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BOOK&LIFE

[SIDE B] 코미디언 서평가 남정미가 들려주는 '가족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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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의미

 

남정미

방송인, 서평가, 작가


 

 

이런 말이 있다. “4월의 소나기가 5월의 꽃들을 가져온다.”  한데 요번 5월은 꽃들이 도착해 피기도 전에 4월보다 더 많은 비를 뿌리는 듯하다.  흔히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하는데 내리는 비들을 맞고 더욱 짙어지는 나무의 빛깔처럼  어쩌면 서로에게 생각 이상의 영향을 주고 있는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작고하신 최인호 작가의 『가족이라는 책은 제목대로 한 가족의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작가가 청년기였던 1975년 9월 월간 <샘터>에 첫 연재를 시작하여 (건강상 이유로 연재 중단을 선언한) 2010년 2월까지 무려 34년 6개월 동안의 인생을 기록한, 국내 잡지 역사상 가장 긴 연재소설이기도 하다. 최인호는 책에서 “모르던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이라는 것을 하고 아이도 하나둘 낳으면서 살아가는 이야기. 누구나, 평범한 희망을 품은 사람이라면 그렇게들 살아가는 이야기. 때로는 싸웠다가 때로는 그지없이 행복했다가,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면서 늙어가는 이야기. 가족이란 이름으로 함께 머물며 바닷가에서 재미있게 놀다가 시간이 되었을 때 배를 타고 저 수평선 너머로 떠나가는 것. 그저 함께 뛰놀던 천둥벌거숭이들”이라고 가족을 표현했다. 

집마다 사정은 달라도 가족들은 분위기가 비슷한 경우들이 있다. 함께 뛰놀다 보니 서로 물들기 때문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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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부모님은 재미있으시다. 형제들도 약간의 캐릭터가 있어 우리 가족을 장르로 치자면 ‘유쾌한 시트콤 류’라고 말할 수 있겠다.

강퍅하고. 와일드하고. 욱하는 성격을 공유해(?) 주신 나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운동을 하셨던 분이라 체격이 상당히 좋으시다 (아, 이것도 물려받았네). 또한 ’여름엔 꽃 남방, 겨울엔 호피 무늬’를 즐겨 입을 만큼 화려한 의상을 선호하신다. 한번은 내가 대학로에서 연극을 할 때였는데 매표소에서 “얘들아! 야쿠자 왔어! 야쿠자! 꽃 남방 입은 야쿠자!!!”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음. 우리 아버지가 오셨구만’ 앉은 자리에서 바로 야쿠자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었다. 물론 저런 꽃 남방을 처음 고른 건 엄마였을 것이다. 

나의 엄마는 따뜻하고 맑은 분이시다. 밝고 환한 것을 좋아하는 엄마 덕분에 내 어린 시절 앨범을 보면 이건 뭐 온몸으로 ‘빛과 색의 3원소’를 표현하고 있는 휘황찬란한 옷을 착용하고 있는 미술 색채도로 어린이를 만날 수 있다. 긍정적이면서도 강인함과 부드러운 성정을 가지고 있는 엄마는 학창시절 내게 정말 큰 후원자였었는데 그 일화가 몇 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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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미술 시간, 하늘을 표현하라는 주제였었다. 창밖을 보니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온통 검정빛이었다. 나는 하얀 도화지에 회색과 검은색 크레파스를 칠하기 시작했다. 마치 김밥용 김을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색칠하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선생님이 나의 심리가 걱정되었는지 검사를 한번 받아보면 어떻겠냐고 엄마에게 연락하셨다. 

 “아마 창문 밖에 ‘오늘의 하늘’을 색칠한 거였을 겁니다. 아이의 상상력을 제한하지 않으려고요”. 

물론 선생님은 지금처럼 미술치료가 보편적이지 않던 시절 그것을 공부하셨기에 좋은 의도에서 말씀하셨을 것이다.

(선생님 그때 사실 정확히 보셨습니다. 저는 검사가 필요했었드랬었.. 저 그 이후 막살고 있습니다. #승생님감사해요)

 

또 한 번은 중학교 3학년 때 일이다. 우리 학교는 졸업생들이 돈을 걷어서 후배들을 위해 학교에 무언가 기부를 하고 나가는 희한한 문화가 있었는데 우리 때는 각 반에 에어컨을 설치하겠다고 결정 났다는 것이었다. 학교가 치맛바람이 센 편이었는데 자모회에서 결정이 난 일이니 집에 가서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갹출해 돈을 갖고 오라는 것이었다. 아니 우리 집에도 없는 에어컨을 왜 사서 주고 간단 말인가... 더구나 학교가 산 위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바람이 잘 불어오거니와 어떨 때는 한여름 바닷바람이 시원하다 못해 추울 정도여서 우리는 교복 안에 체육복을 입고 수업받는 상황이었다. (#에어컨은무슨_힛타가필요한판에 #뭣이중헌지알지도못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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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공중전화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노오란색 전화번호부에서 울산교육청 번호를 찾아냈고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XX 중학교 3학년 3반 남ㅈ...아니 익명의 학생인데 이러이러한 일이 있다. 이런 불필요한 전통은 없애는 게 맞는데 그래서 신고한다.”

그랬더니, 알겠다고, 잘했다고, 우리가 가겠다고. 그런데 신고 접수를 하려면 이름이 필요한데 학생 이름..이...?   

"뭐야. 왜.. 이름은 왜여.. 왜.. 아 씨.. .신고할 때 신고 정신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에요?"

'익.. 익 익명이어야 하는..데... 신분 노출은 계획에 없었는데....'

“나..나..남정미요.”

그렇게 이름을 밝히고 나니 그때부터 미친 듯이 공포심이 밀려오며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 

 ‘에어컨을 쐬지 못한 프로 더위러들의 항의.. 너 때문에 교무실에도 에어컨 노노 못 받음. 선생님들이 화를 낼 테고.. 나는 차별을 받겠지. 아... 너무 무서워.’

 나는 또 엄마를 붙잡고 말했다.

“엄마. 나 너무 겁나. 해코지당하면 어떻게 하지?”

"그래?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나... 도망가고 싶어.”

"그래? 어디로 갈래?"

“최대한 학교에서 멀리...울산에서 멀리...”

"아. 알았다. 그럼 할머니 댁은 어때?" 

엄마는 평택 가는 차표를 끊어주셨고 나는 할매집으로 튀었다. 그리고 3일쯤 지났을 무렵. 

“일이 잘 해결되었으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학교 나오라”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했다는 소식이 전해져왔다. 장학사가 출동해서 이것저것 조사를 하고 학교는 엄청난 경고를 먹은 모양이었다.

“어.. 잘 됐다!!! 근데... 나 보복... 당하지 않겠...지?”

"어. 그것도 엄마가 다 잘 얘기 해따. 개얀타. 안심하고 내리온나."

졸업 후 중학교 후배를 만났는데 그런 전통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바로 시정되어 없어진 것이었다. 비록 도피하느라 개근상은 받지 못했지만, 그때 내가 느낀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적당한 방법을 찾아 실천하는 추진력은 실로 엄청난 도움이 되는 경험이었다. 또 옳은 길을 전적으로 지지해주는 엄마와 아빠 형제들 가족의 존재는 나의 자존감 상승에도 크게 한몫하였다. 그 덕에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정면돌파를 함에 있어 재거나,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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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절 말썽꾸러기로 같이 놀며 성장한 친구들은 이제 가족의 역할 중 자식에서 부모라고 적혀있는 바통을 이어받아 그 이름으로 달리고 있다. 결혼해서 육아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참 대단하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 하루는 아기 엄마인 친구랑 수다를 떠는데 6살짜리 딸내미가 "나 이 담에 커서 아빠랑 결혼 하꼬야." 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 안돼 소원아. 아빠는 엄마랑 결혼했잖아. 소원이는 딴 사람이랑 결혼해야지." 

"어? 진짜? 하아... 안 되는데... 나 아빠밖에 모르는데"

"안돼~. 다른 사람이랑 결혼해야 해. 아빠는 안 돼"

"아이 참. 아빠랑 해야 하는데."

"왜에?" 하고 물었더니 막 화를 내면서 말을 하더란다.

"왜냐니! 모르는 사람이랑 어떻게 결혼을 해!!!!"

아이가 한번 까르르하고 웃으면 산속에 꽃봉오리 하나가 톡하고 잎을 틔운다더니. 그 천사들이 가족과 이 세상에 주는 기쁨은 담길 표현이 없을 만큼 크고도 거룩한 일이다.

 

전례 없는 코로나로 사람과 사람 사이가 서먹해지고 멀어진 지 2년이 지난 지금. 이제 막 고령인들부터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있다. 백신을 맞고 나면 가족 간 관계 모임 인원 제한이 좀 더 유연해질 것이라고 하는데, “가족 간의 만남이 없어 피로도가 극심하다.”라는 국민의 호소 때문에 가장 먼저 선택된 부분이라고 한다. 명절이 되면 귀에 딱지가 앉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친척들이었지만, 그래.. 한 2년쯤 안 보니..  사업 잘된다고 늘 잘난 척하는 삼촌도 보고 싶고, 네가 몇 살이었지? 결혼은 언제 하냐? 얼마 버냐? 숫자 대잔치 하는 이모도 보고 싶어지고 그렇다. 맞아, 우리 모두는 서로 가족의 사랑을 뜯어먹고 살아가고 있는 거니까..  가족들 모두 모여 까르르 웃으면 또 이 산 저 산에서 예쁜 꽃들이 톡톡 피어나겠지. 웃다가 또 화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뭐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것이 가족인 것을. 시원하게 내리는 비들을 맞고 나면 각자의 색으로 더욱 짙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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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친구들이다.

 친구들은 싸우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친구들의 바람직한 모습인 것이다. 

어린애들이 학교에 갔을 때는 한 친구가 비어 있는 놀이기구를 이용하고 있는데

 또 다른 친구들이 같이 놀기를 원하면 함께 나눌 필요가 있다.

 가족이란 노래, 춤 등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집단인 것이다.

 

최인호 작가의 『가족』중 '참는 것이 힘이다.' 중에서

 

남정미
방송인, 서평가, 작가
안동에서 태어났고 울산에서 자랐다. 대학에서 연극영화학을 전공, 2003년 SBS 코미디프로그램 <웃찾사>로 코미디언이 되었다. 진정한 코미디언이라면 여러 카테고리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 김성신 출판평론가에서 사사하여 공부하였고 2013년 경향신문 스포츠경향에 칼럼을 실으며 서평가가 되었다.
드라마타이즈를 메인으로 하는 서평이 전문이며,
현재 KBS 오늘 아침 1라디오, KBS 정용실의 뉴스브런치, MBC 이석훈의 원더풀라디오 등에서 책을 소개하고 있고,
한국방송통신대학 방송대학TV에서 <비급고전>을 진행 중이다.
지은 책으로 『북톡카톡』,『알고 싶은 마음에 단숨에 읽는 철학대화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