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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4

BOOK&LIFE

[SIDE B] 날이 좋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두의 노래》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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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좋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두의 노래》를 읽다

장동석
 출판평론가, (재)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파블로 네루다. 국내 독자들에게는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작품《네루다의 우편배달부》로, 혹은 영화팬들에게는 1996년과 2017년 개봉했던 영화 <일 포스티노>로 더 잘 알려진 이름일 터.
작은 어촌 마을(영화는 이탈리아의 작은 섬)에 머물던 네루다, 그에게 우편물을 전달하는 것이 유일한 업무인 젊은 우체부 마리오의 우정은 문학과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적잖은 감동을 선사했다. 하지만 정작, 파블로 네루다는 우리에게는 그리 친근한 작가 혹은 시인은 아니다. 칠레 출신으로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사랑의 시인’이자 ‘저항의 시인’, 그런가 하면 외교관이자 정치가로도 중남미 역사에 적잖은 족적을 남긴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당연히 그의 시와 작품 세계 역시 너른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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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사진)《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민음사, © 네이버책(클릭 후 이동) 

▶ (오른쪽 사진)  영화 <일 포스티노>(1996) 포스터 , © 다음영화(클릭 후 이동)
 
파블로 네루다가 1950년 발표한 《모두의 노래》(Canto General)는 15부 252편의 대서사시를 통해 중남미 역사와 자연이 얼마나 풍요로운지, 그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노래한다. 칠레 중남부를 흐르는 비오비오강은 시인에게 시의, 아니 궁극적인 아름다움의 원천이다. 

“비오비오 강아 내게 말하려무나. 
내 입에서 미끄러져 나오는 것은
바로 너의 말들이다. 너는 내게
말을 주었고, 비와 나뭇잎이
엉켜진 밤의 노래를 주었다.”
 
 
그런가 하면 오랜 외침으로 피폐해진, 그러나 스스로의 힘으로 해방을 향해 달려가는 중남미 민중의 애씀도 절절하게 노래한다. 

“투쟁하며 죽었던 이들을 당신들에게 인도하는 날,
사양하지 마십시오. 
이삭은 땅에 주어진 하나의 밀알에서 태어나고, 
수많은 사람은 밀처럼 뿌리를 모으고, 
이삭을 모아, 
고통에서 해방되어
세상의 밝은 곳을 향해 올라갈 것입니다.”

 
그는 아메리카의 저 먼 역사부터 1950년 이전의 현대사까지 망라하고 있는데, 민초들의 아픈 삶이 드러나는 대목도 제법 많다. 

“형편없이 살았습니다. 쓰러져가는 집에
또다시 찾아온 배고픈 시절, 선생님.
 우리가 월급 1페소만 올려달라고 
모이면, 선생님.
경찰은 몽둥이, 불, 붉은 바람에,
구타까지 했지요 
그래서 저는 직장에서
해고되었습니다.” 

 
저 멀리 중남미의 역사라고 치부하기에는, 우리에게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여러 일이 겹쳐져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다. ‘모두의 노래’라는 제목의 모두는, 애초에는 질곡 많은 역사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중남미의 민초들이었겠으나, 이제는 그것을 읽는 모든 이의 노래가 될 수밖에 없는 진정한 노래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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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노래》, 파블로 네루다, 문학과지성사, © 네이버책(클릭 후 이동)

 

 
 
1950년 출간된 《모두의 노래》가 국내에 처음 완역으로 소개된 것은 2016년 여름의 일이다. 중남미의 광활한 자연은 물론, 거기에 둔덕을 대고 있는 중남미의 방대한 역사, 그리고 다양한 민간의 전승들을 일일이 담아내기에는 우리말로 혹은 우리네 정서로 옮기기에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2016년 이후 《모두의 노래》는 책상 옆 손이 쉽게 가는 곳에 늘 자리 잡고 있다. 한두 편씩 읽으며 그 너른 시의 세계를, 또한 인간과 자연의 역사를 더듬어볼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모두의 노래》를 읽기에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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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모두의 노래》를 읽기에 좋은 날이다. 

© 드라마 <도깨비>CJ ENM 웹사이트(클릭 후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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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석 
출판평론가, (재)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서평전문잡지 <출판저널> 편집장, 출판전문잡지 <기획회의> 편집주간,
생활철학 잡지 <뉴필로소퍼> 편집장 등으로 일했고,
 지금은 파주에 있는 (재)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으로 일하며
책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다.
 저서로 《살아 있는 도서관》(현암사), 《금서의 재탄생》(북바이북), 《다른 생각의 탄생》(현암사),
《삼국지, 천년 넘어 새로워진 이야기》(너머학교)가 있다. 
 
 
 
 
 

섬네일 : 드라마 <도깨비> 중에서 © TVING 웹사이트 https://tvn.cjenm.com/ko/dokebi/photo/?8941=removeCacheYn%3DY%26pageNum%3D4#localePhotoPopup/18411-8941/908/%EA%B0%88%EB%A7%A4%EA%B8%B0%EA%B9%8C%EC%A7%80-%EC%99%84%EB%B2%BD%ED%95%9C-%EA%B7%B8%EB%A6%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