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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04

BOOK&LIFE

[SIDE B] 우리의 몸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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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몸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김겨울

작가, 유튜브 겨울서점 채널 주인장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양치질을 하고, 옷을 입고, 걷고, 하루 종일 앉아있고, 움직이고, 돌아와 눕는, 그 모든 과정에, 그 지극히 개인적인 모든 과정에 침범하고 있는 것이 있다. 

누구도 관여할 수 없을 것 같은 나 혼자만의 일들에 촘촘히 침범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걸 ‘사회’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다. 어려울 것이 없다. 유튜브에 한 단어만 치면 된다. ‘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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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씬해지려는 여성들이 식사량을 줄인다. ‘클린 식단’을 챙겨 먹는다. 반작용으로 음식에 대한 욕구는 점점 강해진다. 눈을 감으면 음식이 어른거린다. 결국 참지 못하고 빵이며 디저트를 먹어치운다. 다이어트 전에는 쳐다도 보지 않았던 달달한 음식으로 폭주한다. 단 음식을 먹고 느끼해진 속에 맛도 느껴지지 않는 매운 음식을 넣는다. 매운 음식을 먹고 다시 디저트를 뜯으려다가,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가, 이왕 먹은 거 오늘만 먹고 내일부터 다시 다이어트를 하자고 생각한다. 꾸역꾸역 밀어 넣는 과자, 빵, 초콜릿. 그리고 완전한 자기혐오의 시간. 거울을 본다. 뱃살을 꼬집어본다. 팔뚝을 털어본다. 굳은 결심으로 잠들었다 깨어난 다음 날, 체중을 잰다. 하루 만에 몇 킬로그램이나 불어난 체중을 보고 절망한다. 힘이 빠진다. 허기진 배에 참지 못하고 또 ‘살찌는 음식’을 넣는다. 어제보다 더한 자기혐오의 시간. 눈물을 흘리며 그날을 굶거나, 손가락을 목 깊숙이 넣어 토한다. 치아가 부식되고 위염과 식도염이 악화된다. 반복되는 단식과 폭식과 자기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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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도 알고 있다. 이게 몸을 망치는 일이라는 걸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미 이들의 머릿속에는 왜곡된 이상향과 체중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 넝쿨처럼 자라나 가지치기가 불가능한 수준이 되어있다. 평범한 집밥을 챙겨 먹고 간식을 끊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면 된다는 걸 알면서도, 이들은 탄수화물 공포증 때문에 밥을 입에 넣지 못한다. 이들의 영상 제목에서는 우울과 불안과 공포가 짙게 묻어난다. ‘우울한 폭식 브이로그’, ‘인생 망함’, ‘약물 부작용’.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다이어트 유튜버들의 영상이 함께 뜬다. ‘폭식 후 대처법’, ‘폭식 다음 날 대처법’. 이들에게 힘을 내라는 듯이 섭식 장애를 극복한 유튜버들의 영상도 뜬다. ‘내가 폭식을 극복한 이야기’, ‘섭식 장애 경험담’, ‘폭식 이렇게 고쳤습니다’. 지금 극복 중인 사람들의 의지 가득한 영상도 있다. ‘폭식 극복 중’, ‘탈 다이어트 브이로그’. 또 한편에서는 이들을 놀리는 듯이 먹방 유튜버들의 영상도뜬다. ‘이번 주말 폭식’, ‘만 칼로리 챌린지’. 누군가는 보디 프로필을 찍어 자랑하고, 누군가는 보디 프로필을 찍은 것을 후회한다. 사람들의 몸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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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 와 <욕구들>

이미지 출처 : 바다출판사 블로그(클릭 시 이동), 북하우스 홈페이지(클릭 시 이동)

 

캐럴라인 냅은 <명랑한 은둔자>와 <욕구들>을 통해 자신이 겪은 식이장애의 경험을 털어놓는다. 냅의 글에서는 식이장애의 덫이 어떤 방식으로 여성의 몸에 침범하는지가 보인다. 몸매를 보는 시선과 사람들의 칭찬이 다른 일로 취약해진 마음을 건드린다. 마르면 마를수록 사람들은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 세상은 도통 마음대로 되지 않고, 몸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상이다. 빠르게 결과를 보고 싶은 마음에 굶는 빈도가 늘어난다. 식사량은 극단적으로 줄어든다. 머릿속은 음식에 대한 갈망과 사회로부터의 인정욕구로 터져나간다. 아무리 굶어도 충분하지가 않다. 우리가 ‘건강’이라는 이름으로 ‘날씬함’을 찬양하는 기만을 벌이는 동안 사람들의 몸은 점점 전쟁터가 되어가고 있다. 여성복 사이즈가 아동복 수준으로 줄어들고 보디 프로필 사진이 숱하게 인스타 그림을 장식하는 동안, 먹방 유튜버들이 10인분씩 먹고도 건강을 자랑하는 동안, 코로나 19를 맞아 피트니스 열풍이 부는 동안 누군가의 몸에서는 음식이 밀물처럼 들어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이 시기가 지나면 우리의 몸은 어디쯤 와있게 될까? 

우리의 잔해는 어디쯤 놓이게 될까? 

나는 어떤 사람들의 손가락에 생긴 굳은살, 목 깊숙이 넣느라 이에 긁혀 생긴 굳은살을 생각할 때마다 조금 울고 싶은 기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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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겨울

작가, 유튜브 겨울서점 채널 주인장, DJ 


글과 음악 사이, 과학과 인문학 사이, 유튜브와 책 사이에 서서 세계의 넓음을 기뻐하는 사람,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유튜브 채널 ‘겨울서점’을 운영하고  MBC FM 「라디오 북클럽 김겨울입니다」 DJ로 활동 중이다.

문학도 쓰고 철학도 공부하고 음악도 만들고 과학도 좋아하고 춤도 춘다.

궁금한 것이 많고 하고 싶은 게 많아 어디 한 곳에 속하지 못하고 경계를 이리저리 넘어 다닌다. 

지은 책으로는 『책의 말들』, 『독서의 기쁨』, 『활자 안에서 유영하기』, 『유튜브로 책 권하는 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