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훤 (시인, 사진가)
조지아공대에서 기계공학 학부를, 시카고예술대학에서 사진학 석사를 마쳤다. 『양눈잡이』, 『청년이 시를 믿게 하였다』 등 여덟 권의 책을 쓰고 찍었다.
여러 대륙을 오가며 <공중 뿌리> <We Meet in the Past Tense> 등의 전시를 열었다.
매일 고양이 똥을 치우고 아내의 소설을 영어로 번역 중이다.
1) 노탄 | 필립 퍼키스
평생 사진을 찍어온 거장 필립 퍼키스의 책을 여러 권 소장하고 있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사진가는 공교롭게도 서서히 시각을 잃는 병에 걸리게 된다. 그가 1년 반 동안 남긴 마지막 사진들. 사진도 사진이지만, 박태희 편집자와 나눈 100페이지 가까운 인터뷰를 읽고 나서 나는 책장 가장 잘 보이는 데 이 책을 꽂아 두었다. 두고두고 다시 읽으며 눈과 몸 곳곳에 새기고 싶어서. 오래도록 받들고 싶은 문장들 투성이다.
2) 그냥 못 넘겼어요 | 김상혁
좋은 이야기를 쓰고 싶을 때 김상혁의 책을 펼친다. 덤덤히 생활감 있는 소재로 이야기를 써 내려가지만 그가 쓰는 산문과 시는 내 안에 쌓인 생각들을 어떤 식으로든 휘저어 놓는다. 독서하는 자들에게 궁극의 경험은 그런 모습 아닐는지. 알던 세계가 전혀 모르는 곳으로 기울어지는 순간. 겪어본 적 없는, 타인의 마음에 걸려 넘어지는 축복. 그의 책 때문에 여러 번 알게 된 마음이다. 김상혁 시인의 시와 산문을 꼭 읽어보시길.
3) 서울의 어느 집 | 박찬용
집이라는 개념은 나에게 오래된 화두다. 하여 사진과 산문, 시 등을 오가며 탐구해 왔는데,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집을 재고하기 시작했다. 매우 실질적인 대상으로써의 집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뛰어난 인간이, 집수리 앞뒤로 마주하는 자신의 기질과 강박, 삶의 추동 때문에 겪게 되는 일들이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 그걸 옮긴 그의 문장들도 매력적이다. 이 책을 이렇게 소개할 수도 있지만 — 에디터로 일하며 안목을 벼려온 박찬용이 50년 된 집을 가꿔온 일대기 — 나는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났다. 서울에서 집과 얽히며 직업적으로 사회-경제적으로 한 개인이 맞닥뜨리는 여러 변화를 상세히 살펴보는 즐거움이 컸다.
4) 아릿한 포옹 | 황예지
사진이 궁금한 사람. 사진이라는 매체 앞뒤로 일어난 굵직한 사건을 배우고 싶은 사람. 그리고, 카메라를 든 자가 얼마큼 사적으로 사진과 관계 맺게 되는지 일례를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적극 권하고 싶다. 황예지는 동물적으로 사진을 찍지만, 성실하게 사회라는 집단으로서의 얼굴과 개인의 초상을 기록해 온 사진가다. 고집스럽게 자신의 화두를 찾아 치열하게 질문해 왔다. 그럼에도 그가 쓴 이 책은 어렵지 않은 언어로, 왕왕 사적인 이야기를 동원해 사진이라는 매개를 향한 초대장을 보낸다. 동물적인 사진가가 이미지에 대해 친절하게 쓴 산문이라니.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5) 유원지 왔니? | 강상헌
어떤 시집을 읽을 땐 다음 시편으로 넘어가기 전부터 기대에 차오른다. 시인이 쓴 시들이 정형에 갇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어떻게 다르게 썼을까? 예상치 못한 쪽으로 나아갈 땐 끌려가는 쾌락이, 푸하하 웃게 만드는 시 앞에서는 항복하고 싶은 열망이 찾아온다. 여러 번 다르게 정복당하는 시집을 오랜만에 읽었다. 강상헌 시인의 다음 시집을 애타게 기다린다.
6) 세계의 북디자이너 10 | 전가경, 정재완
책이라는 물성을 집요하게 아끼는 독자들을 가끔 만난다. 서체와 판형, 자간과 장평, 시각 언어와 레이아웃을 활용하는 방식 등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들이지 않는 이들. 텍스트도 좋아하지만 책이라는 물성을 너무 좋아하는 이들. 한 권의 언어가 몸 입은, 바로 그 육체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살펴보길 권한다. 탁월한 북디자이너들의 작업을 한 권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니. 독자로서 사치가 아닐 수 없다. 이 모든 자료를 출판사에서 집대성하기로 하셨다니 무척 감사하다. 다만 방대한 양의 이미지와 텍스트를 살피며 고생했을 전가경, 정재완 작가가 얼마간 걱정되었다.
7) 시네마토그라프에 대한 노트 | 로베르 브레송
무대를 앞둔 모든 종류의 동료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 여느 좋은 텍스트가 그러하듯, 로베르 브레송의 문장들은 연극과 영상 매체의 방법론에만 그치지 않는다. 연극 작업 때문에 읽기 시작했지만 나는 『시네마토그라프에 대한 노트』를 성경처럼 매일 펼쳐 읽고 필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친구에게 선물 받아 읽고 나도 여러 권째 선물하고 있는 책. 글 쓰는 작가에게, 이미지를 다루는 사진가에게, 커튼 뒤에서 대기 중인 동료 창작자들에게 추천한다. 이토록 엄중하고도 다정한 지지가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