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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1

INSIDE

[세렌디피티] 그 어느 한 시절, 여행 기념품에서 발견한 시와 그림 그리고 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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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endipity

예기치 않은 메모나 물건을 발견하다

 

 

그 어느 한 시절, 

여행 기념품에서 발견한 시와 그림 그리고 우표

《화엄사 관광》TOURING OF HWA UM SA

 

 

 

세렌디피티의 순간은 갑자기 도래했습니다. 어느 1월의 월요일, 출근해보니 책상 위에,


- 메모   

- 그림   


이라 적힌 포스트잇이 붙은 엽서 크기의 아담한 책자가 놓여 있었습니다. 운영팀 동료가 책을 입고하다가 발견한 보물 같은 헌책이었죠. 내 헌책 탐구의 경향을 꿰뚫고 있는 눈 밝은 동료는 내가 이 책을 보고 얼마나 기뻐할지 알고 있었기에 저렇게 단출한 단어 두 개만 적어놓고 책을 갖다 놓은 거죠. 그 안목은 정확했습니다. 《화엄사 관광》을 보는 순간, 이 책은 1월의 제 세렌디피티가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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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판 관광안내도 전남지리산관광기념


이란 타이틀 아래 화엄사를 중심으로 한 지리산 지도가 접혀 있는 첫 페이지부터 어떤 아련한 정서가 몰려왔는데요. 그 전도를 넘기면 #지리산노고단 부터 시작해 총 22장의 지리산 화엄사 관련 사진이 펼쳐집니다. 몇 장 같이 구경해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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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_노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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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황전_국보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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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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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자_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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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_유성여관

 


유성여관... 유성여관...화엄사 유성여관이라니... 한옥 위에 세운 간판이 위태로워 보이는데 하룻밤 묵어보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옆에 지나가시던 L팀장님이 벼룩 나올 것 같은 여관이라고 하며 지나가시네요... 감상 파괴Emotion Icon) 아무튼, 이렇게 오래된 지리산과 화엄사 풍경을 흐뭇한 마음으로 넘겨보다가 이 작은 기념품에서 갑자기 무언의 멜로디를 듣게 됩니다. Emotion 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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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각난다. 그 오솔길 

그대가 만들어준 꽃반지 끼고

다정히 손잡고 거닐던 오솔길이

이제는 가버린가슴 아픈 추억 아름다운 추억


2. 생각난다 그 바닷가

그대와 둘이서 쌓던 모래성

파도가 밀리던 그 바닷가도

이제는 가버린 가슴 아픈 추억아름다운 추억


(내레이션)

정녕 떠나버린 당신이지만

그래도 잊을 수 없어요 여기 당신이 준

꽃반지를 끼고 당신을 생각하며

오솔길을 걷습니다.


3. 그대가 만들어준 이 꽃반지 

슬픈 외로운 밤이면 품에 안고서

눈물을 흘리네그대를 그리네그대가 보고싶-어 옛일이 생각나

그대는 머나먼 밤하늘의-저 별

으으음~ 저 별

 

 

처음에는 이 헌책 주인이 쓴 시인가? 싶었는데, 아무리 봐도 노래 가사 같았습니다. 그래서 구글신에게 물어봤더니 이 시는 역시 #꽃반지끼고라는 노래 가사였습니다! 1971년, 가수 #은희 가 부른 이 노래는 #은희전속기념1집 의 타이틀곡이었답니다. 1971년에 발표한 이 노래는 1970년대 초 여름, 윤형주의 #조개껍질묶어 와 함께 청춘들의 여름 바닷가를 통기타로 수놓게 만든 곡이었다고 하니, 가수 은희 님은 #원조포크여신 이라 불러도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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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희 <전속기념 제1집 : 꽃반지 끼고> 앨범의 앞면(왼쪽)과 뒷면(오른쪽), 출처 : 매니아DB.com

 

 

Emotion Icon꽃반지끼고 - 은희

 

 

그러므로 서지정보 불명인 이 기념품의 출간연도는 아마 1970년대 초반일 것입니다. 이 책의 주인은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미래 연인을 생각하며 지리산의 어느 여름밤, 통기타를 치며 이 노래를 부르다가 문득 이 기념 책자 뒤에 붙은 빈 메모장에 한 자 한 자 가사를 적어놓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로지 기억에 의존해 적어 내려간 가사였기에, 중간중간 가사가 틀렸던 거죠!


‘아름다운 추억’을 가슴 아픈 추억으로, ‘외로운 밤’을 슬픈 밤이라 적었다든가, ‘그대를 그리네’를 눈물을 흘리네로, ‘옛일이 생각나’를 그대가 보고 싶어로 틀리게 적은 건 혹시 이 가사를 적을 때 그의 마음에 가슴 아픈 추억이 떠올라 슬퍼 눈물을 흘렸던 건 아니었을까... 그런 상상을 하게 됩니다. 자기의 상황과 감정이 가사를 적을 때 반영되어 가사를 자기식으로 변주한 건 아닐까, 하는 그런 상상.


그 감정을 가득 담아 그는 다음 장에 #피카소 혹은 #몬드리안 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을 그립니다. 뭔가 슬픈 눈을 가진 외로운 사람의 옆모습을 그린 듯한 그림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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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기념 책자 형식으로 《속리산 관광》과 《설악산 관광》시리즈도 있었지만, 1월의 세렌디피티로 《화엄사 관광》이 특별히 선택된 이유입니다. 

 

아련한 감정을 가득 품은 《화엄사 관광기념 책자.


마지막으로 이 헌책의 킬포는, 헌책 주인이 붙여두었을 대한민국 우표에 있습니다. 

 


장구우표.PNG

 

단돈 10원인 이 우표에는 장구가 새겨져 있는데요.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의 ‘우표 컬렉션’에 따르면, 이 우표는 체신부 우정국에서 1969년 6월 1일에 발행한 보통우표입니다. 공식명칭은,


보통우표(10원:장구) (클릭)

 

랍니다.


 

‘우표와 포스터’는 역사와 문화를 표현하고 있어 동시대의 사실적인 자료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라고 적힌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의 소개 문구가 인상적인데요. 이런 #동시대의_사실적인_자료 를 품고 있는 《화엄사 관광》이 더욱 특별해지는 순간입니다.


한 관광 기념 책자에서 건져 올린 1970년대 청춘의 노래와 당시 보통우표. 어떠세요? #뜻밖의_재미 라는 뜻의 세렌디피티 의미가 반짝반짝 빛나지 않나요? 오늘도 서울책보고 헌책 서가에는 보석과 같은 세렌디피티의 순간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글/사진 박혜은

 

 

 

 

 

섬네일 : 화엄사 전경,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D%99%94%EC%97%84%EC%82%AC#/media/%ED%8C%8C%EC%9D%BC:%ED%99%94%EC%97%84%EC%82%AC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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