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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_META_TITLE_ 휴관일입니다.


Vol. 17

BOOK&LIFE

[SIDE A] 드라마는 언제나 책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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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언제나 책을 품고 있다

 

오수경

《드라마의 말들》 저자

 

 

 

“저 책 잘 안 읽는데요?” 처음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담당자에게 자백하듯 말했다. ‘드라마 덕후’로서 책 읽는 시간이나 자는 시간을 줄여서 드라마를 본다고 말해온 터라 양심상 책에 관한 글을 쓸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드라마’에 관한 글이라면 할 말이 있지 않을까?


정말 드라마와 책은 상극일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어느 정도 사실이다. 내가 사용할 시간은 정해져 있기에 책을 읽어야 한다는 당위와 드라마를 보고 싶다는 바람이 마음에서 늘 경쟁을 하고, 대체로 드라마를 보고 싶은 바람이 이긴다. 그렇다면 드라마와 책은 외나무다리에서라도 만날 수 없는 원수인 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얼마 전 SNS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진짜 좋은 책 다 읽은 기분이다.” 책에 관한 평가일 것 같지만 최근 종영한 어느 드라마에 관한 평가였다. 누군가에게는 드라마 한 편이 흥미로운 책과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드라마를 ‘활동하는 책’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도 그렇다.

 

 

우리가 사는 공간 어딘가에는 언제나 책이 있는 것처럼 드라마에도 늘 책이 존재한다. 물론 소품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지만, 때로는 드라마의 주제를 드러내는 효과적 매개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2017년 드라마 <청춘시대 2>(JTBC)에는 전직 기자와 재심 전문 변호사의 이야기를 담은《지연된 정의》(후마니타스)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지연된 정의’라는 책 제목은 드라마 속 중요한 사건의 의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지연된 정의》는 2020년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SBS)의 원작이기도 하다. 2018년 드라마 <최고의 이혼>(KBS)에는 강휘루(배두나)의 동생 강마루(김혜준)가 전 애인에게 스토킹을 당해 가게 된 경찰서에서 ‘2차 가해’를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드라마는 상대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방식의 애정 표현이 성폭행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매개로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일다)라는 제목의 책을 등장시킨다. 이처럼 드라마는 언제나 책을 품고 있다. 그래서 드라마를 볼 때면 일부러 등장인물들 뒤에 배치된 책상이나 책장을 흘깃 훔쳐보곤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몰랐던 책을 알게 되거나 이미 알던 책을 ‘재발견’하는 기쁨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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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청춘시대 2>(JTBC) 2화에서 유은재(박은빈 배우)가《지연된 정의》를 들고 있다. © 티빙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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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된 정의》, 박상규 | 박준영, 후마니타스, 동화마을 5,000원

 

 

최근 방영되어 뜨거운 관심을 받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ENA)는 여러 면에서 흥미롭고 유익하지만,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이 고구마 줄기처럼 와르르 발견된다는 점에서 주목해볼 만한 드라마기도 하다. 우선 우영우(박은빈)가 좋아하는 ‘고래’를 보면 다양한 고래 그림을 만날 수 있는 안드레아 안티노리의 그림책《고래 책》(단추)이 떠오른다. 드라마를 통해 우영우의 특징인 ‘자페 스펙트럼 장애’를 더 이해하고 싶다면 우영우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자폐인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의 책《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양철북)와《어느 자폐인 이야기》(김영사)를 읽어도 좋고, ‘자폐인’을 조금 더 깊게 이해하길 원한다면 ‘자폐 스펙트럼 장애’뿐 아니라 난독증이나 ADHD 등 여러 신경 다양성을 탐구한 책《뉴로트라이브》(알마)와《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꿈꿀자유)를 참고하면 좋다. 만약 이번 기회에 관심의 범위를 넓혀 ‘장애’에 관해 조금 더 이해하며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에 관해 고민하고 싶다면《장애학의 도전》(오월의봄),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푸른숲),《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유유),《반짝이는 박수 소리》(문학동네)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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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템플 그랜딘, 양철북, 책있는풍경 3,000원


사실 ‘장애’라는 말에는 우리 사회가 그간 드러낸 차별의 역사, 소위 ‘정상’에 관한 강박적 시선이 상흔처럼 새겨져 있다. 그런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성찰하고 싶다면《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사계절)과 《정상은 없다》(메멘토),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후마니타스)을 통해 새로운 관점으로 우리 사회를 보면 어떨까? 그동안 미디어가 ‘장애’와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재현했는지의 문제도 이 드라마를 통해 새삼 부각되었다. 그렇다면 《납작하고 투명한 사람들》(호밀밭)과 《장애와 텔레비전 문화》(컬처룩)를 지도 삼아 관심의 폭을 확장해보는 것도 좋다. 여기에 덧붙여 《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한겨레출판)와 《법정의 고수》(솔)와《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이긴다》(서삼독)를 보면 드라마에 등장한 사건인 ‘노부부 다리미 사건’ ‘삼 형제 100억 소송 사건’ ‘소덕동 팽나무 이야기’의 실화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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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의 고수》, 신주영, 페이퍼로드, 숨어있는책 4,000원


 

드라마 한 편이 품고 있는 책의 영토가 이렇게 넓고, 드라마는 그 책들을 어딘가에 숨겨놓고 우리와 만나길 기다리고 있다. 소풍날 설레는 마음으로 선생님이 숨겨둔 보물을 찾기 위해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굴리며 두리번거리는 마음으로 드라마를 보면 어떨까? 독서 시간을 잡아먹는 원수로서의 드라마가 아니라 소중하게 책을 품고 있는 드라마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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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경

《드라마의 말들》 저자

 

낮에는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드라마 덕후이자 자유기고가라는 ‘부캐’로 활동하며

경향신문을 비롯하여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불편할 준비》,을들의 당나귀 귀공저자로 참여했다.

 

섬네일 :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포스터 © 데일리한국 http://daily.hankooki.com/news/articleView.html?idxno=8456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