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Vol. 22

BOOK&LIFE

[SIDE A] 기록하면 뭐가 좋아요? 하는 물음에 대해

리스트 북앤라이프A.jpg

 

 

기록하면 뭐가 좋아요? 하는 물음에 대해

 

김신지 

작가

 

 

 

 

고백하자면, 나는 새해가 시작되는 걸 누구보다 다행스럽게 여기는 사람이다. 다짐이 잦은 데 반해 의지는 약한 사람으로서, 시간에 그 같은 구분선을 두지 않으면 ‘잘살아 보려는 마음’이 쉬이 휘발되기 때문이다. 새해에는 지난해 후회되는 일들일랑 과거로 밀어두고, ‘여기서부터’ 새 마음 새 뜻으로 시작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럴 때 우리 마음을 붙잡아줄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기록이다. 새해는 애석하게도(?) 365일마다 한 번씩만 돌아오지만, 기록하는 사람이 되면 기록 자체가 잘살아 보려는 마음을 상시로 ‘새로 고침’ 해준다. 


몇 년째 하고 있는 기록 몇 가지를 소개하면 이렇다. 아침에 일어나 매일 창밖 풍경을 같은 구도로 찍고 계절의 변화를 촘촘히 적어두는 ‘오늘 도착한 아침’이라는 기록. 한 페이지에 같은 날짜의 5년을 모아볼 수 있는 5년 일기장 쓰기. 아무리 고단했던 하루라도 좋은 순간이 하나쯤은 있었다는 걸 기억해두고 싶어서 하루에 하나씩 나에게 작은 기쁨이 되었던 순간을 모아두는 ‘행복의 ㅎ’ 기록 등. 산책하며 만난 장면들을 한군데 모아두는 ‘산보 일기’ 계정, 근사한 구름을 볼 때마다 찍어서 날짜와 함께 기록해두는 ‘구름 수집’ 계정도 있다. 

 

아침 하늘.jpg

▶ 오늘 도착한 아침 ⓒ김신지 

 

이중 몇몇은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라는 책에서 소개한 기록이다. 책을 내고 난 후, 온·오프라인 강연에서 만난 많은 사람이 기록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해왔다. 그 물음들을 정리해 괴나리봇짐처럼 메고 다니며, 나는 전국의 도서관이나 강연장에서 다음과 같이 답하곤 한다. 

 


첫 번째 질문. 매일 비슷한 하루를 기록할 필요가 있을까요?

‘비슷한’에 두 줄을 긋는다. 매일의 하루는 비슷하지 않다고, 오늘은 오늘뿐이라고.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내가 누군가와 나눈 대화, 잠시 웃었던 순간, 문득 마음에 들어온 풍경…. 하루에 깃든 디테일 속에서 그런 고유한 정보는 매일 바뀐다. ‘202n년 n월 n일’이라는 하루는 우리 삶에 단 하루밖에 없는 날이다. 바꾸어 말하면, 오늘 안에는 오늘이어서 가능한 기록이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섬네일기록1-5년일기장.jpg

▶ 5년 일기장 ⓒ김신지 

 


두 번째 질문. 제 삶은 너무 평범해서 기록할 만한 게 없어요. 

이 질문에는 ‘평범해서’에 밑줄을 그으며 말한다. 그 평범함이 곧 각자의 고유함이라고.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오늘 하루를 짧은 일기로 남겨본다면, 거기엔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적힐 것이다. 내가 나로 태어나 나로 살기 때문에 생기는 모든 이야기는 고유한 것이다. 책에 쓴 것처럼 ‘삶은 단 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의 디테일을 가장 잘 기록할 수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세 번째 질문. 기록하면 뭐가 좋은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이 고민에는 내가 기록을 시작한 이유이자, 지금껏 이어갈 수 있는 동력에 대해 답한다. 기록은 결국 삶에서 지금 뭐가 중요하냐고 스스로에게 매일 묻는 일이다. 365일, 24시간 내게 일어난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없기 때문에 책상 앞에 앉아 일기를 쓸 때,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일상 기록을 이어나갈 때, 그 작업은 곧 ‘지금 이 시절의 나에게 중요한 것’을 남기는 일이 된다. 시간에 휩쓸려 살아간다는 헛헛함이 기록을 하면서 나만 아는 충만함으로 바뀌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계속 묻고, 덜 중요한 일에 애먼 힘을 쓰지 않으며, 소중한 것을 계속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방향을 잡아주는 일이 기록의 역할이기 때문에. 삶의 방향키를 내가 쥐고 있다고 감각할 수 있는 사람은 쉬이 길을 잃지 않는다. 내가 적어온 것들이, 적어갈 것들이 계속해서 길을 내어줄 것이므로. 

 

기록에도 제철이 있다면 연말과 연초일 것이다. 기록하고 싶은 마음을 예열해주는 책으로는 물론 《기록하기로 했습니다》가 있지만(진담입니다Emotion Icon), 두 권의 책을 더 추천한다. 

 

Emotion Icon윤혜은 《일기 쓰고 앉아 있네, 혜은》 

열여덟 살에 세뱃돈으로 ‘십 년 일기장’을 산 이래 13년간 성실하게 하루치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적어온 ‘일기인간’ 윤혜은 작가의 이야기. 비슷해 보이는 하루가 “실은 얼마나 촘촘하게 구성돼 있는지, 그러한 매일이 무너지지 않도록 내가 어떻게 애쓰고 있는지” 보여주는 일기의 특성이 이만큼 잘 드러나 있는 책도 없을 것이다. 작가가 실제로 쓴 일기들이 적재적소에 등장해 읽는 사람의 마음을 수시로 움직인다. 추천사에 적힌 유희경 시인의 말처럼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구나 일기장을 사러 가고 싶어질 것이다. 

 


Emotion Icon이승희 《기록의 쓸모》 

마케터 ‘숭’으로 알려진 이승희 작가의 일과 기록 이야기. “기록을 남기는 삶은 생각하는 삶이 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SNS부터 업무일지, 영감노트, 여행노트, 메모 앱, 녹음 앱, 유트브 재생 목록까지 전방위적인 기록의 예시와 방법들이 나와 있다. ‘일을 잘하고 싶어서’ 기록을 시작했다는 그는 이 책에서 기록이 어떻게 나를 성장시키는 자산이 되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기록이 생각의 레퍼런스가 되는 과정이 궁금한 분, 나의 성장과 일에 도움 되는 기록 방법을 고민하는 분에게 추천하고 싶다. 

 

 

기록3.jpg

▶ 기록 ⓒ김신지 


 

기록은 미래의 나와 오늘의 내가 공조하는 일이기도 하다. 책상 앞에 앉았지만 무엇을 기록해야 할지 막막해지는 순간에 미래의 나에게 묻는 것이다. 오늘이란 시간 속에 있었던 일 중 어떤 장면을, 감정을, 사건을, 적어두어야 한 달 뒤, 일 년 뒤의 내가 ‘아, 이걸 남겨둬서 다행이야’라고 생각할까? 지금의 내가 고르지 못하는 순간의 의미를 미래의 나는 분명 알고 있다. 5년 일기장을 쓸 때 나는 늘 이런 방식으로 오늘을 회고한다. 아마 내년의 나라면 오늘 있었던 일 중 이걸 적어둔 게 반가울 거야. 누구를 만나 어떤 얘길 나눴는지 궁금해할 거야. 매일의 기록은 오늘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부쳐두는 편지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혹은 오늘 저녁에라도 작은 불빛 하나만 켜둔 책상 앞에 앉아 자기만의 기록을 시작해보기를.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공백’으로 두지 않기 위해. 평범한 일상을 특별히 소중하게 여기기 위해. 무엇보다 내가 나여서 쓸 수 있는 고유한 이야기를 남기기 위해. 

 

 

김신지 프로필.jpg


김신지 

작가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사람 

일상에 밑줄을 긋는 마음으로 자주 사진을 찍고 무언가를 적는다.

지은 책으로는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평일도 인생이니까》,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