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22
SPECIAL[오은의 오늘의 시] 헌책_한 번 더
헌책
― 한 번 더
오은
헌책을 선물 받았다
묘했다
묘하게 불쾌했다
새 책이 아닌 헌책이라니
빳빳함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너덜너덜해진 종잇장이 있었다
페이지마다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볼펜과 형광펜과 사인펜으로
알록달록했다
지저분했다
손때가 묻은 책장을 넘기려다
그가 남긴 흔적을 한 번 더 들여다본다
볼펜으로 새기고
형광펜으로 되새기고
사인펜으로 아로새긴 순간들
묘했다
묘하게 아름다웠다
‘한 번 더’의 마음이다
새 마음이다
헌책이 아니라
책 읽던 시간을 통째로 선물 받은 것이다
덩어리를 나누는 몫은 이제 내가 해야 한다
손을 거치는 동안
책은 한 번 더 태어날 것이다
오은
시인
이따금 쓰지만, 항상 쓴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살지만, 이따금 살아 있다고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