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연실
출판사 이야기장수 대표이자 편집자. 문학동네 편집자로 근무하다, 문학동네 계열사 이야기장수를 운영하며 책을 만들고 있다.
이슬아 작가의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 김하나 황선우 작가의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이옥선 작가의 『즐거운 어른』, 박미옥 작가의 『형사 박미옥』 등을 기획편집했다.
『에세이 만드는 법』을 썼다. 제53회 한국출판공로상(기획편집 부문)을 수상했다.
1) 채링크로스 84번지(헬렌 한프 | 궁리)
평생 단 하나의 작품도 성공시키지 못했던 뉴욕의 여성작가에게 위로라고는 오직 고상하고 아름다운 책뿐이었다.
런던의 중고서점 <마크스 서점>에 보낸 까탈스러운 도서주문서는 이 작가의 매력과 삶과 철학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고,
서점직원 프랭크 도엘은 도서대청구서에 한 애서가이자 작가를 향한 깊은 존중과 애정을 실어 보낸다. 한 작가의 생을 역전시킨
이 20년간의 우정이 담긴 책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서간집이다.
2)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이슬아 | 이야기장수)
<일간 이슬아>라는 발칙하고도 혁명적인 연재 플랫폼으로 독자들과 직거래한 이슬아 작가는 일하는 태도와 일상부터 다르다.
이메일로 인생을 바꾼 이 젊은 작가는 이메일에 만만치 않은 비즈니스의 노하우를 담는 것은 물론, 단 몇 개의 단어로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을 알고 있다.
이슬아는 어떻게 이슬아가 되었는가. 창작자, 직장인, 자영업자, 생활인 모두에게 유용하고도 감동적인 이슬아의 기억과 기록이 이 책에 있다.
3) 전태일평전(조영래 | 아름다운전태일)
내게 전태일은 투사나 열사만은 아니다. 자신보다 더 가난하고 노동에 찌든 어린 시다들에게 버스비로 붕어빵을 사주고,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쌍문동 집까지 그는 세 시간을 넘게 걸어다녔다는 사람이다. 나의 고통보다 내 곁의 배고픔과 고통에 더 아파했던 이웃이다.
그가 사회의 부조리와 가난의 구조를 인식하고 끝내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가 되기까지의 여정이 고스란히 적힌 이 책은 내가 죽기 직전까지 거듭 읽을 이 사회의 경전이고 경종이다.
4)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최규석 | 길찾기)
어렸을 적 우리가 사랑한 명랑만화 둘리가 이 도시의 공장노동자가 되었다.
프레스기에 손가락이 절단된 둘리는 더이상 ‘호오잇’ 하고 마법을 부리지도 못하고, 도시 한 골목에서 깡소주를 마시는 우울한 현실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송곳』 『지옥』 등 걸작만화를 그려온 만화가 최규석의 데뷔작인 이 만화는 한국 사회에서 어느 시점이 지나면 결코 명랑하게 살아갈 수 없는 어른 노동자의
슬픔과 분노의 궤적을 그린다. 한국 만화계의 한 이정표가 된 천재 만화가의 탄생을 알린 작품이다.
5) 자전거여행 1, 2(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문학동네)
김훈 작가의 산문은 5G나 KTX의 속도가 아닌 ‘자전거’의 속도로 읽어야 한다. 나는 김훈의 산문을 손가락으로 투명한 밑줄을 그어가면서 읽는다.
무엇 하나 허투루 쓰지 않는 김훈의 천년고목 같은 단단한 문장을 읽는 것은 한국어 사용자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라 믿는다.
이 책은 김훈 작가가 전국 방방곡곡을 자전거로만 여행하며 쓴 책이다. 숨어 사는 아름다운 존재와 공간들이 티끌만큼도 과장하는 법을 모르는
이 정직한 산문가의 문장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아름답고 또 아름다워 이 생과 세계가 절망스러울 때마다 읽는다.
6) 헝거(록산 게이 | 문학동네)
아주 어렸을 때 순진무구하게 좋아하고 동경하던 남자애와 그 친구로부터 무자비한 윤간을 당한 여성이 있다.
여자는 생존했지만, 다시는 그 누구로부터도 부숴지지 않기 위해, 그 누구의 욕망의 대상도 되지 않기 위해 몸을 부풀리기 시작한다.
영원한 배고픔과 허기가 그의 인생을 지배한다. 록산 게이의 <헝거>는 처절한 투쟁의 기록이다. 여성으로서, 생존자로서, 인간으로서, 나는 이 이야기를 울지 않고 볼 방도가 없다.
나는 이 이야기를 끝없이 얘기하며 모두와 함께 울고 싶다.
7) 오춘실의 사계절(김효선 | 낮은산)
평생 청소노동자로 일한 엄마의 몸에는 상처가 새겨져 있다. 여기저기 굽고 아픈 그 몸을 딸은 씻어주고 펴주고 싶다.
그토록 고된 육체노동으로 키운 딸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책을 읽고 고르는 번듯한 직업을 얻었으나, 일터에서 사람 때문에 병이 난다.
그래서 딸은 엄마와 함께 수영을 배운다. 딸의 노동과 엄마의 노동이 교차하고, 고난을 견뎌온 엄마의 삶이 딸을 일으킨다.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들에게 이 눈부신 책을 바친다.
8) 한 말씀만 하소서(박완서 | 세계사)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대치의 고통으로 '참척'을 꼽는다. 자식이 부모보다 앞서 세상을 떠났을 때 살아남은 부모가 겪는 고통이다.
박완서 작가는 그 무자비한 고통 속에서 신음하며 이 책을 썼다. 자신의 전부와도 같았던 아들은 흔적 없이 사라졌고, 세상은 태연하다.
도저한 허무와 절망 속에서도 그러나 박완서 작가는 찾아내고야 만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고 남아 있는 것들의 이유를.
대가의 통곡과 절규, 기도가 낱낱이 가슴을 파고든다.
9)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김하나 황선우 | 이야기장수)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 대한 편견과 잔소리가 그득한 이 세상에서 김하나 황선우 작가는 결혼하지 않고도 두 여자가 얼마나 멋지게 살 수 있는가를 낱낱이 보여준다.
이 두 여자가 집을 합치고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은 웬만한 로맨스보다 재미있고, 웬만한 결혼생활이나 성공수기보다 설레게 짜릿하다.
최근 영국 펭귄랜덤하우스와 미국 하퍼콜린스에서도 판권을 사간 한국 논픽션의 걸작이다.
10) 달까지 가자(장류진 | 창비)
비트코인 떡상을 꿈꾸는 젊은 여성 직장인들의 시트콤 같은 이야기 사이로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한숨 나는 현실과 여전히 엄존하는 칼날 같은 계급사회의 모순이 파고든다.
이거 내 친구가 올린 거 아닌가, 싶게 웃기고 현실적이지만, 오직 소설이 해낼 수 있는 판타지와 위로와 통찰이 빛난다.
지금 우리 시대를 가장 재미있고 맛깔나게 써내는 이야기꾼 장류진 작가의 보름달처럼 꽉 찬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