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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7

SPECIAL

[오은의 오늘의 시] 헌책_유예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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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

유예된 삶

 

 

                            오은

 

 

책을 산 지 7년이 되었다

책이 산 지도 7년이 되었다


살 때부터 비로소 삶을 시작하는 책

그 삶을 여태 들여다보지 않았다


오래된 책을 열 때면

삐거덕 소리가 난다

녹슨 문을 힘겹게 열 때처럼


빛바랜 페이지를 넘긴다 

웅크려 있던 활자들이 일제히 기지개를 켠다


긴 잠에서 깬 얼굴로 말한다

나 여기 있었다고

7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고


갇혀 있어서

닫혀 있어서

자랄 틈이 없었다고


책 속 이야기는 변하지 않았는데 

자꾸만 7년 전을 떠올리게 된다


그때 이 책을 읽었다면 나는 변했을까

인생의 문장을 가지게 되었을까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길을 선택했을까


유예된 삶은 말이 없다


펼쳐지기 전까지

책은 통째로 비밀이다

 

 

 

오은 섬네일.jpg

 

오은

시인

 

이따금 쓰지만, 항상 쓴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살지만, 이따금 살아 있다고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