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은 _META_TITLE_ 휴관일입니다.


Vol. 10

SPECIAL

[서울책보고에게 2022년을 말하다] 헌책을 위한 변명

리스트 이상헌책방 거리.JPG

 

헌책을 위한 변명

 

이상

출판평론가, 작가

 

                     

     


인문학에 눈이 밝은 사람이라면 이 글의 제목에서 바로 마르크 블로크를 떠올릴 것이다. 저명한 역사학자였던 쉰세 살의 마르크 블로크는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자 소르본 대학의 연구실을 박차고 나와 독일군에 맞서 싸웠다. 그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마지노선을 돌파한 나치 독일은 이내 프랑스 수도 파리를 점령하였다. 참담한 패배에 낙담하고 있던 병사 중의 한 명이 ‘역사가 우리를 배반했다고 생각해야 할까?’ 하고 읊조렸다.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는 이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할 의무를 느꼈다. 그는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참고문헌도 없이 책을 쓰기 시작하였다. 

 

 “역사는 인간에게 참으로 의미 있고 유용하며, 인간을 위로하고 아름다운 즐거움을 준다.”

 

이렇게 시작되는 그의 유고 《역사를 위한 변명》은 ‘절망의 역사’ 속에서도 진실과 정의의 길을 발견하려 한 실천적 역사학자의 신념이 빛나는 책이다. 헌책 나부랭이 이야기를 늘어놓으려면서 비약이 심하다고 눈을 흘깃 법하다. 막상 써놓고 보니 멋쩍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되돌리지는 않겠다. 나는 헌책과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특별한 헌책 옹호론자도 아니다. 그럼에도 비장미를 느끼게끔 서두를 꺼낸 만큼, 조심스레 ‘헌책을 위한 변명’에 나서볼까 한다.

 


헌책은 시장 교란자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동기가 있다. 

서너 달 전에 책 문화 운동의 중심에 있다고 자타가 인정할 만한 대여섯 사람과 토론회를 가진 적이 있다. 토론이 무르익는 중에 한편으로 깜짝 놀랐다. 그들처럼 균형감 있는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도 헌책은 책 문화의 일각으로 인정되기는커녕 책 문화를 오염시키는 잡스러운 존재였다. 헌책이 책 문화의 건강한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것이었다. 출판사, (신간)서점, 저자 모두의 이해와 충돌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출판시장이 가뜩이나 어려운 판에 헌책은 새 책의 판매를 방해하는 시장 교란자일 뿐이었다. 

출판사와 신간 서점 입장에서는 일견 수긍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논거가 확장되어 저자들을 우군으로 끌어들이는 논리에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다. 새 책이 팔리면 저자에게 인세가 돌아가는 데 비해 헌책은 저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논리라면 도서관은 어떤가? 협애한 경제 논리에만 토대한다면 도서관이야말로 공공의 적이겠다. 

 

헌책방 거리.JPG

▶ 청계천 헌책방 거리

  

단언컨대 말하겠다. 도서관의 순기능이 크고 중요하듯이, 헌책이 일구는 문화도 소중하다. 우리가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 헌책을 시장에서 도태시키려 해도 헌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한때 크게 번성했던 헌책 시장이 위축되어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걸 보며 승리에 도취해 있는 것은 아닐까? 조금만 더 힘을 내면 헌책을 시장에서 일소할 수 있으니 젖 먹던 힘까지 혼신을 다해 보자고. 


 

헌책이 새 책을 낳았다


부질없는 일이다. 그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전통적으로 책의 가치는 희소성에서 출발했다. 권력을 가진 소수가 지식문화와 그 결정체인 책을 독점했다. 권위에 도전하려던 욕망이 필사본 형태로 책을 복제하는 문화를 잉태했다. 어찌 보면 헌책이 새 책을 낳는 구조였다. 근대 인쇄문화가 출범한 이후에도 책은 여전히 귀하고 비쌌다. 그래서 정성을 기울여 고급스럽게 만들었고, 다 읽은 책이라도 소중히 간직했다. 서점에서 새 책만이 아니라 헌책을 중요하게 다룬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의 일이다. 지금도 구미 각국의 서점에서는 새 책과 헌책을 같이 취급하는 곳이 많다. 그 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서점에서도 그렇다. 

 

영국 런던의 책방 거리 채링크로스 로드.jpg

▶ 영국 런던의 책방 거리 채링크로스 로드

 

근대기의 우리나라에서도 새 책과 헌책 문화는 거의 동시에 출발했다. 근대적인 출판문화가 잉태되고 신간을 취급하는 서점이 생겼지만, 한쪽에는 옛 한적漢籍을 파는 서점이 자리 잡고 있었다. 1920년대부터는 종로통과 인사동, 충무로 일대에 꽤 많은 수의 신간 서점과 고서점이 둥지를 틀었다. 새 책과 고서를 함께 취급하는 서점도 여럿이었다. 새 책방, 헌책방 가리지 않고 책방을 순례하는 것이 문사들과 지식인들의 일상이었다. 

 

헌책방 문화는 6·25전쟁을 거치면서 그 모습이 상당히 변모하게 된다.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사람들이 책을 내다 팔았고, 새 책이 귀한데다 비쌌기 때문에 싼 헌책을 찾는 수요가 크게 늘었다. 서울에서는 인사동 일대뿐 아니라 동대문을 중심으로 헌책방 거리가 형성되었다. 1960년대를 지나면서 헌책방 거리의 중심지는 청계천으로 옮겨졌다.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는 통문관을 비롯한 인사동 헌책방은 고서古書를 취급하는 서점으로 분화되고, 청계천 헌책방은 저렴한 가격으로 호주머니가 가벼운 독자들을 끌어들였다. 지금은 인사동이고 청계천이고 헌책방이 거의 사라졌다. 부산의 보수동 헌책방 거리와 인천 배다리 헌책방 같은 곳들도 6·25전쟁 직후에 황금기를 누렸다. 

 


헌책방은 왜 갑자기 사라진 걸까


우리나라에서 헌책방은 왜 갑자기 사라진 걸까? 헌책의 가치가 줄어들어서는 아닐 것이다.

 

첫째는 사람들의 살림살이에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낡은 것을 하찮게 여기고 새것, 그것도 최신의 것을 선호하는 소비 풍조가 만연하였다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 등의 소비 트렌드를 보면 쉬 알 수 있다. 여전히 책도 과시 소비의 대상이다. 작은 크기의 문고본은 팔리지 않고 한동안 국전지 종이로 제작할 수 있는 최대 사이즈의 신국판이 크게 유행한 것은 그 전형적인 예이다. 

둘째는 아파트 문화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아파트에는 단독주택처럼 책을 장서로 보존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이 넓지 못하다. 먼지 묻고 퀴퀴한 냄새에 절은 낡은 책은 가족 갈등의 원인이기도 하다. 많은 장서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새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책을 버리고 가는 경우를 허다하게 보았다. 꽤 귀중한 책을 기증하고 싶어도 받아주는 도서관이 없다.            


 

헌책을 위한 첫 번째 변명: 헌책이 더 가치 있다


새 책만을 선호하는 문화는 기형적이다. 우리처럼 헌책 문화가 급격하게 퇴조한 나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본 동경 한복판의 진보초에 가면 헌책방 180여 곳이 밀집해 있다. 사이사이에 자리한 신간 서점도 30여 곳에 이른다. 이와나미, 쇼각칸, 슈에이샤 같은 일본을 대표하는 대형 출판사를 비롯한 수많은 출판사가 인근에 둥지를 틀고 있다. 거대한 출판 콤비나트의 중심을 헌책방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헌책방들의 수준은 아주 높다. 영문 고서를 취급하는 기타자와 서점에는 해외에서도 콜렉터들이 찾아온다. 동경 고서적상협회에 가입한 서점만도 600여 곳에 이른다. 그들이 2차대전 패전 후처럼 생활에 여유가 없어 헌책을 애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본 -1917년에 세워진 동경 진보초의 야구치 서점과 고가 서점..jpg

1917년에 세워진 동경 진보초의 야구치 서점과 고가 서점 Kenichiro MATOHARA

 

그들에게서 중요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독자들이 읽고 나서 푼돈이나마 건지자고 서점에 팔아넘긴 낡고 값싼 고물 같은 책을 취급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헌책이 새 책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철학을 지닌 직업 정신의 소유자들이다. 그래서 대학교수 자리를 던져버리고 헌책상이 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주장은 이렇다. 새 책은 오로지 출판사의 판단에 의해 출판이 결정된다. 그런데 헌책은 신간 서점에서 독자의 선택을 받은 다음 헌책상이 상품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구입한 것이다. 다시 헌책상 사이의 거래를 통해 전문서점의 판매목록에 오른다. 새 책에 비해 두세 차례의 평가를 더 거치는 것이다. 진보초 서적상들이 헌책이 새 책보다 더 가치있다고 자신 있게 주장하는 이유다. 이것이 헌책을 위한 첫 번째 변명이 되겠다.

 

진보초 서점에서 독자를 기다리는 고서들..jpg

▶ 진보초 서점에서 독자를 기다리는 고서들 007 Tanuki

 

일본에서는 헌책을 고서(古書, 고쇼)와 고본(古本. 후루혼)으로 구분한다. 우리에게 이 같은 구분법이 의미론적으로 정착돼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대략 전자를 고서, 후자를 헌책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인사동 통문관을 비롯해, 완주 책 박물관에 자리한 호산방, 보수동의 고서점 등이 고서 서점으로 분류될 수 있다. 화동문고처럼 희귀본 고서를 경매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시장이 작다 보니 외국에서처럼 시장과 전문성이 미분화된 것도 사실이다. 영어에서는 고서를 antique book, rare book, old book 등으로, 헌책은 second-hand book, used book으로 표기한다. 런던 채링크로스 로드나 옥스퍼드 등지의 헌책방들도 대부분 특정 분야의 전문서점임을 내세운다.

 



헌책을 위한 두 번째 변명: 헌책이 더 민주적이다.

   

헌책을 위한 두 번째 변명은 헌책이 더 민주적이라는 것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수십 개의 책마을이 만들어졌다. 책마을은 헌책방이 모여 있는 시골 마을을 가리킨다. 영국 웨일스의 헤이온와이를 비롯해 벨기에의 르뒤, 네덜란드의 브레더보르트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헤이온와이를 세계 최초의 책마을로 만드는 데 공헌한 리처드 부스는 힘주어 헌책이 더 민주적임을 역설하였다. ‘새 책은 저자가 결정하고 헌책은 독자가 결정한다.’ 그래서 헌책이 더 민주적이고 가치가 높다는 것이다. 멋지지 않은가? 헌책방 구석 자리에 놓인 볼품없어 보이는 낡은 책이라 할지라도 높은 안목을 지닌 독자의 선택을 거쳐 책 문화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당당한 선언이다. 헌책의 민주성에 대한 그의 관심은 자연스레 제3세계 문제로 확장되었다. 그는 세계 여러 나라에 책마을이 태동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특히 아프리카 같은 곳에 책마을을 만드는 일을 저렴한 헌책을 통해 문화 장벽을 해소하고 문맹률을 퇴치하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의제로 생각하였다.

 

영국 웨일스의 책마을 헤이온와이의 중심에 우뚝 선 헤이 성. 리처드 부스가 구입해 헌책방으로 만들었다. 헤이온와이에는 30여 개의 헌책방이 자리하고 있다. ..jpg

▶ 영국 웨일스의 책마을 헤이온와이의 중심에 우뚝 선 헤이 성. 리처드 부스가 구입해 헌책방으로 만들었다. 헤이온와이에는 30여 개의 헌책방이 자리하고 있다. 

 

사본 -IMG_1059.jpg

헤이온와이 북셀러에서는 헌책과 새책을 같이 팔고 있다. 

     


헌책을 위한 세 번째 변명: 지속 가능한 개발


헌책을 위한 세 번째 변명은 지속 가능한 개발의 매개물로서의 효용성이다. 그것은 쇠락한 농촌 마을에서 더욱 효과적인데, 책마을이라는 개념이 곧 이 같은 사고의 바탕 위에 서 있다. 어디에나 책마을을 만든다고 성공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름의 훌륭한 역사적 유산이나 자연경관을 가지고도 뚜렷한 재생의 전기를 마련하지 못한 마을들이 헌책과 책마을이라는 문화 콘텐츠를 통해 마을 재생과 관광 활성화라는 과실을 거두고 있다. 호주 빅토리아주의 작은 마을 클룬스가 헌책을 매개로 마을 재생을 이루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책마을들이 모여 결성한 세계 책마을협회(IOB)는 책마을의 개념이 헌책을 통한 지속 가능한 농촌 개발의 모델임을 밝히고 있다. 서울책보고 같은 경우는 헌책을 통한 도시 재생의 한 모델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호주 클룬스 책마을에서 책축제가 열리는 모습.jpg

▶ 호주 클룬스 책마을에서 책축제가 열리는 모습       


21세기의 세계사적 과제는 단연 기후 위기와 생태환경이다. 진부한 이야기 같지만, 자원의 재활용에서 책도 예외일 수는 없다. 새 책만이 책 문화 생태계에 포함된다는 편협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무리 AI 시대라 하더라도 상상력을 증진해주는 지적 탐구의 중요한 매개물은 여전히 책이다. 상황이 녹록지 않더라도 책 문화의 파이를 키우고, 그런 속에서 헌책과의 행복한 동행의 묘수를 찾아야 한다. 새 책의 적은 헌책이 아니다. 헌책에 책 문화 확산의 일익을 부여하는 전향적인 인식이 필요하다. 헌책에 덧씌워진 음울한 가면을 벗겨내야 할 때다. 

 

 

프로필 이상 2.jpg

이상

출판평론가, 작가

 

대학에서 역사를, 대학원에서 문화예술경영을 공부하였다.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일을 하다가 1998년부터 헤이리 예술마을 사무국 책임자로,

 2010년부터는 파주북소리 운영 책임자로 일하였다.

2020년 한국출판평론상(한국출판연구소 주최)을 수상하였으며,

 《세계예술마을은 무엇으로 사는가》, 《세계의 책축제,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다》,《헤이리 두 사람의 숲》 등의 책을 저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