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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06

INSIDE

[세렌디피티] 단기 4315년의 광화문과 서기 2015년의 남산

리스트20240112_153828.jpg

 

Serendipity

예기치 않은 메모나 물건을 발견하다


 

단기 4315년의 광화문과 서기 2015년의 남산


 


 

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상황에서 우연히 발견하는 것을 말하며, ‘행운’이란 뜻으로도 알려져 있어요. 서울책보고 서가 속 헌책들 속에도 우연히 발견되는 것들이 있답니다. 예전의 메모 또는 물건들이 마치 유물처럼 발견되는데요. 헌책들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시대의 흔적들은 헌책의 또 다른 매력인 듯 해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헌책 속 유물은 바로 두 줄의 메모와 한 장의 표입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유물들을 발굴한(?) 책은 바로 이 책이에요.


신동엽 시선집《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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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엽 시선집《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창작과 비평사, 1979년 3월 30일 발행, 당시 2,000원(남문서점 5,000원)


1979년 3월 30일에 발행한 이 책은 ‘창작과비평사(創作과 批評史)’에서 발행했어요. ‘1966년에 만들어진 출판사 ‘창작과비평사’는 사람들이 ‘창비’라고도 줄여서 불렀는데, 2003년부터는 ‘창비’를 공식적으로 사용한다고 해요. 한자로 인쇄되어있는 출판사명이 세월을 느끼게 합니다. 申東曄詩選集(신동엽시선집)이라는 제목도 역시 한자입니다.


겉표지를 넘기니 신동엽 시인의 소개가 나옵니다. 1930년 충남 부여 태생인 신동엽 시인은 ‘4.19 시인’으로 평가되기도 하는데요, 그렇게 평가되는 이유가 바로 이 시집의 제목으로로 쓰인 시〈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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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옆 페이지에는 메모가 적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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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5.6.28. 교보문고

정현숙이 아니고 철순이의 책이예요.


처음 보는 순간 전화번호인 줄 알았지만 이내 단기(檀紀)라는 것을 알았어요. 우리가 현재 일반적으로 쓰는 서기(西紀)가 아니어서인지 이 또한 세월을 느낄 수 있네요. 단기 또는 단군기원은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한 연대를 기준으로 삼은 상징적인 기년이라고 합니다. 기원전 2333년이 단기 1년이니 서기 2021년인 올해는 단기 4354년이고, 여기 적혀있는 연도는 단기 4315년이니 서기로는 1982년이네요. 단기에서 2,333을 빼면 서기가 나오고, 반대로 서기에 2,333을 더하면 단기가 나온다는 사실!Emotion Icon 저만 이번에 알았습니다. 네. 그렇습니다.Emotion Icon


1979년 발행된 이 시집을 지금으로부터 약 40여년전, 발행된 지 3년이 되는 1982년에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정현숙 님이 사셨고,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철순 님이라는 새로운 주인을 만난 것 같습니다.


책을 넘기다 두 번째 유물을 발견했어요.

사실 이번 세렌디피티는 두 줄의 메모만을 가지고 쓰려고 한 상황에서 정말 예상치 못한 발견이었습니다. 사실이에요!Emotion Icon

바로 남산케이블카 왕복권입니다. 대인 2명이 왕복할 수 있는 케이블카 탑승권인데요, 2015년 발행되었으니 지금부터 6년 전이네요. 유물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일찍 발견된 감이 어느 정도 있기는 하지만 6년이라는 시간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기에 이 또한 유물로 인정합니다. 아니... 인정해 주세요...Emotion 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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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32人詩集, 1967년》 

 

이 탑승권이 발견된 페이지에 있는 시는 그 유명한 <껍데기는 가라>였어요. <껍데기는 가라>는 신동엽 시인을 ‘4.19 시인’으로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수능에도 출제되고 교과서에도 많이 실린 유명한 작품이에요. 그런데 도대체 왜 <껍데기는 가라>가 실린 페이지에 케이블카 탑승권을 꽂아 두었을까요? 아무리 고민을 해도 도무지 이유를 짐작할 수는 없었지만, 꽂아두신 분은 이 시를 매우 기억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케이블카 탑승권을 꽂아두신 분은 메모에 두 번째로 등장한 이름인 철순 님일까요? 아니면 철순 님 다음으로 이 책의 주인이 된 분일까요? 혹시... 설마... 정현숙 님과 철순 님이 같이 남산 케이블카를 탔을까요? 터무니없는 상상일 수도 있지만 두 분이 2015년에 사이좋은 모습으로 남산 케이블카를 타는 모습을 상상하니 마치 가슴 따뜻한 영화의 엔딩 장면 속 노부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오늘은 단기 4315년, 서기 1982년에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구한 시집<누가 하늘을 보았는가>에서 발굴한 메모와 2015년의 케이블카 탑승권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단 두 줄의 메모를 통해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랍니다. ‘세월 따라 흔적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라는 어떤 노래 가사처럼 서울책보고 서가에는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추억 재생용 유물들이 남아있습니다.

꼭 한번 만나러 오세요.


Emotion Icon<광화문 연가>, 이문세, 이문세 5집(킹레코드/1988) 

 

 

 

 

 

 

섬네일 이미지 : 남산 케이블카
출처 :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B%82%A8%EC%82%B0_%EC%BC%80%EC%9D%B4%EB%B8%94%EC%B9%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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