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소윤
명리학자가 경고하길 “바늘 같은 사람이니 되도록 말을 삼가시오!” 주업은 스탠드업 코미디언.
1) 아무튼, 예능(복길 | 코난북스)
한국 예능과 예능인에 대한 코멘터리이자 자전적 회고록. ‘TV 덕후’ 저자가 TV 속 세계와 연결되기를 소망하다,
TV에 재현된 세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기까지의 이야기이다.
세상을 반영하고 재생산하는 양방향 매체로서, TV 예능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해야 할지 묻는 책이다.
저자와 함께 예능의 새 세계를 꿈꿀 수 있어 잠시나마 즐거웠다.
2) 여수(서효인 | 문학과지성사)
이 땅 위에 무수한 국지전이 펼쳐져 왔음을 우리는 패자 혹은 패자나 다름없는 승자의 음성으로 가늠할 수 있다.
화자들은 세계의 잔인함에 조용히 몸서리치는 한편 자신의 잔인함을 고백한다. 폭력이야 전유후유하리라는 예감을 갖게 한다.
어쩌면 이 예감은 ‘삶’이라는 전투에 임하기 위해 갖춰야 할 첫 번째 무장일 테다. ‘K-낭만’에 맞설 힘이 되어줄 테다.
3)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장정일 | 마티)
장정일에게 읽히는 작품만큼 복받은 작품도 없다. 그가 날 선 비판을 할지라도.
말 그대로 판에 박힌 글자들이 ‘장정일’이라는 매체를 거쳐 활자가 된다. 이명박 자서전마저 흥미롭게 느껴진다.
“읽은 책이 세상이고, 읽기의 방식이 삶의 방식”이라는 저자의 말은, 그 자신에 한해 결코 허풍이 아니다.
나는 감히 장정일처럼 읽고 싶어서, 장정일에게 읽히고 싶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4) 이듬해 봄(신이인 | 난다)
시, 에세이가 교차되는 산문집. 신이인의 글을 수식하는 표현은 ‘씩씩하다’, ‘뒤끝 없다’이다.
이 ‘뒤끝 없음’에 깃든 슬픔을 생각한다. 마음의 잔반이 없기까지 이 화자는 얼마나 먹어 치워야 했을까, 소화해야 했을까. 전학생의 모습이 떠오른다.
학급의 질서를 파악하지 못했으면서도, 며칠 혼자 점심을 먹은 후에도, 먹성을 못 잃은 전학생.
그 애에게 악수를 청하는 심경으로 이 책에 손을 뻗는다.
5) 오늘 너무 슬픔(멀리사 브로더 | 플레이타임)
밤이 길어지는 하반기를 위한 책 처방. 극심한 공황장애를 겪던 작가가 ‘@sosadtoday’라는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 진솔한 글을 올린 게 이 책의 발단이다.
심연의 슬픔과 강박, 중독에 관해 고백하면서도 참 여유만만하게 독자를 웃긴다.
블랙코미디가 한가득인 이 책을 읽고 난 뒤, 나는 두려움과 욕망을 직시하고 싶어졌다.
야트막한 에너지가 돌아 대뜸 옷장 정리를 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