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BOOK&LIFE

[SIDE A] 고전문학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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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박경서

교수, 작가

 

 

 

 친숙함은 때로 무관심을 낳는다. 

‘고전’은 우리가 어릴 적부터 많이 들어온 친숙한 말이다. 고전은 읽어보지 않아도 작가가 누구인지, 내용이 어떻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고전 읽기의 중요성, 즉 우리들의 삶의 양식을 형성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는 책이라는 사실은 알겠는데 고전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무엇을 얻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고전은 선뜻 손이 가지 않고 언젠가 읽어봐야 할 부담으로 작용하는 책이다. 곁에 있으니 언젠가는 읽어보겠지 하면서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시간만 흐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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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크 트웨인, 사진 출처 :위키백과(클릭 시 이동)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고전이란 누구나 읽고 싶어 하는 책이지만, 누구도 읽고 싶어 하지 않는다.”라는 아이러니한 정의가 씁쓸하다. 고전은 집의 책장 높은 곳에서 먼지만 뒤집어쓴 채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다. 고전이라는 이유로 버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읽지도 않는 그런 책이 되어 버린다. 

 

이렇게 고전문학은 우리 곁에 친숙하게 다가와 있지만 읽기가 망설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전’, 영어로 ‘클래식(classics)’하면 뭔가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 아니면 어른들이 말하는 꼰대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게다가 분량도 많고, 읽기도 어렵고, 그렇다 보니 이해하기도 만만찮아 고전을 만지작거리다 손에서 놓고 만다. 

 

2500년 전 그리스 비극작가들의 작품에서부터 지금까지 발간된 문학작품을 일렬로 세우면 달을 몇 번이라도 왕복할 만큼 엄청난 양일 것이다. 그 엄청난 작품 중에서 지금까지 꾸준히 읽히는 극소수의 작품이 바로 고전이다. 거의 대다수 작품이 비평가들이나 독자들의 관심 밖으로 사라졌지만, 극히 일부의 책은 책방이 문을 닫을 때까지 서가에 꽂혀 있는 것이다. 고전이기 때문에 그 작품을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끈질긴 생명력으로 현대까지 살아남았다는 존재 자체가 우리로 하여금 그 책을 읽게 만든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시학 Poetica》에서 시(문학)와 역사를 비교하면서 “시인(문학가)의 임무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이야기하는 데 있다. (…) 시(문학)는 보편적인 것을 말하는 경향이 강하고,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그래서 그는 시(문학)가 역사보다 더 고귀하다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대로 고전은 당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정신을 반영한 것이지만, 문학이 가지는 보편성과 개연성 때문에 현대인들의 삶과 정신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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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아이들을 신들에게 바치는 눈먼 오이디푸스(1784),  베니네 가네로 , 스웨덴 국립미술관 소장,  출처 : 위키피디아 커먼스(클릭 시 이동)

 

그리스 비극 작가 소포클레스(Sophocles)의 《오이디푸스 왕 the Oedipus Rex》에서 자신이 죽인 사람이 아버지이고 자신의 아내가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아낸 오이디푸스.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에서 유부녀인 로테를 그리워하다가 자살한 베르테르, 브론테(Emily Bronte)의《폭풍의 언덕 Withering Heights》에서 죽은 캐서린이 묻혀 있는 관을 붙잡고 절규하는 히스클리프, 하디(Thomas Hardy)의《테스 Tess of the D'Urbervilles》에서 알렉을 죽여 사형에 처하게 되는 가련한 테스. 피츠제럴드(F.S. Fitzgerald)의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에서 데이지에 대한 개츠비의 끝없는 사랑, 작가가 자살이나 사랑 문제만 다루었더라면 이 작품들은 고전의 반열에 오르지 못하고 통속소설로 끝났을 것이다. 

스스로 두 눈을 후벼 파고 자아 추방을 걷는 오이디푸스의 모습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엿볼 수 있고, 베르테르의 자살에서 ‘질풍노도’ 문학 정신을 읽을 수 있고, 테스의 비극은 오롯이 당대 영국의 농촌 현실의 비극이 될 수 있고, 데이지를 차지하기 위해 연일 파티를 여는 개츠비의 모습에서 미국의 1920년대 재즈 시대를 이해하고 순수한 사랑의 원형을 감지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이 고전문학에 녹아있는 문학의 힘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값진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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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차례로, 출처 클릭시 이동

《죄와벌》표지, 출처 : 위키백과

《폭풍의 언덕》초판 표지, 출처 : 위키피디아 영어

《동물농장》초판 표지, 출처 : 위키백과

▶《이방인》표지, 출처 : 위키피디아 프랑스

 

일화가 하나 있다. 어느 영국 학생이 19세기 프랑스 사회를 연구하기 위해 프랑스 대학원에 입학해 지도교수를 찾아가 어떤 사회학책을 읽어야 할지를 물었더니, 그 교수는 사회학 텍스트 대신 프랑스 작가 발자크(Honore de Balzac)의《고리오 영감 Le père Goriot》을 추천하더라는 것이다. 그 교수가《고리오 영감》을 추천한 것은 고전이란 당대의 사회적 문제를 이해하고 나아가 당대나 현대의 인간 삶의 가치관에 대한 인식을 확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문학작품은 흥미 위주로 읽을 수도 있고 어떤 문학적 메시지를 캐내기 위해 읽을 수도 있다. 이것이 문학의 쾌락적 기능과 공리적 기능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문학의 재미(쾌락)를 주장했고, 플라톤은 문학의 사회적 기능, 즉 교훈을 중요시했다. 그렇지만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칠 경우 그 책은 단명으로 끝나고 고전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 어떤 작품이 문학적 상상력으로 재미를 제공하되 그 속에 인간 정신의 발달과 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다면 그것은 고전으로 남을 자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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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폴 사르트르, 사진 출처 : 위키백과(클릭 시 이동

 

앞서 트웨인이 지적한 ‘읽고 싶지만 읽고 싶지 않은’ 고전에 대한 정의는 고전의 위대함을 모를 때 하는 이야기다. 고전 읽기를 주저하는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일단 첫 페이지를 읽어보자. 오늘날 유행하는 장르 소설과는 달리 처음 몇(수십) 쪽은 읽는데 다소간의 인내가 필요할지 모른다. 그것을 극복하면 작품이 드러내고자 하는 문학적 · 사회적 메시지가 서서히 정체를 드러낼 것이다. 결국, 다 읽고 나면 묵직하고 커다란 문학적 · 사회적 울림이 우리들의 가슴에 남아 우리의 삶의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이다. “내가 세계를 알게 되니 그것은 책에 의해서였다”라는 사르트르(Jean-Paul Sartre)의 말에서 책은 고전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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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서

 교수, 작가

 

영남대학교에서 조지 오웰의 정치 소설을 전공해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수학했다.

 한국연구재단 후원으로 문학의 사회적 및 정치적 관점의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현재 영남대학교에서 강의하면서 집필, 문학평론, 번역하고 신문에 칼럼을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조지 오웰》등이 있고 최근작으로 《명작을 읽는 기술》이 있다. 

옮긴 책으로 《1984년》, 《동물농장》, 《코끼리를 쏘다등 20여 권이 있다.

▶ 섬네일 사진 : 파우스트 박사(연대 미상), 장 폴 로렌스, 리오 그란데 두 술 미술관 소장
▶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커먼스,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Jean_Paul_Laurens_-_Dr._Fausto.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