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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4

SPECIAL

[헌책보고 고전보고] 만화의 주소, 문학과 영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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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보고 고전보고> Ep. 14

만화의 주소, 문학과 영화 사이

 

키두니스트(Kidoonist)

웹툰 작가,  편식하는 독서가

 

Emotion Icon<헌책보고 고전보고>는 헌책과 고전문학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이며,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같은 책이라도 만화는 다른 문학 서적보다 훨씬 대중적인 장르이다. 살면서 독서를 일절 안 하는 사람도 만화책은 곧잘 읽어내고는 한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소재나 연출, 무엇보다 비주얼에 있을 것이다. 만화에는 그림이 있어 직관적으로 다가갈 수 있고 코믹한 연출이 포함된다. 그만큼 소비되는 시장 역시 방대하며 즐기는 사람도 아동부터 성인까지 폭넓게 분포한다. 그러나 영상 매체가 선호되는 현대에 영화만큼의 파급력을 가진 것 같지는 않다. 만화에는 그림이 있되 움직이지는 않고, 코믹한 대사가 있되 그것이 소리로 들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면에서 만화는 소설과 영화의 중간쯤에 있는 장르로 보인다. 비교적 현대적인 장르임에도 그 속에는 아날로그의 유산이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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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두니스트

 


따라서 이하의 글은 만화를 문학과 영화 사이에 놓인 징검다리로 상정해 쓰였음을 밝힌다. 공교롭게도 필자의 직업은 케케묵은 문학을 만화로 소개하는 일이다. 현대인에게 접근성이 떨어지는 고전문학도 만화의 연출을 빌려서 표현하면 한결 쉽게 느껴진다. 이 효과를 실감하려면 만화만의 장점을 활용해야 한다. 원작에서 온갖 묘사를 늘어놓는 강렬한 비주얼은 그림 한 컷으로 간단히 표현할 수 있으며, 놀라는 장면은 다소 과장하여 코믹하게 연출할 수 있다. 연달아 이어지는 줄글은 컷 별로 딱딱 끊어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연출할 수 있다. 감사하게도 그렇게 만화화된 요약을 보고서 문학에 입문하시는 독자분들이 많다. 사실 이전부터 문학을 만화화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있어왔다. 멀리 갈 것 없이, 한때 능인출판사가 세계고전문학을 만화로 만들어서 현재 20~30대의 어린 시절 독서에 일조하지 않았던가. 당장 필자가 해당 시리즈로 《폭풍의 언덕》을 읽었으니 말이다. 일본에서는 진작에 비슷한 시도가 있던 것은 물론, 유명 공포 만화가인 이토 준지가 《프랑켄슈타인》과 《인간 실격》을 만화화하기도 하였다. 이토 준지의 기괴한 그림체로 재탄생한 《인간 실격》은 원작의 침울하고 차분한 분위기와 뒤섞여 시너지 효과를 보여주었다. 만화화된 텍스트란 이렇듯 새로운 힘을 지닌 것이다.

여기까지, 평소의 습관 탓에 고전문학을 만화화한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이대로 이야기를 끝내는 것은 온전히 만화로서 그려진 명작을 무시하는 처사일 것이다. 그러므로 만화 그 자체로 우리의 기억 속에 남은 작품들도 이야기하려 한다. 만화는 텍스트에 비하면 역사가 오래된 장르는 아니나 이미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때로는 완전한 대중의 색채로, 때로는 예술적이고 작가주의적인 색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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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책보고 <오직서울책보고> 쇼케이스 서가에서 판매중인 고우영의 《삼국지》와 《수호지》 세트. 초판본이라 더 가치가 높다.

 

그 흔적은 서울책보고 안에서도 접할 수 있다. 빛바랜 만화잡지들이 헌책방 사이에서 유물처럼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창 사회생활을 할 세대라면 어릴 때 <윙크>나 <르네상스> 등 다양한 만화잡지를 접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그 위상은 웹툰이 물려받았으므로, 잡지 속 국산 만화들은 사실상 과거의 유물이다. 2010년대 이후에 태어난 분들은 두꺼운 갱지 책 안에 여러 만화가 두루 실린 것을 신기하게 여기리라.

물론 과거의 유물이 잡지에만 있지는 않다.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만화를 광범위하게 좋아했고 그만큼 다양한 명작을 접할 수 있었다. 청소년기에는 고우영의 《열국지》나 《초한지》를 읽으면서 울고 웃었으며, 일본만화에는 진작에 깊이 빠져 각종 소년 만화를 섭렵했다. 때로는 데즈카 오사무나 쓰게 요시하루 같은 오래된 작가들의 작품도 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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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두니스트


그러면서 느낀 점은, 만화는 텍스트처럼 어휘만으로 기나긴 심상을 설명할 수는 없으나 시각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고, 영화처럼 화려한 연출을 해낼 수는 없으나 독백과 컷 신을 활용한 예술적인 연출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문학적 역량을 지닌 여러 만화가가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하여서 가능한 결과였다. 

《슬램덩크》의 히트로 우리 세대에 만화가 얼마나 소중한 문화로 자리 잡았는지를 알 수 있는 요즘이다. 이 기회에 한숨 돌릴 겸 어릴 적 좋아하던 만화를 들춰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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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두니스트(Kidoonist)

웹툰 작가, 편식하는 독서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전 문학, 그중에서도 장르 문학 위주로 읽는 습관이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40여 권의 책을 만화로 리뷰했으며 누적 조회 수 80만 회를 기록했다. 

수입의 상당 부분을 책 사는 데에 쓰고 있으며 언젠가 개인 서재를 갖고픈 꿈이 있다. 

현재는 좁은 공간에서 SF와 추리물, 그 외 장르를 어떻게든 분류하고 있다. 

영국 여행 중 셜록 홈즈 박물관과 해리 포터 스튜디오를 가봤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고전 리뷰툰》, 《고전 리뷰툰 2》를 지었다.

 

 

 

 

 

섬네일 : 영화 <폭풍의 언덕>(2011) © 다음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66090#photoId=822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