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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7

BOOK&LIFE

[SIDE B] 자폐증의 진단과 인식 - 오해와 시행착오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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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심리학
자폐증의 진단과 인식 - 오해와 시행착오를 넘어
 

임현규

심리학도, 《만만한 심리학개론》 저자

 

 

Emotion Icon  북&라이프 side B <책과 심리학 >은 국문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작가가  

학문 세계의 전문적 지식을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책과 심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정신장애인이 주인공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영우는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지닌 변호사로서, 이 드라마는 자폐인이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를지 몰라도 어엿한 직업을 갖고 능력을 발휘하며 사회에서 살아나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독특한 설정에 탄탄한 대본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이 어우러져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드라마는 자폐스펙트럼장애의 단면만을,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부분만을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지적 능력과 언어적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자폐를 고기능 자폐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자폐인보다는 인지기능과 언어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자폐인이 훨씬 많다. 또한 자신이 관심을 둔 대상에 잘 집중하는 것이 자폐인의 재능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대상은 실용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사회적 유용성이란 기준으로 흥미의 대상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므로 드라마에서처럼 법학 같은 유용한 분야에 집중할 거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모든 장애가 그렇듯이 자폐스펙트럼장애 역시 오해와 새로운 발견, 정정으로 점철돼 있다.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는 그런 역사를 보여주는 책이다. 자폐가 발견되고 오늘날처럼 규정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자폐인과 그 가족, 의사, 공동체의 활동을 통해 보여준다. 자폐증은 1943년에야 정식으로 명명되었다. 미국 미시시피주의 소년 도널드를 비롯해 여러 사례를 관찰한 소아정신과 의사 레오 카너는 ‘자기 자신만의 세계 속에 고립된 증세’를 ‘자폐증(autism)’이라고 명명하게 된다. 이듬해에는 오스트리아의 소아과의사 한스 아스퍼거가 역시 사회적 고립증상을 보이지만 상대적으로 인지발달은 양호한 사례를 보고한다. 이들은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 syndrome)’이란 이름으로 명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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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자폐증은 수수께끼였다. 그렇기에 사회와 과학은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책 표지  © 네이버책

 

 

자폐증 연구 초기에는 엄마의 잘못된 양육이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소위 ‘냉장고 엄마’ 이론이라는 것으로 냉장고처럼 먹을 것만 제공할 뿐 충분한 사회적 상호작용과 애정을 베풀지 않은 엄마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폐증은 신경생물학적 원인에서 기인하는 뇌발달 장애로서 양육방식이 원인은 아니었다. 애정을 갖고 자식을 돌보던 어머니들이 양육의 어려움에 더해 사회적 편견까지 감내해야 했던 잔혹한 시대였다.

 

 

 

 

한편 90년대에서 2000년대에 걸쳐서는 고기능 자폐인의 특성이 과도하게 부각되는 시기가 있었다. 자폐인들 중에는 사회적 의사소통에서 어려움이 있을 뿐 인지적 능력에는 문제가 없는 이들이 있다. 게다가 관심사에 대한 고도의 집중력 때문에 특정한 분야에서는 매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례의 존재는 장애라는 건 숨기고 수치스럽게 여겨야 한다는 기존의 통념을 깨는 데 크게 기여했다. 많은 자폐인들이 비장애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직업을 갖고 사회생활을 해나갔다. 일군의 고기능 자폐인들은 자신들을 ‘아스피(aspie)’라고 칭하며 자폐는 장애가 아니라 특성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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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에 방영된 드라마 <굿닥터>(2013), 고기능 자폐증을 가진 의사의 이야기이다.  © 연합뉴스


하지만 다른 한편에는 기초적인 언어 사용도 제한적인 자폐인들이 있었다. 이들과 이들의 가족에게 자폐는 자부심의 증거로만 쓰이기엔 너무 큰 삶의 제약이었다. 치료가 필요했고,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정부의 지원과 공동체의 도움이 필요했다. 사회적 상호작용의 결여와 한정된 관심사라는 공통점으로 묶일 뿐 자폐증의 실제 사례들 간에는 이처럼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

 


정신장애를 진단하는 기준으로 널리 쓰이는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이라는 것이 있다. 과거 이 편람에는 자폐증의 진단명이 아스퍼거 증후군, 아동기 붕괴성 장애, 자폐증 등으로 구분돼 있었다. 하지만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스퍼거 증후군과 다른 자폐증은 질적으로 명확히 다른 구분일까?’ ‘그동안의 분류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전문가들은 자폐증이라는 것이 대단히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증후군으로서 그 정도가 연속적으로 퍼져 있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그 결과 2013년 'DSM-5'에 이르러서는 자폐스펙트럼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라는 진단명으로 통합되기에 이르렀다. 이 진단명이 정식으로 쓰인지는 아직 10년이 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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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폐스펙트럼장애, 이 진단명이 정식으로 쓰인 것은 채 10년이 되지 않았다.  책 표지  © 네이버책


장애는 비단 의학적으로만 규정되지 않는다. 장애는 사회적으로도 규정되며 그것이야말로 장애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한 세기 전만 해도 장애인은 사회에서 쓸모없는 이들로 여겨졌다. 하지만 장애인 차별을 조금씩 철폐해나가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대우하는 개선이 이뤄졌다. 장애인이 전적으로 무능한 존재가 아니라 각자 다른 개성을 지니고 다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들이라는 인식이 늘어났다. 아마 의학의 발전보다도 이러한 공동체의 변화가 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 더 기여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장애인이 살아가는 데 매우 힘든 곳이다. 선진국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지원은 열악하며, 공동체의 인식도 매우 후진적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장애의 극히 일면만을 보여주고 있다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이 사회의 후진적 인식을 바꾸고 장애인권이 개선되는 데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 자폐증의 의학적 진단이 오해와 발견을 거치며 개선돼왔듯이 오늘의 시행착오 역시 더 나은 내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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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규

심리학도, 《만만한 심리학개론》 저자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에서 심리학과 국어국문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 인지과학협동과정에서 인지심리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문 세계의 지식을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데 힘쓰고 있다.

 

섬네일 : 자폐증과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주인공이 의사가 된 내용의 드라마 <굿닥터>(KBS) © KBS홈페이지 https://program.kbs.co.kr/2tv/drama/gooddoctor/pc/list.html?smenu=a51fb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