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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4

SPECIAL

[책과 심리학] 애도와 회복, <상가에서 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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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와 회복, <상가에서 웃다>

 

임현규

심리학도, 《만만한 심리학개론》 저자

 

 

Emotion Icon  <책과 심리학 >은  국문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작가가  

학문 세계의 전문적 지식을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책과 심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선명한 유령 2.jpg

▶《선명한 유령》, 조영석, 실천문학사, 출처 : 네이버책(클릭 후 이동

 


서가에서 오래전 읽었던 시집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인상 깊었던 페이지들에는 인덱스 스티커가 붙어 있다. 어느 한 페이지에서 다음 시를 읽고 미소를 지었다.


상가(喪家)에서 웃다


  앞머리가 자꾸 눈을 찔러 미용실에서 아줌마 파마를 하고 돌아오던 길에 부음 소식을 들었다. 

논산에서부터 교도소까지 쭉 함께 팔려 다닌 군대 동기의 아버지가 새벽에 돌아가셨다.

 전역 후, 오랫동안 얼굴 한번 제대로 본 적 없는 동기의 얼굴을 떠올리자

 슬픔보다 반가운 마음이 문상 길을 재촉했다.


  영안실에는 먼저 온 동기들이 까칠한 얼굴로 앉아 있었지만,

 하나같이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곡(哭)소리를 들으며 망자에게 절하고 상주가 된 동기와 맞절한 뒤,

 얼마나 상심이 하는데,

동기가 내 머리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나도 따라 피식 웃고 그걸 보고 동기의 매형도 웃고, 

상가에는 곡소리가 끊기고 향 냄새를 따라 잠시 키득거림들이 피어나는 것이었다.

 아주 잠시였지만.


- 조영석 시집 《선명한 유령》중

 


때때로 죽음은 갑작스레 찾아온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심리학에서는 상실(loss)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상실에 대한 심리적 반응을 애도(grief)라고 한다. 오래전부터 상담심리학자들은 다양한 상실을 다루며 애도와 관련한 사람들의 심리적 고통을 줄이는 데 노력해 왔다.


사랑하는 이를 잃으면 몸에 상처를 입은 것처럼 심리적 외상을 입기도 한다. 상실 직후 사람들은 큰 슬픔과 고통을 느끼고, 삶의 의욕이 떨어지며 때로는 죄책감에 빠지기도 한다. 이는 정상적인 애도 반응이다. 하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라는 말처럼 남은 이들은 고인이 사라진 세상에 적응해야 한다. 고인이 없는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나가며 살아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생존자들의 과업이라면 과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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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낭의 장례식 A Burial at Ornans>, 귀스타브 쿠르베, 1849-50, 파리 오르셰 미술관 소장, 출처 : 위키피디아(클릭 후 이동)

 

 

장례를 치른다는 것은 상실의 충격과 고통이 큰 초기에 적극적, 공개적으로 애도의 감정을 표현하고 쏟아냄으로써 이후의 적응을 돕는 의례로 볼 수도 있다. 애도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피할 수는 없다. 긴급한 일 때문에 때로 애도가 지연(delayed grief)될 수 있는데, 여러 달이 지난 후 애도 반응이 나타나는 사례도 있다.


또는 애도가 억제(inhibited grief)되는 경우도 있다. 주변의 눈총 같은 사회적, 문화적 억압 때문에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감정 표현이 억압되는 경우이다. 정서 표현을 통해 마음껏 감정 표현을 하지 못하는 것이 응어리가 되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반대로 정상적인 적응과 회복 반응이 억압되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슬픔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연스러운 기쁨과 즐거움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 역시 적응과 회복을 방해한다. 유족이라고 항상 슬퍼하기만 해야 한다면 영원히 고통받아야 한다는 말과 다름없다. 그러니 유족도 웃어도 된다.

 

 


조영석의 시 <상가에서 웃다>는 장례 중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일상적 웃음을 보여준다. ‘까칠한 얼굴’과 ‘곡소리’가 채우고 있는 슬픈 상가에 우스꽝스러운 머리가 갑작스레 출현해 상주도 설핏 웃음을 터뜨린다. 상황은 어색하여도 감정은 자연스러운, 그 찰나의 순간을 시인이 잡아냈다.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애도와 다가올 삶의 회복에 대한 시인의 재치 있고도 따뜻한 시선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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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규

심리학도, 《만만한 심리학개론》 저자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에서 심리학과 국어국문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 인지과학협동과정에서 인지심리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문 세계의 지식을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데 힘쓰고 있다.

섬네일 : <유머 가득한 조지 부시 장례식>, 2018년 12월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전현직 미국 대통령이 참석해 웃고 있다.
출처 : 지구촌장례문화 - 하늘문화 http://www.memorialnews.net/news/article.html?no=11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