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유
인문공동체에서 ‘감응의 글쓰기’ 강좌를, 시민단체에서 성폭력피해생존자와 글쓰기 치유워크샵을 진행한다. ‘시사인’에 인터뷰를 연재하고 있다.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다가오는 말들』 등을 썼다.
1) 올어바웃러브 (벨훅스 | 책읽는수요일)
사랑 따윈 필요없다는 말은 사랑을 아직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신호다. 벨 훅스는 냉소주의 언어에 절여진 채 사랑에 등돌리곤 하지만 갈망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을 위해 작정하고 이 책을 썼다.
흑인, 여성, 학자, 활동가의 위치에서 나온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라는 사회적 구조의 맥락을 놓치지 않고 사랑과 사랑 아닌 것을 일러준다.
사랑이 가진 치유와 성장의 힘을 말하지만 문장이 신비화된 관념에 머무르지 않는 이유다.
우리를 사랑할 줄 아는 인간으로 이끄는, 동시대인의 지적이고 아름다운 21세기 최고의 사랑의 지침서다.
2)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나혜석 | 민음사)
나혜석은 100년 전 인물이지만 이책은 갓 출간된 것처럼 동시대적이다.
최초로 유화 개인전을 연 서양화가이면서 ‘경희’라는 작품을 쓴 소설가이고 독립운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한 독립운동가이고 나를 잃지 않는 엄마였던 사람.
‘여자이기 전에 사람이외다.’, ‘사람은 누구든지 힘을 가지고 있다.’고 외치는 그는 자신의 최대치를 살아낸 위인처럼 드높고 선배처럼 가깝다.
3) 필경사 바틀비 (허먼 멜빌 | 창비)
주인공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많은 것들이 일어나는 빨려들어가듯이 읽게 되는 놀랍고도 탁월한 이야기.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는 말을 마음에 심어준다. 주문 같은 저 말은 우리가 잃어버린 '부정의 능력'을 일깨운다.
내가 사는 삶을 구조 바깥에서 보게하는 소설.
4) 이 시대의 사랑 (최승자 | 문학과지성사)
"일찌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마른 빵에 핀 곰팡이/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첫 장 첫 행부터 파격적인 시가 이어지며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이라는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이 쟁쟁 울린다.
울고 싶은 사람 대신 울어주는 최고의 곡비, 시인에게 사랑과 존경을.
5) 소망 없는 불행 (페터 한트케 | 민음사)
배우지 못한 엄마, 외로워 자살을 선택한 어머니 생애를 아들이 기록한 자전적 소설.
아들인 내가 엄마의 삶을 써도 되는지, 쓰는 사람의 자격과 진실을 물어가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실험적 글쓰기가 매력이다.
소망 없는 불행은 자기 삶을 설명할 언어가 없는 불행.
6) 아침의 피아노 (김진영 | 한겨레출판)
철학자 김진영이 암을 선고받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1년간 써내려간 일기 모음.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삶에 밀착한 사람이다. 하루하루 투명하게 소멸하면서 그가 낚아챈 삶의 진면목은 아포리즘으로 남았다.
소란스러운 마음을 잠재우는 언어의 선율은 깊고 짙은 여운을 남긴다.
7)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 책세상)
니체로 들어가는 좁은 문. '가치의 전환', '도덕 비판', '신의 죽음' 등 문장 하나하나에 니체 사상이 깃들어 있다.
니체를 이해하는 사람은 이 책을 이해할 수 있지만, 이 책 하나만으로는 니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함정.
하지만 '나중'이 아닌 '지금 여기' 삶을 살게 하는 힘을 준다. 삶의 통찰이 가득한 잠언의 광맥.
8)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 (윤지영 | 클)
이 책은 방송작가, 핸드폰 판매 노동자 등 불안정하고 불합리한 환경에서 일하는 이들이 겪는
차별과 해고 같은 억울한 일에 함께 연대하고 힘을 보탠 노동인권변호사의 법적 투쟁기다.
사례마다 생생하고 읽고 나면 유익하다. 돈 버는 법, 성공하는 법, 마음 다스리는 법에는 나오지 않는 가장 필요한 꿀팁,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이 들어 있는 보물 같은 책이다.
필자의 직업 윤리를 배울 수 있는 건 덤이다.
9) 술꾼들의 모국어 (권여선 | 한겨레출판)
음식 이야기를 권여선만큼 풍성하고 맛깔스럽게 쓸 수 있는 작가가 또 있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명랑만화를 보는 아이처럼 큭큭큭 웃으면서 책장을 넘겼다.
단점이라면 군침이 돌아서 당장 무언가를 해먹어야 할 것 같은 다급함에 쫓기게 된다는 것.
장점은 형용사, 부사, 명사들이 적재적소에 알맞게 들어가 있는 문장들을 읽으며 모국어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질 수 있다는 것.
10) 우물에서 하늘 보기 (황현산 | 삼인)
황현산을 읽는다는 것은 지성이란 무엇인가를 경험하는 일이다.
모르던 것을 알게 해주는 정보적 가치, 시야를 넓혀주고 관점을 바꿔주는 인식적 가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심미적 가치 두루 충족되는 만족을 준다.
특히 불문학자인 그가 들려주는 한용운, 백석, 김수영, 최승자 등 시 이야기는 단조로운 정서를 시적 상태로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