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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3

SPECIAL

[헌책보고 고전보고] 헌책, 과거로의 시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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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3주년 특집

헌책보고 고전보고 Ep. 3

헌책, 과거로의 시간 여행

 

키두니스트(Kidoonist)

웹툰 작가,  편식하는 독서가

 

Emotion Icon<헌책보고 고전보고>는 헌책과 고전문학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이며,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책장을 볼 때면 아련히 떠오르는 어릴 적 추억이 있다. 책을 사랑하는 집이면 으레 그렇듯 우리 가족도 항상 책장에 새 책만을 들여놓은 것은 아니었다. 거실 책장에는 늘 다양한 책이 손님으로 들어섰는데, 서점에서 갓 구입한 빳빳한 새 손님도 많았으나, 개중에는 어딘가에서 한껏 읽히다 온 ‘헌 손님’ 또한 드물지 않았다. ‘헌 손님’들의 출처는 다양했다. 때로는 인심 좋은 지인이나 친척 집에서 얻어왔다. 때로는 누군가 재활용으로 버린 책 중 탐나는 것을 주워왔다. 지금도 아파트나 주택가 인근에는 뭉텅이로 버려진 책들이 종종 있어 책 오타쿠들의 관심을 끌곤 한다. 우리 가족 역시 그 오타쿠 중 하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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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두니스트

 

그렇게 들어온 헌책은 책 자신에게나 우리에게나 조금 더 나은 삶을 선사했다. 책은 쓰레기로 분쇄되는 대신 새롭게 생명을 이어갔으며 우리는 그 책을 읽고 바쁜 삶 사이 작은 즐거움, 혹은 깨달음을 얻어갔으니 말이다. 게다가 헌책을 얻을 때면 평범한 서점에서 쇼핑할 때와는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이미 빛이 바랜 낡은 책들은 독자로 하여금 잠시 현재를 벗어나 막연한 과거로 떠나게끔 했다. 이제는 쓰이지 않는 낡은 폰트와 때때로 발견되는 누군가를 향한 메모는 이 책이 그간 걸어온 세월을 짐작케 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진짜배기 헌책’을 접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이전보다 독서량이 현저히 줄어든 탓에 책을 대량으로 버리는 일은 드물고, 그렇다고 동네 헌책방을 손수 찾아가 쇼핑하는 일은 더더욱 드물기 때문이다. 물론 중고책을 원한다면 알라딘 중고서점이라는 대체재가 있다. 그러나 이곳은 한층 양지화된 대중서점인 만큼 헌책방과는 다르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들을 주로 취급하고, 눈에 띄게 낡은 책은 매입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므로, 현대에 구태여 헌책을 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 보수동이나 청계천의 헌책방 골목을 어지럽게 해매며 협소한 가게 속을 뒤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것은 번거로운 일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는 또 다른 선택지가 있다. 올해로 3주년을 맞는 서울책보고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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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컨테이너 건물을 처음 보있을 때, '헌책방이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잠실나루역을 나서면 대뜸 거대한 컨테이너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안으로 들어서면 쾌적한 내부 시설과 더불어 수많은 아치형 책장이 여러분을 반겨줄 것이다. 이곳은 전국 최초의 공공 헌책방이다. 청계천과 서울 곳곳의 32개 헌책방에서 온 장서들이 드넓은 책장을 채운 곳이다. 서울책보고는 복합문화공간의 역할도 한다. 종종 전시나 강연이 열리며, 원하면 앉아서 책을 읽다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곳은 서점이다. 그것도 요즘은 보기 드문 헌책만을 파는 서점인 것이다. 그렇기에 평범한 서점과는 진열된 책의 종류도, 그 상태도 사뭇 다르다. 광화문 교보문고가 갓 사회에 나온 젊은이들을 모아두었다면 이곳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을 모아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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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보니북스 서가의 멀리 바다 건너온 양장 외서들에게서 그냥 물리적 바다가 아니라 시간의 바다를 건너온 여행자들의 모습이 느껴진다. 

 

책장 가장자리에는 해당 책장에 꽂힌 장서가 어느 헌책방에서 나왔는지 쓰여 있다. 설명을 읽으면 그 헌책방이 어떤 취지로, 어떤 역사 속에서 운영되었는지 알 수 있다. 다루는 장서는 지극히 다양해서 평범한 소설부터 자기계발서, 종교서적, 각종 비문학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원서도 적지 않다. 해리 포터에나 나올법한 양장본 고전문학을 펼치면 그 안에는 외국어 활자만 빼곡히 들어 있다. 때로는 속표지에, 누구에게 이 책을 선물한다는 영어 메시지가 정성어린 손글씨로 적혀 있다. 대체 어떤 사정으로 오래 전 한 외국인이 다른 외국인에게 선물한 책이 이 머나먼 한국까지 오게 된 걸까?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이러한 점이 헌책의 진정한 매력이라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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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두니스트

 

항상 현재에 파묻혀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사물은 과거를 보여준다. 그 사물이 책이라면 우리는 그것이 읽혀진 세월과 이전 주인들의 삶의 흔적을 통해 과거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개인 책장을 앳된 새 책으로 채우고 있지만, 멀리 보면 이 책들도 언젠가 나이 들어 헌책의 관록을 갖추게 되리라. 그리고 나의 흔적을 담은 채 새로운 삶을 살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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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두니스트(Kidoonist)

웹툰 작가, 편식하는 독서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전 문학, 그중에서도 장르 문학 위주로 읽는 습관이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40여 권의 책을 만화로 리뷰했으며 누적 조회 수 80만 회를 기록했다. 

수입의 상당 부분을 책 사는 데에 쓰고 있으며 언젠가 개인 서재를 갖고픈 꿈이 있다. 

현재는 좁은 공간에서 SF와 추리물, 그 외 장르를 어떻게든 분류하고 있다. 

영국 여행 중 셜록 홈즈 박물관과 해리 포터 스튜디오를 가봤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지은 책으로 《고전 리뷰툰》이 있다.

 

 

 

 

 

섬네일 : 영화 <백투더퓨처> (1985)의 타임머신 자동차 드로리안
출처 : 뉴사이언티스트 웹사이트 https://www.newscientist.com/article/dn28374-back-to-the-future-does-physics-of-martys-time-travel-add-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