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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5

INSIDE

[오늘의 헌책] 정상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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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1968년 12월5일자 1면의 ‘국민교육헌장 선포’ 기사 © 경향신문  

 

오늘의 헌책 : 정상 가족?

저 서울책보고 서가 한구석에 오랫동안 숨어있었으나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헌책의 쓸모와 오늘의 트렌드를 연결하는 새로운 코너

 

 *

상 족? 

《국민 교육 헌장(그림책)》-올칼라판, 문교부, 1969년

 

 

서울책보고 웹진은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가족을 주제로 삼지 않았습니다. 2020년대 들어서면서 가족 개념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달라지고 있는 상황이므로, ‘가정의 달의 의미 또한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죠. 그래서 주제를 정상 가족?’이라고 잡아보았답니다. 2020년대의 우리는 가정의 달이라는 5, ‘가족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정의 내리면 좋을 것 같아서요.

 

그렇게 정상 가족?’이라는 질문을 품고, ‘오늘의 헌책자료를 찾다 보니, 우리가 흔히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가족 개념 혹은 이미지를 지닌 이전 시대 책들이 얼마나 많던지요.

 

그중에서도 그림책으로 만든 국민 교육 헌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1969년 문교부에서 발행한 이 그림책은 앞표지 그림부터 중간중간 들어간 삽화까지 알차게 이른바 정상 가족이미지를 구현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이미지가 실린 페이지들을 골라보았습니다. 그럼, 1960년대 국가가 그려낸 정상 가족의 그림 한 번 볼까요?

 

먼저, 앞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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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표지부터 1960년대 이상이 담긴 정상 가족이미지가 스테레오 타입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일단 정상 가족의 이상은 ‘4인 가족이 일반적이죠.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은 아버지, 치마를 입고 단발머리를 한 어머니, 딸 하나, 아들 하나. 이 얼마나 이상적이며 균형 잡힌 4인 핵가족 구성인지...! 역시나 딸은 원피스 치마를 입고 있고, 아들은 바지를 입고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뭔가 설명하는 역할은 역시나 아버지이십니다. 이 앞표지만으로도 정상 가족의 이상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앞표지를 넘겨보니, 학교다닐 때 외워본 적은 없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적은 많은, 그 유명한

 

#국민교육헌장 이 첫 장에 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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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 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후략)

 

하아. 1960-70년대의 어린이들은 참으로 어깨가 무거웠을 것 같습니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국민 교육 헌장그림책이 구현하는 가족 이미지를 감상해볼까요?

 

#대한민국의 아들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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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남자 어린이와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여자 어린이가 만세를 부르며 웃고 있네요. 1960-70년대 아들딸의 모습입니다.

 

#가정_의례_준칙을_지킵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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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결혼식 풍경이 인상적인데요. 남성은 서양식으로 양복을 입었고, 여성은 한복을 입고 있네요. 아마도 양복을 입은 신랑과 한복을 입은 여성이 결혼하는 풍경은 1960년대의 보편적 풍경이었다가 1970년대부터 신부도 서양식 드레스를 입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구글링 결과...) 이 교과서 삽화는 1960년대에 그려졌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된 것 같고요! 신랑과 신부의 혼례복뿐 아니라, 결혼식장 벽면에 붙어 있는 문구에 더 눈이 갑니다.

 

가정 의례 준칙을 지킵시다

 

결혼식장에 저렇게 교훈적인 메시지가 적혀있다니!Emotion Icon 정상 가족의 이미지는 저 벽면 문구에서도 실현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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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엄격한(!) 문구를 벽에 붙여놓고 결혼을 한 부부는, 역시나 이번에도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고 (1960년대 가족 유형의 진리...), 집에 모여 손뼉을 치고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일상을 보냅니다. 과일 쟁반이 아버지 앞에 있는 게 유독 마음에 걸리네요. 이 삽화에 적힌 문구가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라는 점이 뭔가 어색하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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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외출을 나온 이 4인 가족은 역시나 딸 하나, 아들 하나 (1960년대 가족 유형의 진리로, 가족에 따라 딸과 아들의 태어난 순서만 달라집니다.)로 구성되어 있고, 아버지는 양복을 갖춰 입으셨고, 어머니는 역시나 치마를 입은 단발머리 모습입니다. 남자 어린이는 파란색 줄무늬 티셔츠 못 버리고요. 여자 어린이 역시 치마... 절대 못 버리네요. 이들은 모범적으로 수재민을 돕는 행사에 참여해 아마도 자유 세계의 이상을 실현하고 있는 듯합니다.

 

1960년대 교과서에서 살짝 살펴본 정상 가족의 이미지를 보니 어떠세요? 어느 한 시절에는 너무도 당연하고 익숙했을 그림이 지금은 좀 어색하시다고요? 너무 고정화되어 있는 것 같다고요? 아니면 무척 친숙하시다고요? 같은 책을 보면서도, 여러 가지 다양한 느낌을 가지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만약 2020년대의 일러스트레이터가 같은 내용으로 삽화를 그린다면 어떤 구성으로 가족을 표현할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그 가족 삽화에는 자녀 없이 부부만 있는 2인 가족이 그려질지도 모르겠어요. 혹은 4인 구성 대신 1인 가족 옆에 반려묘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수도 있겠고요. 이상, 오늘의 헌책이었습니다.

 

 

 

 

 

섬네일 : 국민교육헌장(1968) ©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181204156600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