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목하
SF와, 판타지, 미스터리를 유연하게 결합해 낯선 세계 속 인간의 감정과 불안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작가다.
데뷔작 『돌이킬 수 있는』을 통해 한국 SF 장르 문학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에도 감각적인 상상력과 밀도 높은 서사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확장해오고 있다.
1)제5도살장 | 커트 보니것
‘세계를 확장시키는’이라는 주제의 큐레이션에 이끌리셨다면 잠시 몇 초만 멈춰서 이 책 속 부조리를 능가하는 2020년대 중반의 침공과 학살을 함께 생각하자. 우리 시대의 패악을 괴로워하지 않으면서 생각과 세계가 확장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작품을 문학계만의 작은 고전으로 조용히 남기지 못하는 것이 비극이다. 우리는 제6, 제7, 제8도살장 안에서 비타민 시럽을 찍어 먹는 삶에 안도하지 말고, 조만간 밖으로 나가 이웃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미사일을 올려다봐야 한다.
2) 어떤 소송 | 율리 체
어떤 극단적인 세계를 상상하고 이해하려 할 때 우리는 ‘보통’과 ‘정상’을 대변하는 ‘중간’의 눈과 귀로 이야기를 듣는 데에 익숙하지만, 이 책은 극단의 눈으로 다른 한쪽 극단을 보고 듣는 경험을 안겨준다. 수정되지 않는 법질서를 정신질환의 눈으로 바라보고, 강제된 행복을 불행의 눈으로 바라보는 일은 어떤 대답을 낳는가? 만약 세상이 매일 수술을 당하고 있다면 그 사실을 크게 외칠 수 있는 건 병동에서 병상의 오감을 목격하는 병자일 수밖에 없다.
3) 삼사라 | 김창규
단정한 박자에 맞춰 머리를 두드리는 빛나는 이야기들. 놀라운 개성을 분출하는 소설집들은 수없이 많지만, 이렇게 대부분의 작품이 정갈한 논리 기계처럼 맞물리는 단편 모음집은 흔치 않다. 수록작 「뇌수(腦樹)」가 특히 손꼽게 경이롭고 아름답다. 읽고 난 후엔 가을이 아니더라도 머리 위를 올려다볼 때마다 은행잎 모양의 빗살이 눈앞에 아른거릴 것이다.
4)갈릴레이의 생애 | 베르톨트 브레히트
천구의 움직임이든 인간의 행동이든 환상을 내려놓을 때 제대로 된 진실이 보임을 전하는, 스승과 제자의 의자가 뒤바뀌는 역전 이야기. 행성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중심을 한 바퀴 돌아 결국은 자기 자신이 등졌던 바로 그 자리로 돌아오게 됨을 곱씹게 된다. 우리가 버린 것들은 그 모습 그대로 찾아오기 마련이고, 나의 과거가 다른 이의 미래가 되어 방문하는 무서운 승계의 순간이 올 것임을. 나의 전진이 끝나야만 비로소 시작되는 더 큰 도약이 있음을.
5)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 | 아글라야 페터라니
순수한 언어로 폭력과 비극을 노래하면 얼마나 고통스럽게 불순해지는지 극한까지 경험시켜 준다. 뼈를 긁히는 것 같다. 어린이로 살았던 기억이 다 지워지고 지금 당장 노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문학 따위의 놀음은 다 장난 같고, 세상의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다 모아놓는대도 한낱 오염물질로만 보일 듯한 아득한 슬픔에 빠지게 된다.
6) 가벼운 마음 | 크리스티앙 보뱅
순간의 삶을 순간의 기분대로 살아가는 인물을 깊은 사랑의 시선으로 그려내는 이야기가 작가의 의도 이상으로 정치적이다. 정치 혐오와 반(反)정치의 함정에만 빠지지 않는다면 비(非)정치도 시적인 반골이 될 수 있음을 노래하듯이 부드럽게 보여준다. 가벼운 영혼과 가벼운 인생을 묘사하는 글은 가벼운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믿었던 나의 오만은 결국 완전히 깨지고 만다.
7) 붉은 인간의 최후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한 시대를 바라보는 다양한 입장과 다양한 가치관 소유자들의 목소리를 관용의 마음으로 두루 듣는 것이, 한 역사학자의 평생의 저작물을 독파하는 것 이상으로 깊은 이해를 가능케 함을 알려주는 책. 선과 악, 혼돈과 치유, 무지와 깨달음이란 같은 마을에 나란히 집 짓고 사는 이웃과 같고, 러시아의 역사 일부와 우리 역사 일부는 그 울타리를 넘나들며 놀았던 소꿉 자매처럼 닮았다.
8) 그때 프랑스는 그랬다 | 파비앙 뉘리(글), 실뱅 발레(그림)
무고한 사유로 악을 돕는 삶. 그리고 비겁한 의도로 정의를 돕는 삶. 생존을 위협받는 사람이 생존과 풍요에 집착하며 질주할 때 이 두 삶을 모두 살게 됨을 실재 인물의 인생을 빌어 보여준다. 폐허의 시대를 살아온 인물들을 정직하게 해부하면서, 아름답지 않은 헌신들을, 그러나 헌신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는 헌신들을 똑바로 바라보게 해주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