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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1

BOOK&LIFE

[SIDE A] 집콕하는 당신에게 도스토옙스키를 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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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스크바에 있는 도스토옙스카야Достоевская 지하철역 내부, 출처 :위키피디아 영문(클릭 시 이동) 

 

 

집콕하는 당신에게 도스토옙스키를 권함

 

구달

에세이스트 

 


제목에서 밝혔듯이 나는 19세기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책을 권하려는 목적으로 이 글을 쓴다. 미리 털어놓겠다. 도스토옙스키 4대 장편소설의 평균 쪽수는 1,410쪽이다. 《죄와 벌》 한 작품을 읽는 데만 보통 분량의 소설 네다섯 권을 읽는 만큼의 에너지가 든다는 의미다. 주요 등장인물은 서른 명 안팎으로 《전쟁과 평화》에 599명을 등장시킨 톨스토이에 비한다면야 소박한 수준이지만 이름이 길고 복잡하다는 문제가 있다. 가령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와 아델라이다 이바노브나 미우소바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드미트리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라는 식인데, 드미트리라는 이름마저 미탸, 미텐카, 미티카, 미트리 등등으로 바뀌어 불리며 당신을 미티게… 미치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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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의 4대 장편소설. 도합 5,640쪽, 9,3kg이다(사진제공 : 구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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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맨 앞장에 실린 등장인물 목록(사진 제공 :구달)


그러니 지금 도전해야 한다. 혹시 작년에 달고나 커피를 만들어본 적 있는지?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팔이 빠져라 거품을 휘젓고, 머랭을 치고, 비즈를 꿰고, 대파를 심고, 아보카도 씨에 싹을 틔우며 ‘슬기로운 집콕 생활’을 실천해왔다. 이로써 집콕 생활력이 정점에 이른 지금이라면, 낯선 이름이 난무하는 다소 두꺼운 벽돌… 소설책을 집어 드는 일이 팬데믹 이전만큼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벽돌 책 깨기 독서 모임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시대가 당신을 도스토옙스키에게로 끌어당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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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고나 커피와 도스토옙스키 소설. 웬만하면 둘을 동시에 시도하지는 말 것(사진 제공 : 구달)


 

“도스토옙스키는 자유의 몸이 된 인간의 운명을 연구한다. 

그의 관심은 오직 자유의 길을 걷는 인간이다. 

인간의 운명은 자유 속에 있고, 자유의 운명은 인간 속에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세계관》이라는 책에서 인용한 문장이다. 솔깃하지 않은가. 우리가 바이러스에게 자유를 저당 잡힌 이 시국에 소설을 통해 자유의 몸이 된 인간의 운명을 들여다볼 수 있다니. 도스토옙스키의 펜 끝에서 탄생한 인물들은 작가가 불어넣은 강한 인격을 연료 삼아 자유를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이 도덕률을 초월할 수 있는 인간인지 시험하기 위해 전당포 노파를 도끼로 내리친다. 《악령》에서 벌어지는 범죄와 살인은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라는 명제가 낳은 결과물이다. 키릴로프라는 인물은 “살든 죽든 신경 쓰지 않게 될 때 자유가 있을 것이다”라는 논리로 인간으로서 최고 수준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자살을 감행한다…. 파멸, 파멸, 파멸. 어쩐지 자유를 반납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는 K-막장 드라마조차 명함을 못 내밀 이 지독한 파멸 대잔치를 반복할지언정 끝끝내 자유를 반납하지 않는다. 마치 인간이 자기 자신이기를 포기하고 행복에 이르는 우회로 따위는 없다는 듯이. 그는 평생을 바쳐 이런 소설들을 썼다. 자유를 택하면 고통을 겪고 자유를 포기하면 노예로 전락하는 인간의 잔인한 운명을 직시하며 어떻게든 출구를 찾아내고자 했다. 

도스토옙스키보다 200년쯤 늦게 태어난 덕분에 우리는 편안히 소파에 앉아(원한다면 달고나 커피도 곁들여서)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다. 나는 내 손에 자유를 꼭 쥐고 있을까. 혹시 고통이 괴로워서 나 자신이기를 포기하고 세상이 던져주는 만큼의 콩알만 한 자유에 만족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이런 질문은 먹고 살기 위해 쳇바퀴 돌듯 일상을 굴려야 하는 상황에서 생각해보기에는 너무 가혹하고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니 역시 지금이다. 집콕하는 당신에게 도스토옙스키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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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어느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해 3,000원에 구입한 책.

알고 보니 노벨문학상 후보에 일곱 차례나 오른 사상가가 쓴 명저였다.(사진 제공 : 구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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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에서 펴낸 다양한 판본들. 도스토옙스키 작품은 읽는 재미만큼 모으는 재미도 쏠쏠하다.(사진 제공 : 구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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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의 도스토옙스키 존. 젊은 시절 도스토옙스키는 작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이유를 이렇게 적었다. (사진 제공 구달)

 “인간은 하나의 비밀이다. 우리는 그 비밀을 풀어야 한다. 평생에 걸쳐 그것을 풀게 된다면 시간을 허비했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그 비밀에 전념한다. 인간이고 싶기 때문이다.”(《도스토옙스키》 9쪽, 미메시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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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달 

에세이스트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원서로 읽기 위해 러시아어를 배운 적이 있다. 

요즘은 나와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마음이 끌린다.

《읽는 사이》(공저), 《아무튼, 양말》, 《읽는 개 좋아》, 《한 달의 길이》 등을 썼다.

 

 

 

 

 

섬네일 사진 : 러시아의 화가 바실리 페로프가 그린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초상화(1872년)
출처 : 위키피디아 영문 https://en.wikipedia.org/wiki/Fyodor_Dostoevs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