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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7

SPECIAL

[헌책보고 고전보고] 인간관계의 과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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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보고 고전보고 Ep. 17

인간관계의 과도기

 

키두니스트(Kidoonist)

웹툰 작가,  편식하는 독서가

 

Emotion Icon<헌책보고 고전보고>는 헌책과 고전문학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이며,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현대사회는 소위 아싸가 살기 좋은 사회라는 말이 있다. 과거보다 직접적인 인간관계로부터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지인에게 직접 묻지 않아도 검색 한 번이면 온갖 정보를 알아낼 수 있으며, 적절한 능력과 의지만 있으면 사람을 마주하지 않고 생활비를 벌 수도 있다. 혼자 즐길 수 있는 취미활동도 사방에 널려 있다.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비대면 사회에 가까워진 것이다.

 

그에 따라 사람들은 인간관계에 더 무덤덤해졌다. 지인과 인연을 끊는 것 역시 쉬워졌다. 과거에는 결코 관계를 쉽게 단절할 수 없었고, 관계와 평판의 악화가 쉽게 고통으로 이어졌다. 고전 작가의 대명사인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으로도 알 수 있다. 《죄와 벌》에서 두냐와 소냐는 자신에 대한 불미스러운 소문이 한달음에 퍼져 고통받았으며 《아저씨의 꿈》에 나오는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부인은 오지랖 넓은 이웃들의 행동에 수시로 골머리를 앓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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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오른쪽 책 표지 사진)는 19세기 후반의 뉴욕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작가인 이디스 워튼(왼쪽 사진)은 이 소설로 1921년에 여성 최초 퓰리처상을 받았다.  

 

다소 극단적인 예이지만,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는 좁디좁은 사교계 안의 숨 막히는 관계 묘사가 일품이다. 좌우지간 오프라인 커뮤니티가 전부인 전근대 사회에서 주변인과의 관계란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에는 무던하게, 남의 평판에는 예민하게 반응하며 사회생활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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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두니스트 Kidoonist


 

물론 이제는 과거의 일일 뿐이다. 2020년대에는 10년 가까이 같은 집에 살아도 옆집과 인사조차 나누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대로라면 미래에는 어떻게 될까? 세상은 너무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앞으로는 정말이지 남과 대화할 일이 손에 꼽을 사건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우리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인간관계에서 자유롭지만, 여전히 관계라는 개념은 심리적으로 깊이 각인되어 우리를 옭아맨다. 온라인 문화가 발달했어도 그 온라인상에서 사람들은 친구 관계를 맺거나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동네 카페라도 갈라치면 수많은 사람과 마주친다. 비대면 직업이 과거와 비교해 늘어나긴 했어도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학교나 직장에서 의무적인 인간관계를 맺는다. 눈치를 보고 때로는 갈등을 겪으며 말이다. 이 모든 일은 사람들이 여전히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에 벌어지는 것이다.

상기할 점은, 많은 이들이 인간관계에서 행복보다는 피로감을 호소한다는 것이다. 명확한 답이 없고 항상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완전히 혼자만 두면 어느 순간 외로워진다는 점이 재미있다. 어쩌면 지금 시대는 과도기이기 때문에 인간관계에 대한 피로감도 가장 심한 시기일지 모른다. 지금은 완전히 개인이 집단 속에 녹아들어 사생활의 개념도 없었던 전근대 사회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비대면 생활이 가능한 미래적 사회도 아니다. 아직 그런 사회는 아시모프의 소설 같은 SF 작품 속에만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 혼자 살아갈 수 없다. 가족, 직장동료, 친구, 지인과 같은 기본적 인간관계에 신경을 쏟아야 한다. 이어지고 끊어지는 관계를 고민하며, 때로는 누군가가 나를 신경 써 주는 것에 행복을 느끼며 말이다. 이것이 주는 피로감은 우리가 이 애매한 시대에 여전히 사회에 속해 있어서 치르는 대가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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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두니스트 Kidoonist


그러므로 지금은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 인간관계에 염증이 느껴진다면, 훌륭한 비대면 취미인 독서를 이용하자. 책 속에는 관계가 곧 삶이 되어버린 옛날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이 있다. 그리고 관계가 거의 소멸한 먼 미래를 다루는 것들도 있다. 그사이에 위치한 우리는 훌륭한 텍스트를 통해 세상을 고찰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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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두니스트(Kidoonist)

웹툰 작가, 편식하는 독서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전 문학, 그중에서도 장르 문학 위주로 읽는 습관이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40여 권의 책을 만화로 리뷰했으며 누적 조회 수 80만 회를 기록했다. 

수입의 상당 부분을 책 사는 데에 쓰고 있으며 언젠가 개인 서재를 갖고픈 꿈이 있다. 

현재는 좁은 공간에서 SF와 추리물, 그 외 장르를 어떻게든 분류하고 있다. 

영국 여행 중 셜록 홈즈 박물관과 해리 포터 스튜디오를 가봤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고전 리뷰툰》, 《고전 리뷰툰 2》를 지었다.

 

 

 

 

 

섬네일 : 영화<순수의 시대>(1993) © 다음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223#photoId=148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