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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0

SPECIAL

[서울책보고에게 2022년을 말하다] 책빛숲 - 다르면서 같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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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서점, 사진 출처 : 여행스케치(클릭 후 이동)

 

책빛숲 - 다르면서 같은 길

 

최종규(숲노래)

작가 

 

 

 

. ··

 

지난 2014년에 책빛숲, 아벨서점과 배다리 헌책방거리란 책을 써낸 적 있습니다. 이 책을 펴낸 작은 곳(1인 출판사)이 책살림을 접으면서 저절로 새책집에서 사라졌는데, 2014년 여름에 이 책빛숲을 들고서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을 찾아가서 건네니, 아벨책지기 할머님은 문득 책빛숲? 셋이 다 같은 말이네?” 하셨습니다. 책빛숲이라는 책을 처음 마주한 분이 처음으로 ··이 같은 말인 줄 알아차리셨는데요, 이때 뒤로 아직 이 세 가지 ··이 같은 말인 줄 알아차리는 분은 더 만나지 못했습니다.

 

: 살아가며 지은 살림을 사랑으로 엮어 이야기로 지핀 꾸러미

: 살아가며 짓는 살림을 사랑으로 엮어 이야기로 가도록 살리는 숨결

: 살아가며 살림을 사랑으로 짓도록 푸르게 엮는 이야기로 가득한 터

 

책하고 빛하고 숲은 다르지만 바탕은 같습니다. 셋이 똑같다면 굳이 다른 낱말을 쓸 일은 없습니다. 셋은 다른 낱말로 우리 곁에 있되, 밑자락을 돌아보면 ·살림·사랑을 이루는 길을 다르게 나아가되 똑같은 곳에서 만나요.

더 돌아보면 ·살림·사랑도 저마다 다르지만 밑자락은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람이라 할 적에는 바로 이 세 가지 ·살림·사랑을 누리면서 짓는다는 뜻이에요. 삶하고 살림하고 사랑이 함께 있기에 사람입니다. 셋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사람됨을 잃거나 잊습니다.

 

: ·살림·사랑을 빛으로 엮어 숲으로 누리도록 이끄는 이야기

 

책이란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짓는 책하고, 우리가 읽는 책은 무엇일까요? 종이에 글씨나 그림을 척척 찍어서 묶기만 하면 다 책일까요? 생김새만으로 이란 이름을 붙여도 될까요?

겉보기로는 틀림없이 책이되 책답지 않다고 여기는 책이 꽤 있습니다. 겉으로는 이쁘장하거나 멋스러우나, 속살을 들여다보면 너무 허술하거나 뒤틀렸거나 엉터리라서 책이라는 종이꾸러미가 되어 준 나무하고 숲한테 잘못했다고 여기기 일쑤입니다.

오늘날에는 누리책(전자책)도 있습니다만, 모름지기 책은 종이를 얻어야 짓습니다. 종이는 나무한테서 얻고, ‘책으로 삼을 종이가 될 나무는 아름드리로 자라서 숲을 이룬 곳에 있어요. 몇 그루쯤 있는 나무로는 종이를 얻지 못해요. 사람 발길이 닿지 않도록 나무로 깊고 넓고 가득 우거진 숲에서 자란 나무라야 비로소 책으로 삼을 종이로 나아갑니다.

빛을 생각해 볼까요? 형광등으로 밝혀도 나락이나 나무가 자랄는지 생각해 봐요. 우리가 먹는 쌀밥도, 우리가 즐기는 빵이나 국수도, 모두 불빛이 아닌 해(햇볕·햇살·햇빛)를 먹어야 튼튼히 자라고, 이렇게 튼튼히 자란 나락이며 나무여야, 사람한테 이바지하는 밥으로 거듭납니다.

 

: 해님(별님) + 숲님(나무님)

 

모든 책은 해님이자 숲님입니다. 모든 책은 해님을 듬뿍 받아들인 숨결이자 숲님이 감도는 넋입니다. 이런 터라 책이 책답지 않을 적에 종이가 아깝다 = 나무한테 잘못했다 = 숲한테 잘못했다 = 해님한테 잘못했다고 말하지요.

저는 어릴 적에 종이 한 자락도 허투루 쓰지 말라고 배웠습니다. 1980년대가 저물도록 그야말로 종이는 참 드물었어요. 요새는 아무 종이로 책을 싸는 일이 없다고 할 텐데, 1990년대 첫무렵까지만 해도 겉에 글씨나 그림이 잔뜩 박힌 종이라 해도 깨끗하고 도톰하면 책싸개로 삼았습니다. 신문종이도 책싸개로 알뜰히 썼어요. 붓글씨를 하건 아이가 글씨쓰기를 익히건, 헌 신문종이에 대고 쓰고 또 썼어요. 흰종이에 함부로 글도 글씨도 못 썼습니다.

 

 

. 헌책·새책

 

헌책 : 이미 쓴 책

새책 : x

신간(新刊) : 책을 새로 간행함. 또는 그 책

장서(藏書) : 책을 간직하여 둠. 또는 그 책

 

낱말책(국어사전)을 펴면 헌책은 올림말로 있되 새책은 아직(202112) 없습니다. 낱말책을 펴서 새책을 찾는 분이 없기 때문에 새책이 올림말로 없는지 모르나, 한자말 신간은 올림말로 있어요.

제대로 담았다고 하기 어려우나, 아무튼 국립국어원 낱말책으로 보자면 헌책 = 이미 쓴 책입니다. 그런데, 책숲(도서관)에서 건사한 책을 헌책이라고 가리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얄궂지요. 책숲이야말로 숱한 사람이 만지작대는 책인데, 왜 책숲에 깃든 책은 헌책이라 안 하고, 한자말로 장서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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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책보고, 촬영 : 최종규

 

헌책집을 자주 드나든 분이라면 헌책집이야말로 책이 깨끗하고, 책숲이야말로 책이 지저분하다고 여깁니다. 속낯을 보아도 알 만합니다. 어느 책숲이건 책이 참 나달나달합니다. 헌책집에서는 나달나달하면 종이쓰레기로 버립니다. 헌책집에서 나달나달해도 안 버리는 책이 있다면, 다시 만나기 매우 어려운 값진 책일 때입니다.

헌책집 헌책이야말로 깨끗합니다. 책숲이야말로 지저분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헌책집에서는 책을 사고팔 살림으로 여기거든요. 다른 사람 손을 거친 책을 새로운 책손이 만나기 앞서 깔끔하게 손질하거나 닦습니다. 이와 달리 책숲(도서관)에서는 사람들이 빌려서 읽은 책을 행주나 걸레로 깔끔하게 닦는 일이 아예 없습니다. 책숲에 찾아가서 빌려서 읽은 사람들이 책을 행주나 걸레로 찬찬히 닦아서 돌려줄까요? 글쎄, 모를 노릇입니다. 이렇게 하는 분이 더러 있을는지 모르나, 거의 모든 책숲 책손은 책을 안 닦고서 돌려주고, 책숲지기(도서관 사서)도 그냥 꽂습니다.

 

 

. 헌책집·책숲

 

헌책집 책 : 헌책집지기는 날마다 헌책을 정갈하게 닦고 손질한다

책숲 책 : 책숲지기도 책손도 지저분한 채 그대로 둔다

 

헌책집을 다녀 보지 않고 새책집만 다니던 분이 처음 헌책집에 들어서며 깜짝 놀라는 대목은 아니, 헌책이 왜 이리 깨끗해요?”입니다. 헌책집지기가 날마다 책을 닦고 손질하고 정갈히 추스르는 줄 하나도 모르니까요.

책숲은 틈틈이 책을 버립니다. 책숲지기도 책숲 책손도 책을 함부로 다룰 뿐 아니라, 닦거나 손질하는 일이 아예 없다시피 하니 쉽고 빨리 닳고 낡아요. 더구나 책손이 안 빌리는 책은 자리만 차지하기 일쑤라고 여겨, ‘사람들이 자주 빌리는 책을 건사하려고 사람들이 안 빌리는 책은 쉽게 버립니다.

 

헌책집 책 : 새롭게 책을 알아볼 책손이 나타날 때까지 책손질을 하고 건사한다

책숲 책 : 책손이 안 찾으면 곧 버리고, 책손질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책을 너무 모릅니다. 사람들은 헌책·새책이 돌아가는 얼개를 아예 안 쳐다봅니다. 사람들은 헌책집·새책집·책숲이 맡은 자리를 거의 안 쳐다봅니다.

저는 1992년부터 헌책집에 눈을 뜨고서 헌책집을 늘 찾아다니면서 헌책집지기한테서 책을 배웠습니다. 저한테 책을 가르친 길잡이나 이슬받이나 스승이나 어른은 모두 헌책집지기입니다. 어느덧 마흔 해란 헌책집 살림길을 잇는 서울 책방 진호지기님은 어느 날 문득 이렇게 가르쳤어요.

 

여보게, 헌책집 일꾼이 날마다 뭘 하는지 아는가

첫째, 버림받은 책 가운데 되살릴 책을 찾아내지

둘째, 버림받은 책은 그동안 사랑받지 못해서 지저분해

그래서 이 지저분한 책이 사랑받을 수 있도록 손질하지

셋째, 오래도록 버림받은 책이라 제대로 알아보고 사랑할 사람이 나오기까지 오래 걸려

그래서 이 헌책을 알아볼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깨끗하게 돌보고 손질하고 건사해야 해.”

 

서울 잠실나무 곁에 둥지를 튼 서울책보고는 우리나라에서 책사랑을 몸으로 마음으로 조용히 빛낸 서른하나 헌책집지기가 조금씩 내놓은 헌책을 한자리에 그러모았습니다. 이 헌책은 돈으로만 따지만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 헌책은 돈이 아닌 손빛책(손길을 받아서 빛나는 책)’이라는 대목으로 바라볼 적에 비로소 값어치를 알아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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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책보고, 촬영 : 최종규

 

 

 . ·

 

저는 지난 2004년에 모든 책은 헌책이다라는 책을 써냈습니다. 저는 낱말책(국어사전)을 새롭게 짓고 엮고 쓰는 일을 하는데, 낱말책을 쓰자면 오늘날하고 어제말을 함께 살펴서 모레말을 나란히 읽고 가다듬어야 합니다.

 

낱말책 : 오늘말 + 어제말 + 모레말

: 오늘책 + 어제책 + 모레책

 

오랜 낱말책하고 밑책(자료)을 찾으러 헌책집을 자주 드나들기도 했습니다만, 말도 책도 얼거리가 같아요. 오늘 쓰는 말은 어제가 바탕이면서 모레(미래)로 나아가는 징검다리입니다. 책이란, 오늘 읽으며 새기는 이야기인데, 모든 책은 어제(과거) 써서 나올 뿐 아니라, (미래)으로 나아가는 징검돌입니다.

어제를 읽어 오늘을 알면서 모레로 가는 실마리이자 열쇠이자 수수께끼인 + 입니다. 우리가 책을 읽을 적에는 말을 읽습니다. 우리가 책으로 읽는 말은 말소리가 아닌 생각소리입니다. 그냥그냥 어림하는 말을 담은 책이 아닌, 우리가 삶을 지으면서 살림을 가꾸어 사랑을 펴는 실마리이자 열쇠이자 수수께끼를 생각을 그린 말로 풀어낸 이야기꾸러미가 책입니다.

 

책이 담은 말 : 삶을 짓고 살림을 가꾸어 사랑을 펴는 생각을 담은 말

 

이름값이 있는 글님이 썼고, 이름값이 있는 곳에서 펴낸 어느 책을 읽었는데 어쩐지 알맹이가 없다고 느낀다면 책이 담은 말이 허술했다는 뜻입니다. 이름값이 없고 낯선 글님에 펴낸곳에서 나온 책을 읽었는데 가슴을 울리면서 아름다웠다고 느낀다면 책이 담은 말이 알찰 뿐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허울 아닌 속빛을 바라보고 읽어서 느꼈다는 뜻입니다.

책은 껍데기로 못 읽습니다. 아무리 꾸밈결(디자인)이 훌륭하거나 멋스럽다 하더라도, 속살이 허술하다면 책이 아닌 종이뭉치예요. 속살이 알차기에 비로소 책이라는 이름입니다. 속살이 알찬 책이기에 꾸준히 새롭게 장만하면서 우리 스스로 오늘을 새롭게 읽는 밑거름으로 삼습니다.

 

 

. 서울책보고

 

서울 잠실나루 곁 서울책보고〉는 묵은 종이뭉치가 아닌 오늘 되살려서 느끼고 바라보고 읽고 새겨서 살림빛을 가꾸는 밑자락 빛살이 될 책을 만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책보고를 찾아오는 책손은 이곳이 그러모은 ‘서른하나 헌책집을 거의 모르기 마련입니다. ‘책집이름을 보며 책을 살피거나 고르지 않습니다. 오직 책을 보면서 책을 살펴서 고릅니다.

서울책보고가 잘 하는 대목이 많다고 여깁니다만, 잘 하는 대목은 누구나 말을 할 테니 굳이 저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른 분들은 말하지 않거나 못할, 서울책보고에서 아쉬워서 차근차근 가다듬을 대목을 말하려고 합니다.

 

1. 서른하나 헌책집을 알리지 못한다

서른하나 헌책집이 책을 내주었는데, 막상 글 몇 줄로 그 헌책집을 들려주고 끝입니다. 더구나 이름쪽(명함)이 떨어졌는데 채우지도 않습니다. 헌책집에서 이름쪽을 새로 안 찍으면 서울책보고에서 먼저 나서서 이름쪽을 찍어서 꽂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 헌책집을 찾아가기 좋도록 길그림(지도)을 옆에 큼지막하게 붙여 주기도 하고, 길그림을 종이로도 뽑아서 누구나 한 자락씩 챙겨 가도록 해주어야지 싶습니다. 이는 서울책보고에 알뜰살뜰한 헌책을 맡긴 헌책집한테 서울책보고가 해줄 조그마한 빛(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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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책보고, 촬영 : 최종규

 

2. 책이 딱종이(스티커) 때문에 망가진다

서울책보고에서 붙인 책값 딱종이(스티커)는 너무 단단하며 질깁니다. 이 딱종이는 안 떨어질 뿐 아니라, 떼려고 하면 똥(끈적임)이 엄청나게 남고, 더구나 코팅 안 한 책은 종이가 북 찢어집니다. 그나마 요즈음 책이라면 그러려니 지나가겠으나, 196070년대 책이나 194050년대 책에 버젓이 딱종이를 붙여놓으면 책이 그냥 망가지지요. 철지난 달책(잡지)은 앞뒤에 깃든 광고로도 값어치를 합니다. 그런데 서울책보고는 달책 광고 한복판에 철썩 딱종이를 붙이니 너무 딱합니다. 책을 이토록 망가뜨리면 안 됩니다. 값진 책이나 오랜 책, 또 코팅을 안 한 책은 따로 비닐로 싸서, 비닐에 딱종이를 붙일 노릇이요, 이 딱종이도 잘 떨어지도록 바꾸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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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책보고, 촬영 : 최종규

 

3. 책이 햇볕 때문에 삭는다

서울책보고창가에 있는 책은 햇볕하고 햇빛에 삭아 버립니다. 모름지기 책집은 불빛을 되도록 낮추어 어둡게 꾸밉니다. 책은 햇빛뿐 아니라 불빛으로도 삭거나 닳거든요. 그런데 서울책보고는 창가에 책을 놓아서 전시까지 하는데, 창가에 전시하는 책은 값싸거나 흔한 책도 아닌, 값지거나 드문 책이기까지 합니다. 가뜩이나 햇빛에 곧장 책이 닿으면 겉그림은 빨리 삭고 사라집니다. 코팅마저 안 한 옛책은 햇빛에 바로 닿으면 값어치가 그대로 죽습니다. 책을 죽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책은 햇빛에도 불빛에도 바로 안 닿도록 놓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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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책보고, 촬영 : 최종규

 

창가에 책을 전시하려고 한다면, 창가 쪽 바깥은 거님길이기에, 사람들이 거니는 길(보도블록)을 따라서 길게 해가림·비가림판을 대면 좋겠습니다. 해가림·비가림 노릇을 하도록 서울책보고바깥담을 따라서 죽 지붕을 대 놓으면 책이 안 다칠 뿐 아니라, 눈비가 내릴 적에 사람들이 걱정없이 걸어서 드나들 만합니다. 또한 서울책보고앞자락 거님길에 해가림·비가림 지붕을 대면 서울책보고가 바깥에 전시한 책, 202112월부터 붙인 헌책방 사진전시를 더욱 느긋이 구경하도록 이바지합니다. “헌책방 사진전시를 하느라 큼지막한 판을 바깥에 대 놓으니 서울책보고안쪽으로 햇빛(직사광선)이 덜 들어오기도 하고, 사진판을 거쳐서 빛이 들어오면서 저절로 부드러이 바뀝니다. 사진전시는 여러모로 이바지를 한다고 느낍니다. 앞으로도 사진판은 그대로 두면 좋겠다고 느꼈습니다. 서울책보고유리창을 모두 사진판으로 대놓고서, 안쪽에는 빛살이 부드럽게 스미도록 하면 더 좋겠구나 싶습니다. 전시할 책은 바깥 길가가 아닌, 안쪽에서 보기 좋도록 하는 길이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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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책보고, 촬영 : 최종규

 

4. 걸상이 없다

서울책보고는 서른하나 헌책집에서 맡긴 책을 한자리에 모은 만큼 크기가 안 작습니다. (터널) 같은 얼거리로 짠 서울책보고는 깊고 넓은 터라, 들머리부터 안쪽으로 죽 들어가서 책을 보노라면 어른도 어린이도 다리가 아픕니다. 곳곳에 깔개(방석)를 놓았습니다만, 깔개가 있는 줄 눈치를 못 채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냥 걸상이 있으면 됩니다. 또한 걸상이 있어야 책이 덜 다칩니다. 책손이 마냥 서서 책을 쥐고 읽으면 책이 빨리 다칩니다. 이와 달리, 책손이 걸상에 앉아서 책을 살피면 책이 덜 다치지요. 책집에 걸상이 있을 적에 책 팔림새도 한결 나을 만합니다. 느긋하게 책을 살피면서 살 만한가 아닌가를 헤아릴 틈이 있기에, 책손은 널찍한 서울책보고에서 더 느긋이 머물 만합니다. 서울책보고는 따로 카페 자리를 꾸몄습니다. ‘산 책을 읽는 까페자리도 좋으나 살까 말까 망설이는 책을 헤아리는 틈에 다리를 쉴 걸상이 곳곳에 있는 쪽이 훨씬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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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책보고, 촬영 : 최종규

 

5. 책꽂이가 너무 높다

서울책보고를 보면 곳곳에 사다리가 있으나 크고 무겁습니다. 이래서야 책꽂이가 너무 높아서 안 보이는 곳을 살피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사다리는 몇 없습니다. ‘사다리 걸상이라고 있습니다. 사다리처럼 높은 곳에 꽂힌 책을 집기 쉽도록 척척 오름판이 있는 걸상인데요, 석 칸 높이쯤 되는 사다리 걸상을 모든 책꽂이 옆에 하나씩 놓기를 바랍니다. 사다리 걸상은 사다리이면서 걸상이기에, 사다리 걸상이 있으면 책손으로서 쉬기에도 좋고, 사진놀이를 하려는 분한테도 좋겠지요. ‘사다리아닌 사다리 걸상이 있기에 책을 살피는 틈이 한결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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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책보고, 촬영 : 최종규

 

 

. 헌책을 읽는 눈

 

헌책이란 겉보기로 손길을 탄 책을 가리킵니다. ‘헌책이라 할 적에는 새롭게 읽힐 책이라는 뜻이 감돕니다. “새롭게 읽힐 책이 새롭게 읽히는 길머리 가운데 하나로 헌책을 이야기하는 글이 이바지합니다. 다만, ‘헌책을 이야기하는 글이 있더라도, 어느 헌책이 팔려서 더 들어오지 않으면 쓸쓸할 만하겠지요. 그런데 눈앞에 꽤 오래도록 그 헌책이 없더라도 헌책을 이야기하는 글이 있을 적에는, 책손마다 눈을 반짝이면서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묵은 책에서 캐낼 이야기를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서울책보고한켠에 헌책을 이야기하는 글을 그러모으는 자리를 마련하기를 바랍니다. 저부터 헌책을 이야기하는 글을 써서 드릴 수 있습니다. ‘새로 나온 책이 아닌 예전에 나온 책이 어떠한 빛··뜻이 있는가를 밝히는 짤막한 글을 서울책보고가 꾸준히 그러모으는 이음목 노릇을 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헌책을 이야기하는 글을 그러모은 다음에 어느 만큼 모이면 서울책보고가 새책을 펴낼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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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책보고, 촬영 : 최종규

 

이제는 책집이 책만 사고파는 징검다리 노릇이 아닌, 책을 새로 짓고 나누는 길목 노릇까지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서울에서 판을 짜고 연 서울책보고전남책보고경북책보고처럼, 강원책보고대전책보고처럼, 나라 곳곳으로 차근차근 판을 이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전라남도에서 살며 느끼는데, 전남 순천에 헌책집이 한 곳 있고, 전남 광주에 몇 곳 남을 뿐, 그야말로 전라남도는 헌책살림으로는 씨가 말라 갑니다. 우리나라에서 전남이 책살림이 가장 빨리 죽겠구나 하고 느껴요.

헌책집 서른한 곳이 그러모은 책은 알라딘 중고샵하고 결이 확 다릅니다. ‘알라딘 중고샵서울책보고처럼 못 합니다. 다만 나라 곳곳으로 책보고를 넓힌다고 할 적에는 천천히 하면 좋겠습니다. 서두르지 말고, 한 해에 한 고장씩 넓히면 넉넉하겠지요. 그리고 헌책방 사진전시를 해마다 열어 볼 만하고, 이러한 사진전시로 선보이는 사진으로 헌책방 사진책서울책보고가 엮어서 펴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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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책보고, 촬영 : 최종규

 

 헌책을 파는 서울책보고한켠에, “서울책보고에서 펴낸 새책을 곁들여서 판다면, 이 또한 멋진 꽃자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어느 곳에서도 이런 생각(기획)을 하지도 못할 뿐더러, 할 겨를도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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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책보고, 촬영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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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규(숲노래)

작가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쓴다. 

사전 쓰는 길에 이바지하는 책을 찾아 헌책집-마을책집을 1992년부터 다닌다.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쉬운 말이 평화」,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곁책」 들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