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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1

BOOK&LIFE

[SIDE B] 지식의 착각과 정보 리터러시 - 월간지에 나왔던 ‘네시’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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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착각과 정보 리터러시 

- 월간지에 나왔던 ‘네시’를 떠올리며

 

임현규

심리학도, 《만만한 심리학개론》 저자

 

 

Emotion Icon북&라이프 side B <책과 심리학 >은 국문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작가가  

학문 세계의 전문적 지식을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책과 심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WWW, 즉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의 도입으로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전까지 종이 잡지는 최신 정보의 유통 매체였다. 신제품 출시부터 행사 안내, 그리고 전 세계의 자잘한 이슈까지 관련 분야 잡지를 봐야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20세기는 잡지의 전성기였고, 연령대와 취향, 주제도 다양하게 잡지가 나와 사랑을 받았다. 그중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과학기술 및 관련 정보를 다루는 잡지도 있었다. 〈학생과학〉이 대표적이었고, 나도 중학생 때 이런 잡지들을 열독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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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송과학기술협회가 1965년 창간한 청소년 대상의 종합과학 월간지. 1984년부터 한국일보사에서 발행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그런데 과학을 내세운 잡지들에 객관적인 과학적 사실만 실렸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흥미를 자아낼 만한 해외 미스터리 이야기도 실리곤 했다. 대표적으로 ‘괴물 네시’와 ‘로즈웰의 외계인’ 이야기가 그랬다. 이 둘은 만화,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 여러 대중문화 작품에서 언급되거나 패러디로 사용될 정도로 유명했다.


‘네시’는 영국 스코틀랜드에 있는 네스호에 산다는 목이 긴 수수께끼의 짐승 이름이다. 수면 위로 목을 내민 듯한 사진까지 있어서 정말 존재하는 게 아닐까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나중에 그 사진은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변변찮은 관광 자원이 없는 호숫가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고 싶어 그랬다던가. 덕분에 유명해지긴 해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로즈웰은 미국 뉴멕시코주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1947년에 이 도시에 UFO가 나타나 추락했고 미국 정부가 그걸 은폐했다는 음모론이 유명하다. 그 UFO에는 외계인이 타고 있었다고 하며, 그 외계인의 해부 과정을 촬영했다는 영상도 존재해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후에 영상 속 외계인은 특수효과 전문가가 제작한 모형이었다고 밝혀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로즈웰은 네바다주의 군사보안 구역 에어리어 51(Area 51)과 함께 외계인 음모론의 단골손님이다.


아무튼 과학정보를 내세운 잡지에서조차 저렇게 신빙성이 떨어지는 미스터리나 음모론이 진짜 과학정보와 함께 실리곤 했다. 매체는 바뀌었지만 진짜 정보와 가짜 뉴스가 함께 돌아다니는 오늘날의 인터넷 세상과 비슷하다고 할까? 사실 과학기술도 해당 분야 전문가가 아닌 한 미스터리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정보의 신뢰성보다는 흥미와 경이로움을 기준으로 소식들을 모아놨기 때문에 과학정보와 미스터리가 뒤섞이게 된 것은 아닐까? 한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너무 뻔하게 다 드러나 있는 자극보다는 조금 숨겨진 부분이 있고 신비감과 탐구심을 유발하는 자극에 더 잘 주의를 기울인다고 한다.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건 보편적인 성향일 수 있다는 것이다.

 

Szolosi, A. M., Watson, J. M., & Ruddell, E. J. (2014). The benefits of mystery in nature on attention: assessing the impacts of presentation duration. Frontiers in Psychology, 5, 1360. 


 

 

그렇다면 우리는 흥미에 속지 않으면서 어떻게 진실과 거짓을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본인이 직접 정보의 진위를 검증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세상의 지식과 정보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는데 우리가 물리학, 화학, 수학, 지리학, 기계공학, 경제학 등 모든 분야의 통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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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실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지식의 착각》 표지_네이버책

 

비단 전문지식에 한정되지도 않는다. 심리학자 슬로언과 페른백이 쓴 《지식의 착각》이라는 책에서는 우리는 매일 사용하는 양변기의 원리조차도 잘 모른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고 양변기의 원리부터 알아보자는 게 이 책의 주제는 아니다. 어차피 우리의 지식은 사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게 결론이다. 인류의 지식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에 저장될 수밖에 없고, 우리는 서로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확한 지식으로부터 유용한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지식을 공유하고 꺼내어 쓸 수 있는 공동체를 잘 고르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유비쿼터스 세상에 맞게 풀어쓴다면 지식이 잘 검증되고 업데이트되는 네트워크 속에 연결돼 있어야 한다고 할까?


 

1965년에 창간된 〈학생과학〉은 1995년에 폐간되었다. 그리고 몇 년 후 정보 유통의 기반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종이 잡지의 전성기는 그렇게 저물었을지 모르지만, 인간의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과 흥미를 느끼는 대상, 자주 저지르는 실수는 여전하다. 그리고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잡다한 정보는 그때보다 훨씬 빠르고 강하게 우리를 사로잡는다. 월간지를 보던 시절 정보의 습득은 더 느렸을지 몰라도 정보를 잘 판별해야 하는 숙제 거리는 적었다. 하지만 매시간 새로운 정보가 몰아닥치는 오늘날, 네스호의 괴물 정도는 유쾌한 장난으로 여겨질 만큼 위험한 거짓들도 많이 유통된다. 그러니만큼 슬기로운 분별력, 정보 리터러시가 더욱 필요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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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규

심리학도, 《만만한 심리학개론》 저자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에서 심리학과 국어국문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 인지과학협동과정에서 인지심리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문 세계의 지식을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데 힘쓰고 있다.

 

 

섬네일 : 네스호의 괴물을 찍었다는 사진(1934년) © 위키피디아 https://en.wikipedia.org/wiki/Loch_Ness_Mon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