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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06

BOOK&LIFE

[SIDE B] 고전을 위한 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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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위한 변호

 

Kidoonist(키두니스트)

웹툰 작가,  편식하는 독서가

 

 

‘독서’라는 말이 취미 란을 채우고자 적당히 써두는 단어로 전락한 지금에도, 진심으로 책을 즐기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그들은 대개 활자가 주는 신뢰감과 자유로움을 좋아하는 이들이다. 활자로 가득한 책은 독자에게 무한한 상상을 허락한다. 제한된 그래픽에 구애되지 않고 온전히 몽상 속에서 그 책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게 한다. 그것은 영화나 만화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고백하건대 어릴 적부터 책, 그 중에서도 고전문학을 좋아했던 필자는 별종일 것이다. 잠시 그 별종의 이야기를 하자면, 초등학생이 활자의 즐거움을 남에게 제대로 설파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그 시절에는 홀로 책을 읽었다. 때때로 그림 하나 없는 책이 어디가 재미있느냐는 말을 들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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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Kidoonist(키두니스트)

 

대입 수험생이 되기 전까지 독서는 일상을 떠받치는 하나의 기둥과도 같았다. 존 스칼지 말마따나, 충분히 훌륭해서 마법과 구분할 수 없는 작품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마법을 부리는 대마법사는 때로는 코난 도일이기도 했고 때로는 오 헨리이기도 했다. 여기서 눈치 챘겠지만 내가 읽은 책은 대개 20세기 초반 이전에 나온 것들이었다. 작가가 이미 이 세상을 떠나 없었으므로 친필 사인도, 신간도 기대할 수 없었다. 내게 있어 책의 저자란 옛 양복을 입고 흑백 사진 속에서 희미한 미소를 띤 위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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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아서 코난 도일(출처 : 위키백과) / (오른쪽) 오 헨리(출처 :위키백과)

 

입시를 끝내고 성인이 되니 다시 책을 즐겨 읽게 되었다. 그러나 고전문학을 읽는다고 하면 으레 비슷한 반응이 나타났다. 순간 할 말을 잃고, 다소 저어하며 감탄하는 표정 말이다. 상대는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양 바라보았고 더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온라인을 찾아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나치게 학술적인 감상이거나 애당초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많은 독자들은 고전을 마냥 재미없는 것으로 여기거나 자신이 무지해서 위대한 책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여겼다. 처음부터 오락적인 목적은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온갖 콘텐츠가 2, 3년만 지나도 잊혀지는 마당에 몇 백 년을 살아남아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온 작품들이 그저 학술적 가치만 있을까? 혹은 어떤 창작적 도식을 처음 정립했다는 가치만 있을까? 전자는 애초부터 철학적 담론을 위해 나온 작품일 경우 부합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고전으로 살아남은 작품은 세상에 나온 당시부터 ‘재미’를 인정받았고 지금도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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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Kidoonist(키두니스트) 

 

고전문학을 탐독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대부분의 현대 소설보다 재미있으리라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쓰인 당시 시대상에 대한 상식을 자연스레 습득할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이 말을 듣고 어떤 분들은 고전이 이미 케케묵은 클리셰만을 소화하는 한편 현대의 작품들은 그 안티테제까지 능수능란하게 활용한다며 현대 쪽을 고평가하실지도 모르겠다. 이쪽도 타당한 의견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직접 읽으셨다는 가정 하에’ 재미없다고 솔직히 말해주신 것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 거침없고 솔직한 감상이 좋은 독서의 시초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케케묵은 작품만 보는 사람으로서 일련의 변호를 하고자 한다. 현대 작품만 읽는 분들도 은연중에 아실 것이다. 클리셰 뒤집기마저 새로운 클리셰가 되어버린 이 시대에, 더 이상 창의성은 작품의 질을 크게 좌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요는 ‘잘 써야’ 하는 것이다. 탄탄하고 아름답게 짜인 문장으로 개연성을 챙기고 매력 넘치는 인물들을 그려내야 한다. 여기에 더하여 보편적인 정서를 드러내야 한다. 많은 독자들은 2020년대에도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를 보며 눈물을 흘릴 수 있으며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를 보고 실컷 웃을 수 있다. 오늘날 고전으로 기억되는 책들은 이렇듯 보석 같은 덕목을 지님으로써 살아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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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도시 이야기》, 찰스 디킨스, 홍익출판사(대성헌책방/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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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총사》,알렉상드르 뒤마,  (왼쪽)중앙문화사(헌책방나들이 / 7,000원), (오른쪽)동아출판사(헌책방나들이 / 7,000원)

 

고전을 만화로 리뷰한 지 2년이 넘은 지금, 나 자신은 나름대로 독서 전파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고 봐야겠다. 내 만화를 보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분들이 꾸준히 생겨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이 낡은 취미를 공유할 사람은 여전히 너무도 적기 때문이다. 이 글을 마치고서 나 또한 활자를, 그것도 옛 활자를 읽으러 가야겠다.

 

 


프로필 키두니스트.jpg

 

Kidoonist

웹툰 작가, 편식하는 독서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전 문학, 그중에서도 장르 문학 위주로 읽는 습관이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40여 권의 책을 만화로 리뷰했으며 누적 조회 수 80만 회를 기록했다. 

수입의 상당 부분을 책 사는 데에 쓰고 있으며 언젠가 개인 서재를 갖고픈 꿈이 있다. 

현재는 좁은 공간에서 SF와 추리물, 그 외 장르를 어떻게든 분류하고 있다. 

영국 여행 중 셜록 홈즈 박물관과 해리 포터 스튜디오를 가봤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지은 책으로 《고전 리뷰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