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04
INSIDE[오직서울책보고 다시보기] 청맥서점을 아십니까
오직서울책보고 다시보기
청맥서점을 아십니까
《자본 Ⅰ-3》 1987년 9월 1일 발행
인스타그램 소개일 : 2021년 6월 4일
서울책보고에만 있는 희귀하고 놀랍고 의미 있는 혹은 재미있는 책을 소개하는 오직서울책보고,
오늘도 레트로 감성 (아니, 오늘은 지성) 담뿍 묻어있는 책 준비해 찾아왔습니다.
생년문고를 준비하기 위해 1980년대 책을 뒤적이던 저는 이 책을 펼치고, 한동안 아련함에 잠기고 말았죠. 책 앞표지를 넘기자 나온 이 짧은 메모 때문이었는데요.
1987.8.18.
청맥
최 ○영
가만히, 1987년 8월의 어느 날, 최 ○영님이 청맥에서 책을 사는 풍경을 그려봅니다.
혹시 청맥서점을 아시나요?
1980년대부터 2011년까지 존재했던 흑석동 중앙대 앞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 청맥은 2011년 폐업하기 전까지 중앙대 부근에서 유일하게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파는 서점이었죠. 86년 개업한 청맥서점은 80년대에 금서의 비밀창고였다고 합니다. 운동권 학생들을 중심으로 인문, 사회과학 서적이 너무 잘 팔려 예약을 받을 정도였다고 하니 당시 분위기가 어땠는지 알 수 있겠죠?
1994년에 중앙대 출신으로 청맥을 창업한 분이 유학을 떠나게 되자, 당시 노동소설을 쓰던 방현석 작가가 서점을 인수해요. 시대가 달라졌지만 꾸준히 인문‧사회과학 서점으로서의 정체성을 이어가면서요. 그러다가 2000년에 세 번째로 다른 분이 인수한 청맥서점은 2011년 끝내 문을 닫게 됩니다. (지금은 청맥살롱이라는 이름으로 청맥의 정신을 이어받은 분들이 새롭게 운영하고 계세요!)
80년대 금서의 비밀창고에서, 87년 여름, 최 ○영님은 칼마르크스 의 『자본 1-3』을 구매합니다. 1987년 9월 1일 발행된 초판을 8월 18일에 구했으니, 역시 당시 ‘청맥’은 80년대 사회과학 서적의 최전선이었나봅니다. 이 책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보면 이 87년 초판 『자본』이 얼마나 귀한 책인지 알 수 있어요!
▶『자본Ⅰ-3』, #이론과실천 1987년 9월 1일 발행, #남문서점 , 3,000원
이 책을 번역한 강신준 교수에 의하면, 당시에는 옮긴이 이름을 ‘김영민’이라는 가명으로 했었답니다 (지금은 당당하게 강신준 이라는 이름을 새겨넣고 있지만!). 위 사진에 옮긴이 이름 보이시죠? 심지어 당시에는 ‘문화공보부’의 납본필증을 받아야 정식 판매가 가능했던 시절로, 이런 빨간 책(!)이 허가를 받을 일은 요원했다고 해요. 그래서 단 일주일 동안만 필증 없이 책을 팔기로 했대요. (《한겨레21》, 2010.8.31, 제826호, 강신준 교수 인터뷰 중) 일종의 게릴라전이죠.
당시 출판인들은 이토록 치열하게 시대와 대결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출판사 관계자 2명이 수배되고, 익명의 번역자 또한 금방 정체가 밝혀졌어요.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 끝에 금서에서 풀려난 『자본』. 우리는 그 일주일 동안만 팔렸던 『자본』 1권 중 세 번째 권을 서울책보고에서 만난 것이고요. 최 ○영님이 책을 구매하시고 책 앞표지 간지에, 언제 어디서 책을 구매했는지 적어놓으신 짧은 메모 덕에 이 책의 특별한 의미를 알게 된 셈이죠. 왠지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나요?
오늘 ‘오직서울책보고’는 단 일주일간 판매되었던 특별한 책,
지금은 사라진 특별한 서점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 참고 : 중대신문, ‘마지막 서점, 역사의 뒤안길로...’, 2011.10.31. (클릭 후 새 창 확인)
글 박혜은
사진 박혜빈
< 오직서울책보고 다시보기>는 서울책보고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미 공개되었던 <오직서울책보고> 콘텐츠 원고를 엄선하여 다시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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