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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5

BOOK&LIFE

[SIDE A] 미지의 마음을 존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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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마음을 존중하다 

 

김하율

소설가

 

 

며칠 전 남편과 길을 걷는데 목줄이 꽤 긴 개 한 마리가 다가와 남편의 신발 냄새를 맡았다. 그 줄을 잡고 있던 개 주인은 자신의 개를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 

“이리 와, 니네 아빠 아니야.”

몇 걸음 더 걷다가 문득 기분이 이상해졌다. 남편에게 물었다. 

“이거 모욕죄 아니야?”

개를 자식으로 낳았으면 마찬가지로 개라는 의미인데 ‘개’가 접두사가 되는 단어의 사회 통념상 기분이 좋을 리 없다. 하지만 저 개 주인은 처음 보는 우리를 모욕할 의도가 없어 보였다. 

내 딸아이는 쌀국수를 좋아하는데 단골 가게의 점장은 아이를 예뻐한다. 그는 늘 사탕이나 음료수 등을 준비해 두었다가 아이에게 내민다. 딸은 그를 ‘멋진 삼촌’이라고 부른다. 그 개 주인이 말한 ‘니네 아빠’도 ‘멋진 삼촌’의 범주였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개를 키우지 않으니 친근감의 표현과 모욕감 언저리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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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차에는 까칠한 아이가 타고 있고,(출처 SBS 뉴스) 어떤 카페에는 어린이가 들어갈 수 없다.(출처 시빅뉴스)

 

내 친구 J는 결혼해서 아이 없이 개 한 마리를 키운다. J는 평상시 동물권에 관심이 많아 유기견을 임시 보호하는 일도 하곤 한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하다는 연남동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았다. 문 앞에는 단정한 필체로 ‘노키즈 존’이 붙어 있었다. 시그니처 메뉴를 먹던 중 J가 말했다. 

“나는 요즘 운전을 하다가 앞차 뒷유리에 붙은 ‘까칠한 우리 아이가 타고 있어요.’라는 문구가 거슬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내 까칠한 아이가 소중하니까 알아서 비켜 가라는 뜻이야? 라고 J는 불만을 늘어놓았다. 나는 포크를 내려놓고 설명했다. 원래는 유리가 아닌 뒷 범퍼에 붙이는 스티커인데 사고가 났을 시 이 차에는 아이가 동승하고 있으니 어른이 아닌 아이를 먼저 구해달라는 사인이라고. 그 사인의 문구에 점점 재치가 더해져 그 지경까지 간 거라고. 사정을 이해한 J는 아, 그런 거군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J에게 나도 말했다. 

“나는 요즘 유모차에 개 태우고 다니는 거, 웃기다고 생각해.”

솔직히 말하면 꼴 보기 싫을 정도였다. 언제부터 개를 저렇게 모시고 살게 되었을까. 그러자 이번엔 J가 포크를 내려놓고 설명했다. 그 개들은 늙어서 걷기가 힘든 개들이라고. 개들은 후각을 위해 산책이 꼭 필요한데 오래 걸을 수가 없으니 그렇게 개모차에 태우고 다니는 거라고 말이다. 젊은 개들은 개모차에 있으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하긴, 개들은 모름지기 뛰어야 하는데 그렇게 얌전히 있을 리 없지. 사정을 알고 나니 내 고개도 절로 끄덕여졌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에 대해 무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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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귀여운 둘이 서로 잘 지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오늘날의 가족 형태는 혈연 중심에서 연대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감정의 연대. 그게 피를 나눈 혈족이든 제도로 엮인 관계든 반려동물이든 같은 목적, 같은 취향으로 만난 사이든 말이다. 

요즘은 모성을 본능이 아닌 모성 사회화, 즉 학습을 통해 획득되는 감정이라고 말한다. 출산, 육아를 해보니 알겠다. 아이를 낳자마자 모성과 부성의 게이지가 급속도로 치솟지 않는다는 걸. 살을 부비며 키우는 과정이 시간에 발효되었을 때, 부모의 마음이 생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라고 다를까. 애착은 함께한 시간과 추억에 비례한다. 결국 사랑하는 대상을 돌보는 마음은 모두 같다. 다만 우리가 모르는 대상에 대한 무지와 오해가 있을 뿐. 그 미지의 마음을 존중의 마음으로 바꿔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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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율

소설가

 

서울에서 태어나 단국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13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데뷔,

2021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로 선정된 소설집 《어쩌다 가족》, 

2022년 문학나눔 선정작인 장편소설《나를 구독해줘》를 출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