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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05

BOOK&LIFE

[SIDE A] SF소설 쓰는 공학박사 곽재식 작가가 전하는 '죽음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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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사자도(四直使者圖), 국립중앙박물관, 출처 : 문화유산채널(클릭 시 이동) 

 

 

죽음의 전설

 

곽재식

공학박사, 작가

 

 

 

소크라테스의 죽음.jpg

▶ 소크라테스의 죽음(1787), 자크루이 다비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출처 : 위키백과(클릭 시 이동)

 

흔히 미래는 알 수가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사람은 죽는다는 사실이다. 누구나 사람이라면 죽는다. 틀리는 법이 없다는 삼단논법을 처음 배울 때 처음 접하는 예시에도 이 말은 꼬박꼬박 등장한다.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고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이러한 사실은 과학의 영역에서도 지금껏 변함없는 사실로 인정되고 있다. 최근 기술의 빠른 발전을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시신을 냉동 보관한 뒤에 기술이 발전한 미래에 되살린다든가, 생명 공학, 나노 기술의 발전으로 노화를 멈추고 수명을 무한에 가깝게 늘릴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적어도 아직까지 죽음의 진리는 유효하다.

 

 

《용재총화》라고 하는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이야기책에는 당시 사람들 사이에 돌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역사적 사실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그저, 떠돌던 소문, 누군가 과장해서 지어낸 이야기쯤이라고 볼 만한 이야기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 내용은 싱겁고 가볍다고 그냥 넘길 만한 것은 아니다.

 

용재총화 본문 이미지.jpg

《용재총화》(慵齋叢話) 본문,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클릭 시 이동)

 

세종 임금의 아들 중에 광평대군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세종 임금은 신분을 숨긴 채 아주 용한 점쟁이에게 광평대군의 미래를 점치게 하였다. 자기 아들의 운명이 어떤지 물어보는 세종 임금의 질문에, 점쟁이는 뜻밖의 대답을 한다.


“젊은 나이에 못 먹어서 굶어 죽을 운명입니다.”


세종은 터무니없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온 나라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인 임금의 아들이 굶어서 죽을 수 있겠는가? 역시 미래를 내다본다는 것은 허황한 일이라고 웃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얼마 후 세종은 그래도 만약에,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혹시, 어떤 특수한 일 때문에 다섯째 아들이 망할 수가 있을까? 세종은 할아버지 태조가 고려라는 나라를 뒤엎고 조선이라는 나라를 건국하는 과정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으며, 아버지 태종이 임금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잔인하게 형제와 친척들을 처치했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만일, 아들들끼리 나중에 싸움이 일어난다면 광평대군이 밀려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광평대군이 모든 재산을 압류당하고 괴로운 처지에 빠져서 빈털터리가 되어 굶주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세종의 아들 중에는, 나중에 조카 단종의 옥좌를 빼앗는 수양대군이 있었다. 어쩌면 세종이 그런 불길한 느낌을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세종은 광평대군에게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땅을 내려 주고, 국법으로 절대 그 땅과 거기서 나는 재물은 아무도 가져가지 못하게 못 박아 두었다고 한다. 혹시 나중에 정치적인 다툼이 일어나 광평대군이 몰락한다고 해도, 적어도 밥 먹고 살 정도의 재산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흔들리지 않는 나라의 법으로 철저히 보호하고자 했다. 이렇게 해 두면, 무슨 일이 생기든 적어도 광평대군이 굶주리지는 않을 거라고 믿은 것이다.


세월은 흘러 서기 1444년이 되었다. 광평대군은 20세였다. 광평대군은 몰락하지도 않았고, 재산이 없지도 않았다. 죽음의 예언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해 어느 날 광평대군은 생선을 먹다가 목에 가시가 걸렸다. 너무나 아파서 조금도 건드릴 수 없었고,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다시 뽑을 수가 없었다. 결국, 광평대군은 목에 걸린 생선 가시 때문에 음식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굶어 죽어 버리고 말았다. 곳간에는 먹을 것이 가득하고 세종 임금이 내려 준 땅에서는 쌀이 얼마든지 잘 자라고 있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The_skeleton_of_the_black_bass_(1900)_(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The_skeleton_of_the_black_bass_(1900)_(14586465960).jpg).jpg

▶ 검은 배스의 뼈(1900년), 출처 : 위키피디아 커먼스(클릭 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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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전주 이씨 광평대군파 묘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클릭 시 이동

 

이 이야기의 요점은 점쟁이가 미래를 알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같은 책에는 전혀 다른 반대의 이야기도 실려 있다. 

 

조선 초에 복진(卜眞)이라는 사람이 갖가지 주술에 능했다고 한다. 하루는 그가 자신의 운명을 점쳐 보니, 곧 죽을 운명이었는데 자신의 목숨이 임금에게 달려 있다는 점괘가 나왔다. 그는 자신의 점술이 맞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궁궐로 들어가 임금을 만나고자 한다. 온갖 주술을 활용해 경비가 삼엄한 궁궐에 몰래 숨어든 그는 임금님에게 목숨을 구해달라고 말하며 사정을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임금은 그가 말한 내용에는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궁궐 깊은 곳까지 숨어들어온 그의 재주와 행동이 위험하다는 생각부터 먼저 떠올린다..


"몸을 숨기고 궁궐을 침범해 깊은 곳까지 들어 왔으니, 죄가 무겁고, 참으로 위험하다."


임금은 그렇게 말하고는, 궁궐 속에 몰래 침범한 죄로 복진을 붙잡아 그날로 사형시키라고 명령했다. 그것이 복진의 최후였다.

 

 

 

모아 놓고 보면, 이런 이야기들의 교훈은 결국 일생의 마지막에 찾아오는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것 아닌가 싶다. 미래는 희망찬 것이고, 사람은 항상 훗날을 기약할 수 있다지만, 그 마지막에는 언제나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이런 사실은 무섭고 슬픈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이야기를 잠깐씩 돌이키는 순간이 바쁘게 지나가는 세상사의 가운데에서도 언제나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덥고 짜증 나기 쉬운 여름, 잠깐 서늘함을 느끼며 숨을 돌리는 이야기로도 괜찮은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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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공학박사, 작가

 

SF를 중심으로 여러 장르에 걸쳐 다수의 단편소설집과 장편소설집을 출간했으며, 다양한 교양서와 과학책도 출간했다.

최근에는 MBC <심야괴담회>, SBS <당신이 혹하는 사이> 등 대중 매체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단편집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ㅁㅇㅇㅅ》, 

장편소설 《신라공주해적전》,《가장 무서운 예언 사건》, 

교양서 《괴물 과학 안내서》,《한국 괴물 백과》 등이 있다.

섬네일 이미지 : 《용재총화》 1, 2, 3권 표지
▶ 이미지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GetImage?t=origin&id=889cc622-9a1f-42e9-9be1-276011333173&w=878&h=5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