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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6

BOOK&LIFE

[SIDE B] 헌책방의 사물이 불러일으키는 프루스트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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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심리학
헌책방의 사물이 불러일으키는 프루스트 효과
 

임현규

심리학도, 《만만한 심리학개론》 저자

 

 

Emotion Icon 북&라이프 side B <책과 심리학 >은 국문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작가가  

학문 세계의 전문적 지식을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책과 심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헌책방에 들어서면 코가 예민해진다. 헌책방이나 서점이나 책이 있고 서가가 있다는 것은 동일하다. 하지만 헌책방의 사물은 다른 냄새를 풍긴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 뒷골목의 헌책방에 들어서면 더욱 뚜렷이 느낄 수 있다. 빽빽한 서가가 물 냄새, 흙냄새를 내며 반긴다. 헌책을 꺼내 펼치면 책마다 서로 다른 세월의 냄새를 풍긴다. 언제나 에어컨으로 조정된 쾌적한 공기 냄새만을 풍기는, 새 책들이 들어찬 서점과는 사뭇 다르다.


헌책은 세월을 머금을 뿐만 아니라 세월을 소환하는 듯하다. 헌책의 냄새를 맡으면 기억이 떠오른다. 친구들과 헌책방에 와서 이것저것 살펴보던 기억, 서로 책을 돌려 읽던 기억, 그리고 친구들과의 추억까지. 프루스트 효과라는 것이 있다. 냄새를 맡음으로써 과거의 기억이 그때의 감정까지 생생히 떠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의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과자 마들렌의 냄새를 맡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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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들렌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은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렸다. 책 표지  © 네이버책


시각 자극도 청각 자극도 기억을 소환할 수 있다. 하지만 후각 자극의 불러일으키는 회상은 독특하다. 냄새는 추억을 재경험하게 만든다. 마치 그 장소에 다시 간 듯한 느낌을 주고, 그때의 일을 머릿속에서 다시 경험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데, 이는 일화기억 회상의 특징이다. 심리학자들은 장기 기억의 명시적 기억(의식적으로 회상할 수 있는 기억)을 의미기억과 일화기억으로 구분한다. 의미기억은 사실관계에 대한 기억(예: 호주의 수도는 캔버라이다.)이고, 일화기억은 과거의 경험(예: 제주도로 여행을 가서 즐겁게 논 경험)에 대한 기억이다. 일화기억의 회상이 특히 냄새로 촉발된 경우, 그때의 상황을 재경험하는 듯한 생생함이 더욱 강렬해지는 듯하다.


지각심리학자들은 사람의 감각 정보 처리를 연구한다. 시각이 가장 많이 연구됐으며, 청각이 그다음이다. 후각은 그 분류의 모호함과 연구의 난해함 때문에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한 경향이 있다. 앤 소피 바위치(A. S. Barwich)는 외면받아온 후각이 우리 정신세계에서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지 설파하는 인지과학자이자 철학자이다. 그의 책 《냄새(Smellosophy)는 후각 연구의 역사부터 후각 기관과 그에 상응하는 뇌 조직의 작동 방식, 후각의 심리학까지 다루며 냄새의 과학을 망라하고 있다. 당연히 프루스트 효과를 언급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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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이 연기가 된다 해도 우리 콧구멍은 그것을 구분할 것이다” _헤라클레이토스, 책 표지  © 교보문고


헌책방의 사물들에는 냄새가 있다. 깔끔하고 건조한 기성품의 냄새가 아닌, 누군가의 세월이 스며든 냄새이다. 그리고 그 냄새는 우리 자신의 과거도 소환한다. 헌책방의 사물이 추억을 부르고, 그 추억의 회상이 다시 새로운 기억으로 쌓여 간다. 그렇기 때문에 헌책방을 방문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 된다. 단지 책을 구입하기 위한 방문이 아닌 누군가의 기억을 읽어나가고 나의 기억을 회상하기 위한 여행이 된다. 장마로 더욱 후각이 예민해지는 시기, 헌책방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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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규

심리학도, 《만만한 심리학개론》 저자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에서 심리학과 국어국문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 인지과학협동과정에서 인지심리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문 세계의 지식을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데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