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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4

SPECIAL

[오은의 오늘의 시] 헌책 -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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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

―다시

 

                      오은

 

 

읽다가 포기한 책이 있다

포기할 때마다 책은 낡아갔다


가만두었는데도 

책등은 바래고

표지에는 먼지가 쌓였다


제목은 힘을 잃고

손끝만 대도 책장은 바스러질 것 같다

가만두기만 했는데도


어쩌면 가만두기만 해서

책은 책이기를 그만두기로 한 게 아닐까


다시 책을 펴는 마음은

낯선 곳에 바로 서겠다는,

낯부끄러운 것을 바로잡겠다는,

낯익은 마음


다시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포기할 때마다 책이 낡아갔듯

포기할 때마다 나는 늙어갈 것이다


표지를 노크하자

다시 피기 시작하는 낯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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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

시인

 

이따금 쓰지만, 항상 쓴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살지만, 이따금 살아 있다고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