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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8

BOOK&LIFE

[SIDE B] 전망하는 인간의 사변소설 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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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하는 인간(Homo prospectus)의 사변소설 SF 

 

임현규

심리학도, 《만만한 심리학개론》 저자

 

 

Emotion Icon북&라이프 side B <책과 심리학 >은 국문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작가가  

학문 세계의 전문적 지식을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책과 심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은 미국심리학회(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의 회장을 역임한 저명한 심리학자이다. 그는 인간의 약점과 부정적 측면을 주로 연구하는 심리학의 전통에서 벗어나 인간의 강점과 긍정적 측면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셀리그먼과 그의 주장에 동조한 학자들이 만들고 개척한 분야가 바로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이다. 긍정심리학자들은 행복, 주관적 안녕, 몰입감, 덕성 등을 연구하며 심리학의 지평을 넓혀오고 있다.


이런 셀리그먼이 최근에 던진 화두가 하나 더 있으니 바로 미래지향적 인간관이다. 미래지향적이라고 하니 거창해 보이지만, 간단히 말하면 인간이란 생물의 독특함은 앞날을 전망하는 데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정리한 책이 《전망하는 인간, 호모 프로스펙투스-오직 인간만이 미래를 생각한다》(Homo Prospectu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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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명한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과 동료들이 인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책이다. 책 표지  © 네이버책

 

인간은 단순히 환경을 지각하고 상황을 판단하는 것을 넘어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측하려 하며 계획을 세운다. 인간의 언어의 특별함도 현재를 넘어선다는 데에 있다. 동물도 소리와 몸짓 등으로 상당히 수준 높은 의사소통을 하는 것으로 보일 때가 많다. 하지만 동물의 의사소통은 ‘지금 여기서’ 벌어지는 일에 한정된다. 반면 사람의 언어는 어제, 작년, 수백 년 전의 일을 전달할 수 있다. 그리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내일, 내년, 수백 년 후의 일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간의 특성에 가장 근접한 장르가 바로 SF가 아닐까 한다. SF는 ‘science fiction’의 약자로 흔히 ‘과학소설’로 번역되곤 하지만 그보다 훨씬 폭넓은 장르이다. 과학적 기반이 확고한 작품만 있는 것은 아니며 판타지에 가까운 작품들도 있다. 가장 유명한 여성 SF 작가였던 어슐러 K. 르 귄의 작품들은 양 장르를 넘나드는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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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슐러 K. 르 귄을 대표하는 작품인 《어스시의 마법사》(책 표지 © 네이버책)와 《어둠의 왼손》(책 표지 © 네이버책).

전자는 판타지, 후자는 SF로 분류된다.

 

그래서 SF를 ‘science fiction’의 약자가 아니라 ‘speculative fiction’, ‘사변소설’의 약자로 하자는 주장도 꽤 강하다. ‘호모 프로스펙투스’에서 ‘스펙투스(spectus)’와 SF에서의 ‘사변(speculative)’ 모두 헤아리고 짐작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pro-’는 ‘앞’을 의미한다. 기민한 상상력을 발휘해 인간의 미래를 헤아려보는 SF야말로 심리학자 셀리그먼이 말한 호모 프로스펙투스, 전망적 인간의 대변하는 장르인 것이다.


일상의 언어 사용에서도 인간의 전망하는 능력이 발휘되듯이 SF 역시 꼭 인류의 성망을 좌우하는 거대한 규모의 이야기일 필요는 없다. 현재 가장 탁월한 SF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테드 창(Ted Chiang)은 《스타트렉(Star Trek)》처럼 광활하고 거대한 이야기를 주로 쓰는 작가는 아니다. 그의 중편 소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는 미래의 일상을 담담한 필치로 묘사한 작품이다. 사이버 공간에 존재하는 애완동물이 어떻게 자신만의 개성과 의지를 발휘하고, 또 사람이 어떻게 데이터만으로 구성된 존재에 애정을 품게 되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공지능이 날로 발전하는 오늘날 이 소설에 묘사된 것과 같은 일이 머지않아 일에 일어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사이버 생명체의 탄생은 생명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요구하게 될 수 있으며, SF는 그러한 고민을 미리 전망하고 있다.


그간 구미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졌던 SF 장르가 이제 한국에서도 꽃피고 있다. 젊은 SF 작가들의 작품이 화제를 모으고 있고, 장편은 물론 웹소설의 흥행에 맞춰 단편 소설들도 활발하게 출간되고 있다. 다루는 주제 역시 구미 SF 못지않게 다양해지고 있다. 한국이 세계의 흐름을 좇는 나라를 넘어 첨단기술과 문화를 선도하는 나라가 된 만큼 우리가 직접 미래를 전망해야 한다는 의무감, 아니 전망하고 싶은 욕망이 솟구치기 시작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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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 단행본에서 단편 웹소설까지 한국 SF 작품들이 다양한 형태로 독자들을 찾아가고 사랑을 받고 있다.

《지구 끝의 온실》책 표지 © 네이버책,《임무의 끝》책 표지 © 네이버책

 

 

계절과 시대가 거대한 변화를 맞고 있는 오늘날, 슬기로운 인간[Homo sapiens]이자 전망하는 인간[Homo prospectus]으로서 SF란 장르에서 마주할 변화의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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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규

심리학도, 《만만한 심리학개론》 저자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에서 심리학과 국어국문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 인지과학협동과정에서 인지심리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문 세계의 지식을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데 힘쓰고 있다.

 

 

 

 

 

섬네일 : 영화 <스타트랙>(1979) 포스터 © 다음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00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