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서울책보고
김기창 수필집 《나의 사랑과 예술》
정우사 / 1977년 6월 30일 초판 발행
인스타그램 업로드_2024년 9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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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1913~2001) 화백이 자신의 작품세계와 영향을 받은 인물들에 대해 술회하고 있는 수필집으로, 1977년 정우사(正宇社)에서 발행했다. 김기창은 1913년 서울 운니동에서 당시 총독부 토지관리국 직원이던 아버지와 어머니 슬하의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여덟 살(보통학교 2학년) 때 장티푸스로 인한 고열로 청각(聽覺)을 잃은 후 언어 장애 증세를 겪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들의 재능을 알아본 어머니 소개로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1892~1979) 화백에게 동양화를 배워 1931년 조선미술대전에 출품하여 1940년까지 6회 입선, 특선 3회를 기록했다. 처음에 아버지는 목수를 시키면 평생 밥을 빌어먹을 수 있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끝내 어린 김기창을 데리고 이당을 찾아갔다고 한다.
이 책에서 그는 "참으로 내 평생은 기복이 심하고, 가싯길에서도 실망이나 패배감 없이 한 목표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 온 발자취다. 그것은 역경일수록 더욱 분발해 온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 나의 의욕적이고 자신만만한 정신을 키워준 세 분의 여성들― 나의 어머님과 외할머님 그리고 아내 박래현. 오늘의 나는 그분들의 희생적 봉사정신과 사랑, 의무감, 모성애의 강렬한 발로로 이루어진 존재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1930년 이당 김은호 문하에 들어간 김기창은 1931년 2월까지 사군자(四君子)를 반복해서 그리며 묵화(墨畫) 수업을 받았다고 한다. 마침내 이당은 제자의 재능을 인정하고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을 허락했으며, 석 달 뒤 조선미술대전에 출품하여 처음 입선한 작품이 널뛰기를 표현한 「판상도무(板上跳舞)」였다. 이는 뒤뜰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네 명의 처녀가 널을 뛰는 장면을 묘사한 것인데, 김기창이 안국동 뒷골목을 지나다 어느 기와집 담 너머로 처녀들이 널뛰는 장면을 보고 이를 스케치한 끝에 재현한 작품이었다. 먼저 신문 크기에 밑그림을 그려 스승에게 보이고 난 다음 스승의 지시를 받아 150호 크기로 그렸는데 당시 상황을 비롯해 스승과의 관계와 화가로 성장하게 된 과정을 이 책에서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김기창 화백의 화풍은 자유롭고 활달한 필력으로 힘차고 동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여, 고시적인 풍속화에서부터, 형태의 대담한 왜곡을 거쳐 극단적인 추상에 이르기까지 구상, 추상의 전 영역을 망라하는 폭넓은 작가적 역량을 구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복음서의 예수 전승(傳承)을 한국적으로 해석하여 예수를 한복을 입은 한국인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대표작으로 「세종대왕 초상」, 「군마도」, 「청산도」, 「소와 여인」, 「가을」, 「보리타작」 등이 있다. 다만, 그가 일제 군국주의를 찬양·고무하기 위해 그린 「님의 부르심을 받고서」, 「완전군장의 총후병사」 등은 1943년 8월 6일 자 <매일신보>에 실림으로써 친일 행적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예술가로서의 생애에 있어 아쉽고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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