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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4

BOOK&LIFE

[SIDE A] 《슬램덩크》의 여운을 이어가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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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덩크》의 여운을 이어가고 싶다면

 

이재민

웹툰IP평론가

 

 

 

200만. 

1월 4일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한 달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쌓아 올린 숫자다. (편집자 주 : 작성일 기준 200만이며, 편집일(2월 17일) 기준은 301만입니다) 3040 아저씨들만 가는 줄 알았더니, 여성 관객 비율은 47.5%에 달하고, 20대도 18.7%(모두 CGV 기준)로 적지 않다. 만화책은 2월 중순까지 주문 들어온 분량만 100만 부. 한국에서 만화책이 이렇게 잘 팔린 것이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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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더 퍼스트 슬램덩크> 포스터 © 다음영화

 

20대 초반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장 충격을 받았던 건, “《슬램덩크》를 안 봤다.”라는 말이었다. 어떻게 《슬램덩크》를 안 볼 수가 있지? 하는 아저씨의 마음을 눌러두고 이유를 물으니 지금 주로 보는 만화와 다르기 때문에, 흐름이 느리게 느껴진다는 거였다. 그래도 극장판이 나오고 난 후, 모두 슬램덩크를 손에 쥐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느꼈다. 아, 익숙하지 않은 것을 익숙하게 보게 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구나. 특히, 책 판형보다 스크롤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출판만화를 보게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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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램덩크 신장재편판 시리즈> © 네이버책


그도 그럴 것이, 《슬램덩크》는 우리나라에서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소년챔프에 연재했고, 총 31권으로 완결된 작품이다. 당시에는 정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여기에 서장훈, 우지원, 현주엽, 허재, 문경은 등 슈퍼스타들이 배출된 ‘농구대잔치’, 시카고 불스의 마이클 조던의 3회 연속 우승(1991~1993), 그리고 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와 보여준 ‘라스트 댄스(1996~1998년)’까지 이어지며 말 그대로 농구가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엄청난 인기종목으로 자리 잡게 됐다. 그때 우리나라에는 인터넷이라는 신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2000년대가 되어서야 PC통신을 벗어나 ‘진짜’ 인터넷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게 모두 1990년대의 이야기니, 2000년대에 태어난 사람에게 《슬램덩크》는 80년대 후반생이 듣는 “국풍 81” 같은 느낌이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스포츠 만화, 그중에서도 농구 만화는 쉬었던 적이 없다. 《슬램덩크》를 보고 자란 세대가 만화가가 되고, 그중에서 농구를 사랑하는 작가가 다시 농구 만화를 그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면서 바뀐 것이 있다. 바로 플랫폼이다.


 

〈지랄발광〉: 파란에서 네이버까지


2005년부터 2007년 연재한 〈지랄발광〉은 ‘고등학교 농구’라는 점은 《슬램덩크》와 같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5명이 한 팀이 되는 농구가 아니라 반코트를 쓰는 3대3 농구를 주된 소재로 활용했다. 엘리트 체육팀이 아니라 농구 동아리들이 참여할 수 있는 3대3 농구를 소재로 사용하면서, 당시 치러지던 중고교 3대3 농구에 관한 관심도 높아졌다. 또, 당시에 유행하던 게임 ‘프리스타일’의 인기에 힘입어 〈지랄발광〉은 당시 프리스타일을 서비스하던 파란닷컴에서 연재가 되기도 했다. ‘진짜’ 인터넷이 들어오면서 생겨난 문화적 변화였지만, 아직 PC 중심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PC 앞에 앉아서 웹브라우저를 켜고 서비스에 접속해야만 볼 수 있는, 말하자면 허들이 많은 것이 당시 웹툰 플랫폼의 한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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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지랄발광〉 © 네이버 시리즈, (오른쪽) 단행본 《지랄발광》표지 © 예스24

 

이후 파란닷컴이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볼 곳이 없어졌던 〈지랄발광〉은 2013~14년 KT의 웹툰 서비스인 케이툰에서 재연재를 시작했다. 파란닷컴에서 서비스할 당시인 2005년과 비교하면 8년의 시간이 지난 만큼 서비스 환경도 달라졌는데,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고 유료 웹툰이 판매되기 시작하는 2013년이었던 만큼 작화의 퀄리티는 우수했지만, 스마트폰 시대로 접어든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분량과 이미 한번 소비된 서사의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랄발광〉은 여전히 서비스 중이다. 지금도 네이버 시리즈에서 감상할 수 있는 작품으로, 첫 연재로부터 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서비스되고 있다는 점은 이 작품이 가지는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지표다.


 

〈가비지타임: 스마트폰 시대의 농구 만화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 만화는 대변혁기를 맞이한다. ‘이게 무슨 만화야?’라는 비아냥을 듣던 웹툰이 스마트폰이라는 천군만마를 얻어 기존에 만화를 보지 않던 독자들까지 포섭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기 전에 잠깐, 출퇴근길이나 등굣길에 잠깐 보던 웹툰이 점점 삶 깊숙이 파고들면서 이젠 긴 서사의 만화들이 가능해졌다.


그 시대에 등장한 만화가 〈가비지타임〉이다. 3040세대에게 《슬램덩크》가 가지는 위상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가비지타임〉이 가지는 의미는 각별하다. 한국을 배경으로 전국대회를 그려내는 현실적인 농구 만화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6명의 부원만으로 전국대회 준우승을 이끈 부산 중앙고를 모티프로 작품을 끌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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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시리즈의 가비지타임. 별점이 매우 높다. © 네이버 시리즈

 

스마트폰 시대에 걸맞게 스타일리시한 작화와 컬러, 그리고 시원시원한 연출로 주목받은 이 작품은 2017년 네이버웹툰 최강자전 8강에 진출했던 작품이다. 독자들이 투표해 뽑는 공모전에서 8강 진출에 그쳤지만, 포텐셜을 인정받아 인기리에 연재 중이라는 점 역시, 출판만화 시장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형태의 작품이다. 오로지 웹툰을 위해 기획된, 스마트폰 세대를 위한 작품인 셈이다.

 

Emotion Icon

 

이처럼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나오기까지 31년간, 한국의 만화 생태계는 수없이 변화해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농구만화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출판이 기본이던 90년대 최고의 히트작 《슬램덩크》를 보고 자란 김인호 작가가 선보인 3대3 농구 만화 〈지랄발광〉은 새로운 시대에도 여전히 농구만화가 통한다는 걸 보여줬다. 한편, 2010년대에는 한국의 고등학교 농구를 배경으로 한 2사장 작가의 〈가비지타임〉이 또 다른 청춘을 뜨겁게 만들고 있다.


 

출판에서 PC로, PC에서 스마트폰으로. 우리가 만화를 감상하는 플랫폼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건 작가와 독자들의 농구를 향한 열정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고, 단행본도 읽었지만,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은 당신을, 뜨거운 농구만화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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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

웹툰IP평론가

 

만화를 읽고 글 쓰는게 일인, 덕질이 직업인 사람.

만화와 웹툰계의 정보를 필요한 곳에 나르는 보부상처럼 일하고 있다.

<웹툰 입문>을 동료 평론가들과 함께 썼고,

2023년부터는 한국만화가협회 소속 만화문화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섬네일 : 진연수 기자, <20여년만에 영화로 돌아온 '슬램덩크' 돌풍>, 2023.01.08. © 연합뉴스 https://m.yna.co.kr/view/PYH20230108064200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