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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8

BOOK&LIFE

[SIDE A] 무엇이 SF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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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SF일까?

 

심너울

SF 소설가

 

 

 

나는 SF 소설가다. 소설가는 무엇으로 먹고살까? 책을 팔아서 온전히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소설가라는 극소수만이 택하는 직업에서도 극소수의 축복 받은 이들만이 이룰 수 있는 기적이다. 강연 같은 부수입이 내 목구멍을 풀칠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작가 중에는 이런 식의 외부 활동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들도 꽤 많은 것 같은데. 나는 스펙트럼의 반대편에 위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일단 관심을 갈구해서 작가가 된 사람이다. 많은 사람 앞에서 주절주절 이야기하다 보면 커다란 기쁨이 느껴진다. 사람들이 질문을 던질 때,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새로운 사고의 경로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를 바로 얼어붙게 하는 종류의 질문이 있다. “무엇이 SF인가요?” 혹은 “작가님은 SF를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같은 식의 질문은 나를 곧장 침묵시킨다.

 

SF는 장르다. 문학에서 장르의 쓸모에 대해서라면 쉽게 말할 수 있다. 장르는 일종의 광학현미경 같은 역할을 한다. 광학현미경은 빛의 성질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왜곡한다. 왜곡되었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그 왜곡된 이미지를 이용해 미시세계에 접근할 수 있다. 왜곡을 통해 새로운 정보가 드러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장르는 현실을 왜곡시킨다. 그리고 그 왜곡을 통하여 현실의 또 다른 이면이 드러난다. 예를 들면, 좀비 이야기를 생각해보자. 가까운 이가 죽음에서 돌아와 나를 해하려 드는 이야기를 보고, 우리는 가장 끔찍한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할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SF 장르는 어떤 식으로 현실을 왜곡하는가? 다른 장르라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호러는 현실을 초월한 공포가 사람들을 괴롭힌다. 미스터리에서는 범죄와 불가해한 트릭이 있다. 무협에서는 내공을 쌓은 고수들이 하늘을 내달린다. 그러나 SF의 이미지는 그렇게 명료하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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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픽션인가, 논픽션인가.' 과학기술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마션》, RH코리아, 앤디 위어, 숨어있는 책(5,000원) 

 

누군가는 SF라는 단어를 들으면《마션》같은 정밀한 과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직조된 이야기를 생각할 것이다. 그 반대쪽에는, 《스타워즈》시리즈 같은 과학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 소재가 미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 편으로는 시간 여행이나 슈퍼 히어로 같은 매우 구체적인 하위 장르를 SF라고 간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맞다. 그 모든 것이 SF, Scientific Fiction이다. 원래 SF는 대단히 폭넓은 장르다. 물론 현대 과학 이론에 천착한 소설만이 SF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SF 작가들과 매니아들은 이 장르가 상당히 폭넓고, 그 정의가 모호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사실 나는 SF 확장주의자로, 쓰거나 읽는 사람이 SF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무엇이든 SF라고 믿는다. 그러니 강연에서 SF가 무엇이냐고 질문을 받으면 할 말이 없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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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이스 오페라 <스타워즈>의 첫 번째 장《Star Wars Episode 1》_영문, George Lucas, HB Century, 에보니북스(4,000원) 

 

 

그래도 정 SF를 정의해야만 한다고? 그럼 좀 더 깊이 생각해보자.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과학 기술과 함께 살아왔다.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생물은 '물건은 지표면을 향해 떨어진다.' 같은 아주 기초적인 물리학을 본능적으로 꿰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과학 기술의 근원은 바로 호기심이리라. 낯선 세상을 기꺼이 탐험하고, 이 혼란스러운 세상을 설명하고자 하는 바로 그 호기심 말이다. 만약 SF가 Scientific Fiction이라면, 좋은 SF는 현실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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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너울

SF 소설가

 

《우리가 오르지 못할 방주》,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등을 썼다.

 

 

 

 

 

섬네일 : 영화 <미지와의 조우>(1977) 포스터 중 캡처 © 다음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0251#photoId=338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