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27
SPECIAL[오은의 오늘의 시] 헌책_헌 기억
헌책
―헌 기억
오은
낯선 곳에 가면
온몸의 신경이 한꺼번에 일어나
익숙한 곳을 찾는다
편의점, 카페, 정류장……
어디에나 있는 것이
여기에도 있어서 다행이다
저 멀리 책방이 보인다
어디에도 잘 없는 것이
여기에는 있어서 실로 다행이다
책방에 가면
수족이 바빠진다
이 작가의 신작이 나왔구나
이 책 왠지 끌리는데?
이 계절에 딱 걸맞은 책이네!
미련을 훌훌 떨쳐버리려고 왔는데
사연 보따리가 양손 가득하다
집에 돌아와
책장 앞에 서면
수족이 묵묵하다
거기에 있던 것이
여기에도 있다
샀던 책을 또 사면
먼저 산 책은 헌책이 되나?
기세등등한 새 기억에 눌려
기억은 헌 기억이 되나?
두 권이 된 책을 마주 보게 한다
기억끼리도 사이좋게 지내야 하므로
오은
시인
이따금 쓰지만, 항상 쓴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살지만, 이따금 살아 있다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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