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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03

BOOK&LIFE

[SIDE A] 마당, 그리고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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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그리고 가족

최진영 장편동화 『땅따먹기』

(청년사(2006), 창비(2021)

 

박숙경

아동문학평론가

 

 

 

아파트 공화국인 우리나라는 집이라 하면 대개 아파트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 안의 가족을 그려보면 서너 명의 사람들, 그리고 각자 방에 흩어져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더군다나 요즘은 코로나 시국이라 집안에 식구들이 복닥거리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힌다고들 한다. 상자 속 같은 실내, 그 안에 갇혀 일하고 공부하고 게임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인 가족의 모습이라면 답답한 것도 당연하다.그렇다면 다른 상상을 해보자.

집=아파트, 가족=사람이라는 틀을 깨보는 것이다. 

하늘로 뚫린 마당이 있는 집, 사람만 아니라 마당에 깃든 동물들이 모두 내 가족이라면 그 상상만으로도 숨이 조금은 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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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의 동화『땅따먹기』에는 내가 그리는 이상적인 가족이 있다.

실내보다 마당이 중심이고, 사람보다 온갖 동물의 소리로 채워져 있다. 개와 닭(원래 병아리였다)처럼 사람의 반려동물도 있지만, 참새와 길고양이처럼 주인 없이 마당을 들락날락하는 동물도 있다. 사람은 ‘우리’ 가족이라는 테두리가 중요하지만, 마당의 동물들은 그렇지 않다.

개 누렁이만 해도 집안사람들은 ‘우리’ 가족 안에 넣겠지만, 누렁이에게는 별도의 마당 식구가 있다. 성격이 퉁명스러워 닭과 참새, 고양이에게 가끔 으르렁대고 짖기도 하지만 아저씨, 아저씨 하며 다가온 어린 것들을 내치지 않고 품어주다 보니 그리된 것이다.

사람과 생애주기가 다른 닭, 참새, 고양이는 처음에 어린이였는데 어느새 성장하여 자신이 있을 곳을 스스로 찾아가는 어엿한 성체가 된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마당에서 꼬꼬 닭과 놀겠다는 아들에게 엄마 참새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솔개가 나타나서 너를 잡아가더라도 엄마를 원망하지 않고, 너를 원망하지 않고, 그저 받아들여야만 한단다. 그럴 수 있겠니? 짹짹짹?”

채식주의자 고양이 모질이는 자기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부모를 떠나 사람과 같이 살기로 결심한다. 어린 고양이는 사람이 주는 음식을 먹으면 부모와 헤어지는 것을 알고 있고, 부모는 자식의 선택을 알고 난 뒤 담담히 이별을 고한다.

동물의 성장은 자기 목숨을 자기가 온전히 책임지는 것, 때가 되면 부모와 헤어질 용기를 내는 것인데 과연 사람은 언제 진정 성장하고 독립하는 걸까. 나부터 괜히 창피해진다.

책을 읽기 시작할 때 마당은 사람이 소유한 부동산이지만 읽다 보면 이 마당은 다양한 동물들이 나고 자라서 독립하고 늙어가며 또 다른 가족 관계를 이루는 삶의 한마당으로 변모한다. 이 마당 공동체는 더 확대되어 병아리에서 닭이 된 꼬꼬와 참새 짹짹이가 시골로 이사 가고 그곳에서 일가를 이루고, 또 한 무리의 쥐 가문과 만나고... 사람에게만 가문이 있고 역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동물들도 다 자기 자신과 가족의 삶을 어딘가에 뿌리내리고 확장해간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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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사석에서 작가 최진영이 이 작품을 쓰게 된 사연을 들은 적이 있다. 

오래전 병을 앓아 꼼짝없이 방안에 홀로 누워있었는데 그때 창문 밖에서 개 짖는 소리, 참새 짹짹이는 소리, 고양이 야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어느새 그것이 사람의 대화처럼 내용이 속속들이 들렸다는 것이다.

사람의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외로운 시간이 더 너른 생명의 화음에 귀가 열리는 계기로 전환되었던 셈이다.

모두가 외롭고 답답하다며 비명을 지르는 이 코로나 시국에 우리가 진정 귀 기울여야 할 소리는 무엇일까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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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박숙경

아동문학 평론가

 

인하대 일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한국학과에서 아동문학을 공부했다. 

아동문학 평론과 어린이책 번역을 하고 있다. 평론집 <보다, 읽다, 사귀다>(창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