장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으며 불안과 두려움을 느낄 뿐 아니라, 자기조절능력과 사고능력이 손상되는 등 신체적 손상까지 이를 수 있다. 그 고통이 너무 크다 보니, 자해나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인간관계를 다가가고 싶으면서도 선뜻 망설이고 두려워하는 이유는, 과거 인간관계에서 받은 상처 때문이다. 상처에 관해 쓴 저서 나를 잃어가면서 지켜야 할 관계는 없다에서 나는 상처를 이렇게 정의했다.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에 대해 가지고 있던 믿음이 흔들리거나, 부정적인 방향으로 깨지고 훼손되었을 때 정신세계가 흔들리는 현상이 상처이다. 상처받으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믿음, 심리적 구조가 찢어지면서 놀라고 당황스럽다. ‘이게 뭐지?’ 이해가 되지 않고 혼란스럽고, 자신의 경계 및 세계를 침범한 것에 대해 화가 나고 복수하고 싶은 공격성이 올라온다. 그러나 어떻게든 살아야 하기에 흔들린 구조를 바로 잡고, 찢어진 부분을 붙여야 하고, 무너진 믿음을 다시 세워야 한다. 그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럽기에 다시 또 그 경험을 하게 될까 불안하고 두려워 사람에게 다가가기가 조심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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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삶의 중심은 자기에게 있나요? 아니면 타인에게 있나요?"

나를 잃어가면서 지켜야 할 관계는 없다》, 이지영 지음, 스몰빅라이프, 2020

 

 

심리학자 아들러의 사상을 담은 책 《미움받을 용기》에서 인간관계는 모든 행복의 근원이자, 고민과 고통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관계 안에서 욕구를 잘 충족시켜 나가는 방법과 그 안에서 상처를 피하고 잘 다룰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하는 인간관계에 정답이라는 것이 있을까. 인간관계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매 순간 움직인다. 어떻게 변해갈지 예측조차 어려운 것이 관계이다. 나 또한 지금도 인간관계를 배워가고 있다. 절대 친해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람과 가까워지기도 하고, 변치 않을 것 같은 관계가 등을 지기도 한다. 그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절대로 극복하지 못할 것 같았지만, 시간이 흘러 상처가 소화되고 떠나보낼 수 있게 되면서 그 사람과의 관계도 회복되기도 한다. 

 

그러나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들이 있다. 아무리 소화하려고 노력해도, 이해해 보려 해도, 잊어보려 해도 자꾸만 떠올라 다시 또 현재진행형으로 상처를 받는다. 마치 그 상처가 반복해서 재현되는 끔찍한 마법에 걸려 버린 것만 같다. 이들은 자신들의 고통에 대해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라고 항변하기도 한다. 바로 자존감이 손상되는 상처를 받을 때, 그 상처를 쉽사리 회복하기 어렵다. 적극적으로 그 사람을 무시하고 함부로 했을 때, 특히 따돌림이나 폭력, 학대가 대표적인 예이다. 학창 시절에 따돌림과 같은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평생 그 시간에 갇혀 고통스러워하며, 인간관계를 맺어가는데 영향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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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에게서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지음, 전경아 옮김, 인플루엔셜, 2014 @대광서림_4,000원

   

매뉴얼이 없는 인간관계라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히 기억하고 조심하면 어떨까 싶다. 바로 누군가의 자존감에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 조심하고 우리와 함께 하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것이다. 《미움받을 용기》에서 존중이란 인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사람이 그 사람답게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두 가지를 실천하려 노력한다면, 인간관계가 조금은 더 달콤하고 행복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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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교수

서울디지털대학교 상담심리학부

 

서울대 심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고,

감정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하면서 감정을 이해하고 다루도록 코칭하고 있다. 

《정서 조절 코칭북》, 《생각이 크는 인문학:감정》, 《어린이 심리 스쿨》,

《나를 잃어가면서 지켜야 할 관계는 없다》등의 다수의 감정 관련 저서를 출간했다.

KBS1 라디오 <정용실의 뉴스브런치>의 <뉴스브런치 부설 심리연구소>에 고정 출연하고 있고,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이지영 교수의 감정코칭>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