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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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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시간] 시민 사연 <나에게 헌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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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시민 사연

 

 서울책보고 = 스타게이트

 

이오삼(253)

시민 작가

 

  

나와 서울책보고는 올해 2월에 처음 만났다. 2019년 3월에 개관했다 하니 우리는 꽤 오랫동안 모르는 사이였다. 

1월, 아산병원에 볼일이 있어 잠실나루역 근처에서 아산병원 셔틀버스를 이용하려 했다.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가 서울책보고를 처음 보게 되었다. 처음 본 서울책보고의 모습은 철제 벽면으로 만들어진 공장이나 창고 같았고 통유리로 된 창으로 보이는 내부 모습을 통해 도서관이라고 짐작했다. 궁금한 마음에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약속 시간이 내 등을 떠밀었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들러야지 하고 마음먹었지만 다른 일정들이 계속 이어져서 결국 그날은 서울책보고에 들르지 못했다. 그 후 어느 주말, 아내와 아이들만 갑자기 외출했고, 다른 계획이 없던 나는 서울책보고에 가러 집을 나섰다. 처음 서울책보고를 본 지 한 달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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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철로 된 건물을 크게 빙 돌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우와...’

실제로 탄성이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처음 만난 서울책보고는 기대 이상으로 멋졌다. 시즌이 조금 지났지만 아직은 어색하지는 않은 대형 트리가 입구에 서있었고, 그 뒤로는 철로 된 둥근 서가가 책으로 가득 찬 채로 겹겹이 서 있었는데 육중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벽난로가 있는 조형물까지 계속 걸어갔다가 다시 트리까지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사진을 계속 찍었다. 아주 오래전 학창 시절에  비디오로 보았던 '스타게이트'라는 영화 속 시간 여행이 떠올랐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둥근 원형의 조형물을 통과해 블랙홀 같은 터널을 지나는 장면이었다. 그때,  철로 된 서가에 시야가 묶여 서가를 가득 채운 책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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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챔프>라니...’ 

너무나도 우연히 어릴 적 친한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다. 손이 닿지 않은 곳에 꽂혀 있었지만 주변에 있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한 권 꺼내들었다. 앞표지부터가 아닌 뒤표지부터 폈고 그곳에는 <슬램덩크>가 있었다. 단행본이 아닌 챔프 속 연재본의 모습으로... 30년 전 동네 만화방 난로 위 노란 주전자로부터 퍼지던 생강차 냄새가 코 끝에 스치는 듯했다. 눈은 만화를 따라가고 가슴은 추억을 따라가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또 다른 추억이 나를 맞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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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들이다. 초등학교 시절 내 방, 교실의 책장에 꽂혀있던...’

‘한국출판공사’라는 곳에서 출판한 소년소녀 세계문학 시리즈였다. 나의 초등학교 입학을 기념해 어머니가, 아니 엄마가 큰맘 먹고 장만한 어린이 전집이었다. 위인전, 세계명작, 그리고 셜록 호움즈 시리즈 등 약 100권이었던 것 같고 그 중에서 얇은 두께의 셜록 호움즈 시리즈는 내가 어린 시절 제일 좋아하는 책이었다. 방문 외판원 아저씨와 긴긴 상담 끝에 수개월 할부를 약속하는 지로 용지를 받아든 엄마는 “너, 저 책들 다 읽을 거지? 믿고 사주는 거야.”라는 당부를 여러 번 하고 구입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가 읽기에는 부담스러운 글밥이었고 그래서 바로 읽지는 않았다. 하지만 약 3~4년에 걸쳐서 그 책들을 거의 다 읽었다.  예전에 오래된 앨범을 정리하던 중 그 전집이 찍힌 사진을 보고 어느 출판사가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해적판이 많던 시기에 나온 전집류라서 그런지 관련 자료를 쉽게 찾을 수가 없었는데 서울책보고에서 갑자기 마주친 것이다. 그리고 그 시리즈 옆에는 또 다른 소년소녀 세계문학 시리즈도 있었다. 아동문학사라는 곳에서 나온 것이었다. 80년대에는 교실의 학급문고나 주산학원, 피아노 학원 서가에서 쉽게 볼 수 있던 책이었다. 마치 책장을 들일 때 같이 딸려 오는 추가 옵션처럼...

 

어린 시절, 그 책들과 나는 대화를 했고, 여행을 다니고, 모험을 즐겼으며, 꿈을 꾸었다. 나에게 그 책들은 친구였고, 선생님이었다. 수십 년 만의 갑작스러운 재회에서 받은 놀람과 감동으로부터 빠져나와 주변을 둘러보니 육중한 철제서가가 겹겹이 서있는 그 곳은 서울책보고였다. 아까 사진을 찍다 떠오른 <스타게이트>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고, 그 순간부터 나에게 서울책보고는 시간 여행이 가능한 <스타게이트>이었다. 인터넷 뉴스에서는 책벌레 모양이라고 하던데 아무리 봐도 나에게는 시간 여행 터널이었다.

 

책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첫째를 불러 앉히고 사 온 책들을 늘어놓았다. 아빠가 네 초등학교 입학 선물을 사 왔다고, 아빠가 너처럼 1학년 일 때 할머니가 사준 책이라고 말하며 난 매우 신이 나고 들떠있었다. "너, 이 책들 다 읽을 거지? 믿고 사 온 거야."라며 예전 우리 엄마처럼 괜한 으름장도 섞었다.  아직 글밥이 많은 책을 읽기 어려워하는 첫째는 시큰둥했지만 선물이라는 이유로 나름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는 왜 이리 오래된 책을 사 왔냐고 핀잔을 주었고, 아이들 방의 책장에는 끝내 못 넣게 했다. 정리해 놓을 테니 꼭 꺼내서 보라는 당부를 하며 나는 그 책들을 내 책장에 차곡차곡 넣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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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한 달 후, 아이의 책상 위에 놓인 「플란더즈의 개」를 보았다. 책상 위 책 사진을 찍고 프린터로 출력을 해서 앨범 속 내 방 사진 옆에 나란히 넣어 두었다. 이번 주말에는 아이들을 서울책보고에 데리고 가야겠다. 어디 가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말해야지.

"아빠랑 시간 여행 가는 거야. 스타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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