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05
INSIDE[오직서울책보고 다시보기] 《무진기행》이 처음 발표된 잡지
오직서울책보고 다시보기
《무진기행》이 처음 발표된 잡지
《사상계》 1964년 10월 호
인스타그램 소개일 : 2021년 5월 28일
안녕하세요. 서울책보고에만 있는 희귀하고 놀랍고 의미 있는 혹은 재미있는 책을 소개하는 '오직서울책보고'가 여러분을 만나러 왔습니다.
오늘은 여느 때보다 조금 더 특별한 책을 가지고 왔는데요. 한두 달 전에 대학생 혹은 대학원생으로 보이는 분께서 데스크에 문의를 해주셨어요. 《사상계》1964년 10월 호와 1965년 6월 호가 있는지 말이죠. 아마도 국문학을 공부하는 분이신 것 같았는데, 소설가 김승옥이 처음 《무진기행》과 《서울 1964년 겨울》 을 발표한 호수를 찾고 계셨던 거였어요. 아쉽게도 당시에는 서울책보고가 보유한 1960년대 《사상계》 중 그 두 권이 없었더랬죠. 그래서 내내 마음에 품고 있다가...
지난 5월 10일, '헌책방 비디오 산책' 촬영차 방문한 신촌의 한 책방에 이 두 권의 《사상계》가 있는지 문의드려봤어요. 그 헌책방은 특별히 옛날 문예지가 벽면 가득 빼곡하게 차 있던 곳이었거든요. 그 두 호수의 《사상계》가 있는지 찾아봐 주신다고 하셨는데, 이내 그 성실한 헌책방 대표님께서 1965년 5월 호는 없고, 1964년 10월 호는 갖고 계시다고 연락을 주셨죠.
그래서 드디어 품게 된 《사상계》 1964년 10월 호! 바로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처음 발표된 잡지랍니다.
'新春文藝當選作家短篇選(신춘문예당선작가단편선)'이라는 꼭지에 한자로 ‘霧津紀行(무진기행)’이라 적힌 제목과 ‘金承鈺(김승옥)’이라 적힌 작가명이 고풍스럽고, 펜으로 아무렇게나 그린 듯 뭔지 모르게 멋진 삽화가 눈길을 끕니다.
“뻐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Mujin 10km>이라는 이정비(里程碑)를 보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1964년 버전의 무진기행. 후에 많은 문학청년들이 필사할 작품이 될 이 단편소설은 세로쓰기와 60년대식 외국어 표기로 세상에 처음 선을 보입니다. 이와 더불어 서울책보고에 있는 다른 《무진기행》도 소개하고 싶네요.
▶ 《김승옥 소설 전집 1권》(1995년 초판), 문학동네, 숨어있는책(3,000원)
▶ 《무진기행》, 《김승옥 소설 전집 1권》(1995년 초판), 문학동네, 숨어있는책(3,000원)
▶ 《무진기행》(2017년 2판 35쇄), 민음사, 서적백화점(4,500원)
이 책에는 특별히 1980년 초판본에 실렸던 작가의 말이 실려 있습니다.
소설이란 추체험의 기록,
있을 수 있는 인간관계에 대한 도식,
구제받지 못한 상태에 대한 연민,
모순에 대한 예민한 반응,
혼란한 삶의 모습 그 자체.
나는 판단하지도 분노하지도 않겠다.
그것은 하느님이 하실 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의미 없는 삶에
의미의 조명을 비춰 보는 일일 뿐.
시대가 거듭되어도 계속 읽히는 《무진기행》. 하지만 발표된 지 6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소설 또한 시대가 달라지며 계속 새롭게 읽혀야 하겠지요. 중산층 남성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을 저 또한 청소년기에 뭣도 모르고 읽었을 때와 성인이 되어 읽었을 때 다가오는 의미가 많이 달랐거든요. 특히 주인공 윤희중에게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풍경 정도로 여겨진 여성 하인숙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구한 지금, 그 국문학도에게 연락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이 소중한 자료를 읽고 2021년의 젊은 문학도가 그만의 관점으로 또 새롭게 이 소설을 읽어내기를 바라면서요.
글 박혜은
사진 박혜빈
'오직서울책보고 다시보기'는 서울책보고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미 공개되었던 <오직서울책보고> 콘텐츠 원고를 엄선하여 다시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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