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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1

SPECIAL

[헌책보고 고전보고] 다시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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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책보고 고전보고> Ep. 1

다시 읽는 즐거움

 

키두니스트(Kidoonist)

웹툰 작가,  편식하는 독서가

 

Emotion Icon <헌책보고 고전보고>는 헌책과 고전문학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이며,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많은 부모님이 어린 자녀가 문학에 대한 교양을 키웠으면 하는 소망으로 세계 고전문학 도서를 집에 들여놓는다. 물론 그 결과는 부모님 본인과 한때는 어린 자녀였을 수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대부분 자녀는 책보다 온라인 게임, 스포츠, 그 외 갖가지 아기자기한 장난 거리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그러나 개중에 소수의 자녀는 정말로 그 소망에 보답하여 고전의 책장을 넘기고는 하는데, 그들이 자라난 덕에 가까스로 오늘날까지 고전은 그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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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 키두니스트




어린 시절에 고전문학을 접하면 수많은 이점이 있다. 그 이점은 <심즈>라는 게임에서 잘 설명해준다. 게임 내에서 어린아이가 책을 완독하면 뜨는 메시지가 있다. '이 아이는 이제 자라나서 이 책을 다시 읽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가 그것이다. 이처럼 다 자란 성인이 책을 처음 읽는 것과 어릴 때 읽은 책을 자라서 또 한 번 읽는 것은 크나큰 차이가 있다. 두 번째 경우가 몇 배로 다채로운 감상을 즐길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또다시 읽는 독자의 가치관 차이뿐 아니라 책의 출판 형태 차이에도 있다. 게임 내의 메시지는 전자에 초점을 맞춘 것이겠으나 이 글에서는 후자에 좀 더 집중하여 보고자 한다. 어쨌든 소싯적의 독자들이 접한 고전은 2022년 현재 ‘헌책’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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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심즈4>에서 엄마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장면, 사진 출처 : 클릭 후 이동 

 

기억을 더듬어 보자. ‘헌책’이 된 고전문학들의 훈훈한, 혹은 다소 민망스러운 옛 궤적을 말이다. 번역은 또 다른 창작이라 불릴 만큼 많은 것을 반영한다. 설령 원본이 같더라도 우리의 기억 속 낡은 번역본에는 그 시대만의 특징이 있었다. 단색의 표지에는 요즘 보면 촌스러울 삽화가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었다. 책 속 활자는 지금보다 작았으며 폰트는 가독성이 떨어지는 옛날식 폰트를 사용했다. 등장인물들은 지금은 사장된 다양한 어휘를 쓰며 예스러운 대화를 나누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검둥이 톰의 오두막집이라고 번역하는 등, 지금 보면 깜짝 놀랄 만한 차별적 표현도 있었다. 완역본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시대이므로 내용이 꽤나 왜곡된 경우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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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톰 아저씨의 오두막》, 스토우, 샛별출판사(헌책방나들이 / 5,000원) ,《검둥이 톰의 오두막집》, 스토우, 계몽사(헌책방나들이 / 5,000원) 

 

어떤 부분은 알고 보면 참 헛웃음을 자아낸다. 저작권 개념이 희미하던 옛날에는 번역 또한 해적판으로 나오기 일쑤였고 번역 분야가 활발한 일본에서 이미 번역된 것을 중역하여 들여오는 일도 잦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구시대적 감성은 ‘헌책’ 특유의 정취를 느끼게 하고, ‘고전 오타쿠’들을 어릴 적 추억에 잠기게 한다. 나는 리뷰를 시작하던 초창기에 모든 욕설이 ‘바보 자식’이라는 일본식 욕으로 통일된 뤼팽》 중역본을 봤으며, 종결 어미가 ‘읍니다’로 끝나는 낡디 낡은 판본도 보았다. 어릴 때 이런 책들을 접해본 독자라면, 일찍부터 고전을 즐긴 소수의 독자라는 점에 자부심을 지녀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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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 키두니스트


나 역시 그중 한 사람으로서 조금은 더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하려 한다. 

어릴 때 나는 집에서 이상한 투명인간이라는 책을 보았다. 삽화가 많은 아동용 도서였지만 그 내용이 결코 유치하지 않았고, 표지에 온몸을 붕대로 감은 사람 그림이 다소 무서워 보이는 책이었다. 조금 더 커서야 그것이 SF 거장인 허버트 조지 웰스의 작품임을 알았다. 제대로 완역된 투명인간을 읽은 것은 더욱이 최근이다. 책의 역자 후기가 참으로 인상적이었는데, 웰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소설은 최근까지 아동용 번역만 되었었고 완역본이 나온 것은 불과 얼마 전이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부득이하게 어린이용으로만 나온 SF 고전을 일찍이 접했던 것이다. 투명인간표지를 무서워하던 시절이 생각나 웃음이 나면서도, 이처럼 번역이 발전했으니 내 아이는 일찍부터 완역본을 추억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어보기도 한다.

 

소싯적에 세계 고전문학을 들춰보았다면, 한 번쯤은 시간을 내어 도서관에, 혹은 오래된 책을 다루는 ‘헌책방’에 들러 보자. 그리고 눈에 익은 옛 책이 보이면 다시금 들춰보자. 그대들은 그 책을 다시 읽는 즐거움을 누릴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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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두니스트(Kidoonist)

웹툰 작가, 편식하는 독서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전 문학, 그중에서도 장르 문학 위주로 읽는 습관이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40여 권의 책을 만화로 리뷰했으며 누적 조회 수 80만 회를 기록했다. 

수입의 상당 부분을 책 사는 데에 쓰고 있으며 언젠가 개인 서재를 갖고픈 꿈이 있다. 

현재는 좁은 공간에서 SF와 추리물, 그 외 장르를 어떻게든 분류하고 있다. 

영국 여행 중 셜록 홈즈 박물관과 해리 포터 스튜디오를 가봤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지은 책으로 《고전 리뷰툰》이 있다.

 

 

 

 

 

섬네일 사진 출처 : 영화 <투명인간(1933)>의 잭 그리핀 박사(영문 위키백과 https://en.wikipedia.org/wiki/Griffin_%28The_Invisible_Man%29#/media/File:Dr._Jack_Griffin.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