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BOOK&LIFE

[SIDE A] 사물은 나와 세계를 이어주는 협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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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은 나와 세계를 이어주는 협력자

 

김지원

《우리가 사랑한 사물들》 저자


 


집이 우리가 기거하고 삶을 펼치는 처소로써 인간과 사물의 관계 맺기를 위한 장소를 제공한다면 사물은 우리의 처소에 생기를 더하며 꿈의 저장고에 이르는 데 적극적으로 협력한다. 정신분석학자 위니코트는 “삶의 모든 단계에서 인간은 자아의 안팎으로 경험할 수 있는 사물들을 계속 찾는다.”라고 말한다. 사물은 말하자면 나라는 자아와 외부 세계가 저항 없이 만나기에 용이한 중간 대상인 것이다. 쉬운 예를 들자면, 이동의 도구나 수단이 되는 기차나 다리, 지도와 같은 것들이 될 수 있다. 내게 책은 세계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안내 지도와 같다. 책이라는 사물은 외부 환경의 일부로서 나라는 자아가 세상을 경험하는데 용기와 위안을 주는 든든한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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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세계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안내 지도와 같다.

 

 

지난 여행을 되짚어 보건대, 가장 오래 기억을 붙잡는 건 흥미롭고 희귀한 물건들로 가득한 상점이나 이국적인 정취가 가득한 공간은 아니었다. 늘 떠오르는 장면은 책방 풍경이었다. 책방을 부유하는 표지 위의 그림과 문장들은 다음 여행지의 단서를 제공하곤 했다. 처음 방문한 어느 동네의 책방에서 마주한 그림이나 문장이 흥미로울 때면 이 도시가 외지에서 온 이방인을 환대하는 기분마저도 들었다. 새 물건보다는 오래된 물건에서 정서적 안정감이나 위안을 얻듯이, 새 책보다 헌책이 우세한 점을 찾는다면 정서적 연대감일 것이다. 채링크로스 84번지의 헌책방과 20년간 편지로 우정을 나누며 헌책을 주문했던 헬렌 한프가 그랬듯이 누군가가 이미 남기고 간 속표지 귀퉁이의 글이나 밑줄들이 ‘동지애’를 느끼게도 한다. 책방에는 신간이 단연코 주목받는 자리에서 빛을 내겠지만, 헌책방의 책들은 어느 것 하나 주연이랄 것이 없다. 그 때문에 다소 번잡스러워 보이기까지 해 평소에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책이나 주변의 물건들까지도 한눈에 들어온다. 시야를 어지럽히기는 해도 오히려 그 덕에 새로운 호기심이 샘솟는다.  <헌책방의 사물들>이라는 이름의 작은 전시가 그래서 꽤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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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무명 작가와 서점 주인이 주고받은 편지에 불과한 이 책은 많은 애서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책 표지  © 네이버책

 

 

몇몇 헌책방 주인의 물건과 수집품에 얽힌 사연을 엮은 <헌책방의 사물들>의 전시품들은 헌책만큼이나 낡았다. 얼마나 오랜 시간 책방을 벗어나지 않았는지, 대충만 봐도 수십 년은 함께했을 법한 물건들이다. 손잡이 한쪽이 잘려 나가고 녹이 슨 가위, 박스 테이프로 겹겹이 동여맨 간이 의자, 헌책 사이에 끼워져 있던 갈피표를 대신한 영화표 한 장에 이르기까지. 손잡이 하나가 떨어져 나간 가위를 이어 붙여서 여태껏 사용했을 때는 물건의 막 대함이나 물자의 부족함 때문이라기보단, 그 사물의 충실함에 새 가위는 차마 들이지 못했던 속마음이 보이는 듯해 잔잔한 애정이 느껴진다. 물건의 외형이 책방의 분위기와 책방 주인의 심상에까지 닿게 해 이 둘 사이가 함께 늙어가는 반려처럼 다정해 뵌다. 가장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역시나 헌책과 함께 우연히 딸려왔다가 전시품까지 된 물건들이다. 갈피표를 대신한 각종 영수증과 영화표, 전단지들은 별것 아니게만 여겼던 ‘갈피표’라는 사물 속으로 잠시 잠깐 빠져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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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품들은 장인의 솜씨가 만들어낸 기발하고 특별한 물건은 아니지만, 한동안, 어쩌면 오랫동안 누군가의 일상에 머물며 자아를 실현하는 데 아낌없이 사용되었을 도구들이다. 그 누군가의 곁에 머물렀던 이 낡은 소유물들은 우리 곁에 머무는 소유물들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의 소유물들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길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다. 사물들은 우리를 미지의 세계와 이어주기도 하지만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 다시 잇게도 하는 든든한 협력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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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원

《우리가 사랑한 사물들》 저자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 칼리지 디자인학 석사

성균관대학교 경영학 석사 및 비교문학 박사과정 수료

다수의 문화상품을 기획했고, 디자인과 상품 문화에 관한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