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미나
서울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지은 책으로 『나를 갈라 나를 꺼내기』,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아무튼, 잠수』 등이 있다.
1) 야수를 믿다 (나스타샤 마르탱 | 비채)
글쓰기는 우리에게 의미를 만들게 하지만 어떤 경험은 그간 쌓아왔던 모든 의미를 붕괴시킨다.
그 붕괴의 과정을 책으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
프랑스의 젊은 인류학자 나스타샤 마르탱은 시베리아 캄차카 반도의 화산 지대를 홀로 탐방하다가 곰에게 습격을 당한다.
책은 러시아와 프랑스 병원을 거쳐 다시 캄차카 반도로 떠나기까지의 여정을 담았다.
죽음과 삶, 짐승과 인간, 비문명과 문명, 의미의 붕괴와 의미 사이를 오가는 경계의 책.
2) 베를린에는 육개장이 없어서 (전성진 | 안온북스)
베를린이라는 낯선 도시로 건너간 저자가 좌충우돌 일상 속에서 친구를 만나 우정과 맛난 음식을 나누는 이야기다.
이 책이 사랑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는 데에 있다. 유머도, 우정도, 좌충우돌도, 음식에 대한 애정마저 자연스럽다.
그래서 독서가 편안하다. 그럴 때 글은 저자보다 먼 데로 도착해 독자의 마음에 작은 불을 지핀다.
책을 통해 요나스를 만날 수 있어 기뻤다.
3) 피아 (자크 마에스(글), 리서 브라에커르스(그림) | 고트)
어린이가 알기에는 너무 가혹한 현실이라고 어른이 감히 짐작하는 것을 나름의 방식으로 진실하게 보여주는 그림책들을 좋아한다.
『피아』는 최근 가장 심장을 덜컹이며 읽은 그림책이다. 피아와 피아가 만나는 사람들의 관계를 어떤 정보도 없이 읽어보기를 바란다.
마지막장에 다다른 뒤 앞면지와 뒷면지, 책 곳곳에 그림을 다시 보는 기쁨도 있다.
4) 우는 나와 우는 우는 (하은빈 | 동녘)
이 아름다운 책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표면적으로는 비장애인 저자 하은빈이 근육병을 가진 장애인 우와 5년간 연애를 하다 헤어진 이야기다.
책이 진행될수록 연인의 세계는 좁고 험난해지지만 나는 위안이 필요할 때마다 어쩐지 이 책을 집어들게 된다.
현실의 어마어마한 압박 속에서도 끝내 사랑하는 마음을 지켜내는 (그것은 이별을 하고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하은빈의 세계에 머물고 싶어서다.
5) 소네치카·스페이드의 여왕 (류드밀라 울르차카야 | 문학동네)
도스토예프스키과 톨스토이, 푸쉬킨 등 러시아 문학의 거장과 나 사이의 고리를 만들고 싶을 때 나는 류드밀라 울르츠카야를 읽는다.
『소네치카』는 반복해서 읽은 소설인데, 읽을 때마다 책벌레 소네치카에게 마음을 한껏 빼앗기게 된다.
‘사람 죽이는 놈들이 누굴 이기건 말건 우린 항상 지기로 하자.’ 책 속 가장 좋아하는 문장 중 하나다.
6)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하재영 | 휴머니스트)
여자들은 어머니에 관해 글을 쓸 때 자주 분열된다. 이 책은 우리가 어머니에 대해 서술하며 헤맬 때 가장 훌륭한 본보기가 될 만한 작품이다.
어머니가 겪은 현실을 그대로 계승하지 않으면서도, 그 현실 속에서 고유성을 지키려 애썼던 어머니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분투하는 글.
쓰기와 말하기가 한 사람을 다시 살게 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7) 다도와 일본의 美 (야나기 무네요시 | 소화)
무엇이 아름다운가? 우리가 찬미해야 할 대상은 무엇인가?
일본의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가 다도와 아름다움에 대해 쓴 이 책을 읽고 내 안의 아름다움의 기준이 움직였다.
아름다움은 대상이 아니라 보는 이의 눈에 달려있다. 그가 무엇을 아름답다고 여기는지 주의깊게 살펴보았으면 좋겠다.
그러고나면 우리의 일상도, 주변 사람들도 달리 보일테니까.
8) 화염 (와즈디 무아와드 | 지만지드라마)
레바논계 캐나다 작가 와즈디 무아와드의 『화염』은 한국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내게 책의 형태로 가까스로 도착한, 낯선 세계의 이야기다.
나는 『화염』을 읽으며 과거로부터 도착한 현재의 트라우마에 우왕좌왕하며 서로를 죽일 듯이 미워하는 우리의 모습을 본다.
끔찍한 악인의 얼굴을 한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그리고 다음의 질문을 한다.
이 모든 일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