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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5

SPECIAL

[오은의 오늘의 시] 헌책_수상한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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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

- 수상한 냄새

 

오은 

 



헌책이라는 말에서는 수상한 냄새가 난다 


성한 것은 사랑받고

사랑이 지나쳐 탈이 난다

나고야 만다


헌책의 입은 굳게 닫혀 있다


입 안이 헐고

늙고 병들어

시야와 기억이 흐려질 때

반대로 선명해지는 것도 있다 


실패한 사랑

하지 않은 일

읽지 못한 책


용기가 넘쳐서 

용기가 부족해서

용기(容器)가 작다고 느껴서

제풀에 낡아버린 것들


낡았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방치되었다는 것이다 

시간은 시선을 거슬러 흐른다


그사이 사랑의 방향이 바뀌어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냄새는 한곳에 고이기 시작한다

비밀한 사연처럼


사랑이 돌아왔을 때 

책은 잊고 있었던 페이지를 열어준다 


훅 끼치는 수상한 냄새


까맣게 타버린 활자들

해독하기 불가능한 마음들

 

 

 

 

 

오은 섬네일.jpg

 

오은

시인

 

이따금 쓰지만, 항상 쓴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살지만, 이따금 살아 있다고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