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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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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주인이 사랑한 책] 소설가 김영하의 무협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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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주인이 사랑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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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북의 추천책

《무협학생운동》, 김영하, 1992, 아침

 

 

이번 헌책방 주인이 사랑한 책은 세이북 사장님이 추천해주신 《무협학생운동》입니다. 제목만 봐도 책 내용이 정말 궁금하지 않으세요? 제목도 흥미롭지만, 이 소설은 지금은 누구나 그 이름을 아는 김영하 소설가가 등단하기 전 연세대 경영학과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일 때 쓴 책이라는 게 더 놀라움을 안겨주는 그런 작품이죠. 어디서 풍문으로만 전해 들어오던 전설과 같은 그런 책을 오늘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PC통신 하이텔에 연재했던 이 무협지는  지금은 헌책방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희귀본입니다. 그런 소중한 책을 세이북 사장님께서 서울책보고에 추천책으로 주셨어요!Emotion 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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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앞표지에서 무협지 냄새 폴폴 납니다~!#나는_무협지다그 정체성을 마구마구 드러내는 직설적인 디자인의 시대. 그러면서도 제목 가득히 느껴지는 비장함과 구름 속의 용의 자태는 강렬한 느낌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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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날개에 쓰인 이 글은 당대와 이 책에 대한 훌륭한 요약이네요. 


“이 책은 80년대 학생운동을 무협 소설의 형식으로 극화한 것이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80년대(정확하게 87년 6.29까지)의 한국 사회는 

선악의 구도가 명확했다는 점에서 무협지의 세계관과 닮아있다. 

즉, 한편에는 외세와 군부독재라는 악의 무리, 

다른 한편에는 투옥과 고문,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무릅쓴 민주화 투쟁이 대척을 이루었던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의 한복판에서 

영웅적인 투쟁을 전개해온 학생운동의 고난에 찬 역사를 

그려보고자 한 시도가 바로 이 소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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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등단 이전의 책이지만) 소설가 김영하의 필력을 익히 알고 있는 우리는, 이 책날개 요약만 보고도 이 책이 얼마나 흥미로울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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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중원에 불어오는 피바람’이라뇨. 첫 시작부터 본격적인 무협지의 시작으로 손색이 없네요.Emotion Icon


“하늘엔 먹구름이 짙게 깔려 있었다. 

류는 아마도 진눈깨비가 내리려나보다 생각하였다. 

날씨는 점점 추워졌고 중원 백성들의 가슴에는 재앙의 기운이 내려앉고 있었다.”

 

 

 

목차 한 번 살짝 살펴볼까요.


제1장 중원에 불어오는 피바람 

제2장 가자, 광조성으로 

제3장 분노는 강이 되어 흐르고 

제4장 배신 그리고 분열 

제5장 자민방과 민민방 

제6장 그리고 계속되는 위기 

제7장 깊고도 깊은 밤 

제8장 아, 장백산 

제9장 논검의 아침 

제10장 반격을 위한 패주 

제11장 내일이 오면 

 

작가후기 

부록. 80년대 학생운동 약사 

 

 

이쯤에서 세이북 사장님의 추천사를 알려드려야겠습니다. 


“김영하 책이니까. 제일 처음에 썼던 소설. 본인이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소설이지만, 내용은 탄탄해요.  무협지 형식으로, 당시 현대상을 그린 내용입니다.”


 

네네. 목차만 보아도 세이북 사장님이 하신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서사가 정말 탄탄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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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김영하 작가의 후기까지 알차게 들어있어요. 작가의 마음과 더불어 80년대라는 시대상, 90년대 초의 PC통신 문화까지 엿볼 수 있는 글이어서 조금 길게 인용해볼게요. 


“소설을 쓴다는 것은 마치 자기를 발가벗기운 것과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것이 어떤 글이든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이야기를 쓰는 것과 같기 때문이리라. 

처음 재미삼아 썼던 초고를 완성시켜 소설로 만들어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망설였다. 

과연 끝낼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고 글솜씨에 대한 자신없음도 이에 한몫을 하였다. 

그러나 가장 두려웠던 것은 80년대라는 치열한 시대를 살아낸 분들의 삶을 희화하하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영웅주의적으로 그리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그 분들은 엄혹한 시대를 영웅적으로 경과하였지만 결코 영웅들만의 시대는 아니었다. 

어쨌든 이 소설이 80년대를 무협지의 형식을 차용해 그리기로 마음먹은 이상 몇 가지 피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게 되었다. 

(중략)

아마 이 시대를 이러한 환경에서 지나온 이들은 자신들이 걸어온 길도 역사가 되는구나 

라는 애틋한 감정이 들지도 모른다. 

어차피 역사란 우리의 발끝에서 시작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이 시대를 그런 방식으로 살아오지 않았던 이들도 이 글에 나타난 여러 모습들이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기에 

이전 세대와는 색다른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저자로서 자신의 글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주제넘은 일이고, 

독자들의 상상력과 건강한 판단에 이 글을 맡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이 나오기까지 애써주신 도서출판 아침의 배진호 편집장과 

문학적 자질이라곤 조금도 없는 필자의 졸고를 찬찬히 읽어주시고 꼼꼼하게 지적해주신 

정도상 선생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리며 아울러 불충분한 초고를 끈기있게 읽고 평을 해주신 

바통모 회원 여러분께도 이 자리를 빌어 작으나마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그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는다면, 한 때는 같은 강의실에 앉아 공부를 하였으나 

지금은 자신의 등 뒤에 깔린 쇠사슬을 끌며 최루탄 연기 가득한 하늘로 날아간 영원한 이름, 

한열이에게 이 글을 바치고 싶습니다. 

그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는다면….”

 

 

바통모.

최루탄.

 

이한열.


그야말로 1980년대를 관통하는 단어들입니다. 바통모? (사실 저도 몰라서 구글링해보았습니다.) ‘바통모’는 바로 ‘바른 통신을 위한 모임’의 약자더라고요. ‘바른 통신을 위한 모임’??? ‘바통모’는 PC통신 하이텔의 모임 중 하나로, 진보적 사회운동계열의 동호회 이름이었어요. 1995년 매일신문 기사 한 번 보실까요?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인터넷 등 PC 통신망에서 활동하던 

진보적 사회운동계열 동호회의 연대모임인 

‘진보통신단체 연대모임’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달 1일 첫 공식 모임을 갖고 활동을 시작한 진보통신단체 연대모임의 가입단체는 

‘바른 통신을 위한 모임’(하이텔), 

‘현대철학동호회’, ‘희망터’(천리안), 

‘진보청년통신동호회’, ‘찬우물’(나우누리), 

‘정보연대(SING)’, 

‘한과청 인터네트소모임’, ‘참세상’(인터넷) 등 8개 동호회.

이 모임은 민주노총 통신지원사업을 비롯해 관련 심포지엄, 

PC통신 이용자의 불평등 항목을 시정하는 이용자 운동과 

해외 진보 네트워크와의 연대 모색 등 진보 네트워크 구축을 지향하고 있다.

 

현재 BBS망인 ‘참세상’에 공동 게시판을 개설하고 

온라인 모임과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활동중인데 

첫 사업으로 ‘5.18 특별법 제정을 위한 통신인 서명 운동’을 PC통신으로 전개하고 있다.

진보통신단체 연대모임 측은 모임의 취지에 동의하는 통신단체에 

문호를 개방할 방침을 밝히고 있는데 

참가 결의서를 게시판에 제출하고 담당자를 두면 참가가 가능하다. 

이 모임의 공동 게시판에 접속하려면 하이넷피망을 통해 

‘참세상’에 접속(01410->13->77001)한 뒤 gojinbo를 입력하거나 9번을 선택하면 된다.”

 


당시에는 PC통신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해 사회운동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기사 중에 ‘인터넷’이 언급되는걸 보니, PC통신과 인터넷이 공존하던 시기였나 봅니다. 아무튼, 작가 후기에 언급된 ‘바통모’는 바로 이 진보적 사회운동 동호회의 줄임말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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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책이 출간 직후 나온 기사 하나를 보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해요.


6월 초 《무협학생운동》이라는 책을 펴낸 金英夏씨(24)는 

79년 10월 26일에서 87년 6월 29일까지 무협 내용과 비슷하다고 본다. 

이 시기 학생운동의 경과를 선한 이들과 악한 무리가 대립하고, 

결국 선한 세력이 승리하고야 마는 무협지의 형식을 빌려 쓴 것은 이 때문이라고 했다.


김씨는 무협지광은 아니다. 

연세대 경영학과 석사 과정에 재학중인 그는 

이 소설을 구상하기까지는 무협지에 손을 댄 적도 없다. 

또 김씨는 학생운동가 출신도 아니다. 

은행원과 전업주부를 부모로 한 2남 중 장남으로, 

학창시절엔 학생운동에 대해 많이 듣고 고민만 했다고 하다. 

그의 작품이 출간된 것은 전자통신에 그의 초고가 실린 것을 

동호회 회원인 한 출판사 간부가 보고 권유했기 때문이다. 

그의 형식에 담긴 다분한 장난기 때문에 학생운동을 

너무 우습게 만들었다는 비판도 있는데, 

정작 본인은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면 그런 생각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조만간 무협지 형식을 빌린 가상 정치소설도 발표할 예정이다.


_시사저널, 1992.7.9. 

 

 

이 기사에 따르면 김영하는 무협지광도 아니고, 학생운동가 출신도 아닌 게 놀랍죠? 이후 김영하 작가의 이름을 달고 무협지 형식의 가상 정치소설이 발표된 적이 없다는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이상, 세이북 사장님의 추천책 《무협학생운동》 이야기였습니다. 


참, 이 소중한 희귀본은 서울책보고 ‘오직 서울책보고’ 진열장에서 만나보실 수 있답니다.Emotion 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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