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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09

BOOK&LIFE

[SIDE A] 그림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공간성과 디지털 확장성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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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드와 나>, 김지민, 사진출처 : 비블랫폼 공식 블로그(클릭 후 이동)

 

그림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공간성과 디지털 확장성에 대해

 

천상현

그림책상상 그림책학교 대표

 


그림책은 일반 책들보다 평균적으로 판형이 큰 편이다. 왜 그럴까? 아이들을 위해서? 아니면 그림을 크게 보여야 해서인가? 한가지 이유로 설명될 수 없지만, 그림책이 읽기 책과 구별될 수 있는 점은 그림책만이 가질 수 있는 물리적인 특징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그림책의 공간성 또는 확장성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공간성이란 읽기 책에서의 가독성 또는 판독성과는 다른 성질의 것인데 그림책을 펼쳤을 때 확보되는 시각적 시야각 즉 화각이 주는 몰입감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그림책이 시각적 장점으로 인해 현재 모바일 시대에 맞게 디지털화가 더 빨리 진행될 수 있을 것 같지만 모바일의 작은 화면으로 공간성 몰입이 약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또한, 글 작가 그림작가에 따라 창작의 접근도 다르지만 재미있는 점은 그림책이 최종 인쇄되어 나왔을 때 반응이 서로 사뭇 다르다. 이 또한 인쇄 퀄리티나 종이가 주는 질감, 색감이 하나의 언어기 때문에 창작자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그림책을 예술의 영역으로 접근할 경우 최종 인쇄물과 제본에 따라 공예적 측면의 북아트까지도 그림책에 포함하려는 작가가 많고 독자도 그런 부분을 즐긴다. 



제본과 판형 이야기


우리나라와 달리 영미권의 경우 작품당 무선제본과 양장제본의 두 가지 형태로 동시 발행하는 예도 있다. 읽기 책의 경우는 비교적 저렴한 신문용지에 흑백 인쇄로 표지만 화려하게 가공한 책들이 보편적이다. 이것은 책을 수집하는 것보다 소비하는 측면으로 보기 때문이다. 한국은 양장본 그림책이 많은데 이 또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하드커버는 아이가 책을 손에 쥘 때 단단한 책 커버로 펼쳐져 지탱해 주는 것이 안정적이다. 그리고 제본 상 그림이 반듯하게 펼쳐지기 때문에 가운데 가려져 보이지 않아 손실되는 부분이 적다. 그리고 아이들은 좋아하는 책을 수백 번 보기 때문에 책을 여러 번 펼칠 때 견고성이 좋다. 


그림책 작가의 입장에선 무선철보다 양장제본을 선호한다. 아무래도 좀 더 고급스럽고 정중한 작품으로 오랫동안 독자에게 작품으로 소장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또한, 하드커버의 두께감 때문에 책장에서 좀 더 볼륨감있게 보일 수 있고 전시나 다른 활동으로 볼 때도 양장제본이 예술적인 작품으로 시각적 효과가 무선제본보다는 크다. 


그렇다면 제본의 형태와 달리 그림책은 다른 일반책 보다 왜 판형이 큰 것일까? 그것은 독자가 그림에 몰입할 수 있는 보는 시각이 크면 클수록 좋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통 영상을 볼 때 좀 더 큰 화면으로 좀 더 좋은 소리가 주어졌을 때 콘텐츠의 몰입감이 비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상 화면의 선명도와 소리의 입체감 등 역시 점점 고해상이 되면 될수록 관객은 몰입한다. 반대로 텍스트 즉 활자가 선명하고 크면 가독성과 판독성은 좋아지지만, 내용을 판독하면서 집중해서 읽어내려가지 않으면 몰입이 잘 안 된다. 그림책은 이 두 가지의 속성 중 시각의 속성으로 인해 판형의 영향이 크다. 


전문가들은 그림책의 두가 큰 요소인 글과 그림에서 글은 시간을 통해 순차적으로 읽어야 하고 그림은 한눈에 느끼는 공간을 갖고 있다. 즉, 시공간의 복합적 예술인 것이다. 특히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때 소리와 종이 또는 특수한 장치로 만져지는 촉감까지 더해진다. 이 중 시각적 요소에서 공간성은 몇 가지 그림표현에 있어 착시적인 영향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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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를 봐요>, 정진호, 사진 출처 : 가온빛 홈페이지(클릭 후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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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 정진호, 사진 출처 : 서울신문(클릭 후 이동)


 

 


건축 전공 출신의 정진호 작가의<위를 봐요> <벽>은 우리가 보아온 그림책의 시각을 전혀 다른 각도의 방향으로 유도한다. 정면이 아닌 위에서 바로 보는 풍경, 평면적인듯하면서도 투시적인 표현으로 그림책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유도한다. 이것은 우리가 항상 무의식적으로 보아 왔던 정면, 평면적인 생각에서 다른 관점의 생각을 하도록 독자를 시각을 바꾸고 있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살아온 아파트와 같이 복제된 똑같은 구조에서 관점을 바꾸어 용기 있게 자신만의 공간과 시각을 갖는 건축을 갖는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공간과 시각이 바뀐다는 것은 매우 물리적이고 외형적일 것 같지만 이것은 독자의 감성과 생각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주거 공간이 바뀌면 생활 방식이 바뀌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림책은 이런 관점을 유도할 수 있는 장치들이 많다. 



그림책에 숨어 있는 공간들


그림책을 펼치면 가운데 접어 들어가는 부분 즉 책 고랑(제본선)이 있다. 이것은 제본 상 필연적인 것인데 이 부분은 그림에는 시각 단절 현상을 주어 그림 감상에 방해가 된다. 하드커버의 경우 손바닥으로 이 부분을 눌러 그림을 평평하게 펴도 실제본으로 묶여 있어 문제가 없지만 무선철 제본의 경우 본드의 연결성이 약해져 종이가 떨어져 나갈 수 있다. 물론 완전히 펼쳐진 그림도 가운데 잘려서 보여 아쉬움은 있다. 그래서 작가들은 이 가운데 부분에 중요한 이미지를 배치하는 것을 피해 작업하는 편이다. 반대로 이 부분을 매우 현명하게 이용한 작품들도 있다. 이수지 작가의 경계 삼부작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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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계 3부작 시리즈, 이수진, 사진출처 : 비룡소(클릭 후 이동)

 

<파도야 놀자>, <그림자놀이>, <거울 속으로> 책 고랑을 중심으로 대칭점을 이용하여 이야기의 중요한 콘셉트를 잡고 있다. 작가는 이 책 고랑의 경계를 현실과 환상으로 규정하고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데 특히 <그림자놀이>는 책을 세로로 펼치면서 90도의 각을 유지하여 바닥에 놓고 보면 더 그림자의 표현이 바닥이 누워져 있는 표현으로 보여서 몰입감이 좋다. 즉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벽과 바닥으로 배치된 공간으로 보일 수 있고 단순히 현실과 상상의 경계인 위, 아래로도 보일 수 있다. 


보통 그림책에서 책장을 넘기는 행위는 전체 이야기 구성에서 어떤 공간이나 상황이 바뀌는 커튼(막) 같은 역할이다. 페이지를 넘기기 전의 그림과 글의 궁금증과 변화들을 이어가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작가들은 이 페이지 넘김의 순서와 리듬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창작자에 측면에서 보는 각도에 따라 페이지가 펼쳐진 그 사이에 있는 책 고랑도 어찌 보면 좌에서 우로 시간성을 갖고 넘어가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그림책에서 좌측은 텍스트만 있고 우측은 그림만 있는 경우도 보게 되는데 각각의 공간의 역할과 감정을 분리하는 장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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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사진 책>, 피터 뉴웰, 사진 출처 : 콜렉터스 위클리 웹사이트(클릭 후 이동)


1910년에 처음 발간되어 지금까지도 판매되는 피터 느웰의 <경사진 책> “The Slant Book by Peter Newell”은 독특한 판형과 제본을 가지고 있다. 내용을 보면 보모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유모차는 계속 경사진 길을 미끄러지며 달리며 소동을 피우며 책을 넘길 때마다 긴장감을 일으킨다. 이것은 책의 마름모꼴의 기울어진 제본된 형태와 아주 잘 맞아떨어지게 연출되어 있다. 내용은 단순하지만, 아이디어와 책의 형태가 너무나 잘 어울린다. 물론 책을 기울어진 마름모꼴로 제작하는 문제는 쉽지 않고 많은 제작의 손실과 비용이 들어갈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독자에게 이 책을 지불하게 만드는 가치를 제공한다면 충분하고 그것이 그림책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독특한 점이다. 



책 공간 속에 또 다른 공간


그림책은 사이즈와 별도로 세로 판형과 가로 판형으로 크게 두 가지 형태로 가로, 세로의 비율이 다른 책들을 볼 수 있다. 가로 판형 책들은 책장에 꽂을 때 툭 튀어나오게 되어 세로 판형 책들과 같이 섞어 보관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렇다면 그림책에서 가로 판형의 그림책의 특징들은 무엇일까? 대체로 가로 판형은 책을 펼쳤을 때 시야각이 넓게 보여 풍경 그림이나 여러 장면에 따른 순차적 흐름을 한눈에 보여주기 좋은 구성에 많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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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드와 나> 김지민, 시사인(클릭 후 이동)

 

김지민 작가의 <하이드와 나>는 독특한 연출로 공간과 시각을 재해석하여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유도한다. 문틈으로 보이는 저 너머 낯선 공간은 병풍구조의 제본 구조와 함께 중간중간 페이지에 뚫린 구멍들의 중첩된 이미지로 어떤 새로운 공간으로 독자를 계속 유도하고 있다. 이것은 주인공이 느끼는 변형된 공간의 모습을 통해 또 다른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이처럼 그림책 속에 여러 가지 요소들은 다양한 시각과 공간적인 연출을 가능하게 한다. 때로는 그림 자체로 때로는 종이의 구조로, 때로는 제본의 방식으로 전혀 다른 상황과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러한 장치는 단지 어떤 재미나 독특함을 넘어서 이야기의 아이디어와 결합하여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증폭시킨다. 즉, 평면적인 구조의 메시지 전달 방식에서 공간의 입체적인 시각으로 줌으로 생각과 관점을 확장한다. 이것은 독자에게 다양한 상상력과 확장성을 주게 하는 그림책만의 장점이다. 



책 공간의 확장


다양한 종이 구조물이 펼쳐지는 팝업 그림책의 형식과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단순히 덮여 있는 것을 펼쳐 보는 플랩형식 구조에서 어떤 입체 구조물이 만들어지면서 솟아나는 경우, 손잡이를 당기거나 간단한 실을 이용해서 연결되는 팝업까지 매우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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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팝업북 <콜럼버스의 산타마리아호>, 쿠바스타, 사진출처 : 로체스터 대학교 홈페이지(클릭 후 이동)

 

팝업북(Pop-Up book)이란 용어는 1932년 블루리본 프레스라는 출판사에서 처음 용어 저작권을 신청했지만, 오래전인 1750년부터 아이들을 위한 책에서 간혹 보이기 시작한다. 당시는 움직이는 책(Movable book)이란 용어로 사용되어 과학, 의학 등 학습도감류 등으로 조금씩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그림과 종이 구조의 결합은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게 한다. 전문적으로 이 구조를 설계해서 대량 생산이 가능한 방식으로 설계하는 사람들을 페이퍼 엔지니어라고 한다. 팝업의 방식은 그림이 갖는 평면적인 구조에서 입체적인 구조로 페이지를 넘기기만 하면 단순히 물리적인 원리로 손쉽게 바뀐다. 아이들은 기대하지 않는 입체적 공간과 캐릭터의 출연에 책의 이야기 속에 바로 매료되고 몰입된다. 이처럼 책과 독자 간의 상호 작용과 공간성을 주어 책 속에 이야기에 간접적인 공감을 유도하는 시각적 유희는 그림책이 가지고 있는 장점 중의 하나이다. 


팝업형식이 아니라도 간단히 제본의 응용으로 다양하게 펼쳐지는 형태의 책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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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는 춤춘다>,  배유정, 사진 출처 : 한국독서교육신문(클릭 후 이동)


<나무는 춤춘다>의 책 제본은 아코디언 책(Concertina book)처럼 접이식 구조이다. 페이지가 이어 붙여져 있어서 한 장의 긴 종이 형태로 계속 펼져 친다. 각각의 페이지가 가지고 있는 그림들이 연결되면서 울타리처럼 또 하나의 큰 공간을 만들고 시야를 확장한다. 실제로 책이 바닥에 길게 펼쳐지기 때문에 책을 펼치려면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작은 책은 펼쳐지면서 더는 책이 아닌 어떤 도시 또는 어떤 나무로 변한다. 이처럼 책이 단지 페이지로 이어진 것이 아닌 공간으로 확장하고 그 공간이 책 속으로 펼쳐지며 독자의 시야와 관점을 작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한다. 텍스트와 그림이 연결하여 다음 페이지로 이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독자의 다양한 공감각을 이용하여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로 끌어들인다. 바로 디지털 화면이나 영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물리적인 그림책의 매력 중 하나이다. 




그림책의 미래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 같은 모바일 디바이스가 시작되었을 때는 많은 출판사나 작가들이 시장 변화에 관심이 많았다. 왜냐하면, 다양한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등 그림책이 갖는 공간성과 이야기 그리고 그림들의 활용도가 2차, 3차로 확대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본의 유명 게임회사는 홀로그램 방식까지 이용하여 책을 펼치면 TV 화면에 가상의 그림과 공간이 형성되어 이야기가 자동으로 플레이되는 형태까지 제시했었다. 그러나 그러한 확장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성공하지 못한 채 아직 인쇄된 그림책 방식의 유통으로 머물러 있다. 2차, 3차 인터렉티브 콘텐츠 제작비가 사용자의 지불과의 격차가 컸고 제작이 기존 인쇄 제작 방식처럼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현재 읽기 책은 다양한 디바이스에 탑재되고 오디오 북 형식으로도 소비, 유통되고 있지만, 그에 비해 아직 그림책 콘텐츠 시장은 현재 무선 통신 환경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앞서 이야기한 그림책의 다양한 공간성과 인터렉티브한 확장성의 시각을 손쉽게 디지털로 변환시키고 유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통신과 다양한 미디어 환경의 통합은 아마도 그림책의 확장성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만화 장르에서 웹툰이란 형식과 사용자 방식이 만들어졌듯이 그림책도 독자들에 맞춰 현시점에 맞는 사용자 방식이 만들어지고 이전의 사랑받았던 작품뿐만 아니라 새로운 젊은 창작자들에 의한 새로운 방식의 그림책도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어떤 방식의 공간 확정성이라도 그림책이 독자들에게 주어야 할 중요한 가치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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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현

그림책상상 그림책학교 대표

상출판사 발행인 


홍익대 시각디자인 졸업, 

영국 앵글리아 러스킨대학(Cambridge School of Art) 어린이 책 일러스트레이션 석사


[이전 경력] 계원예술대학 겸임교수,  KBBY부회장,

그림책상상 계간지 발행인, 그림책상상 북카페 운영,

 CJ 그림책축제 전시 공모전 및 애니메이션축제 총괄기획 사무국운영,

 상상마당 볼로냐그림책워크숍 개설

 

 

 

 

 

섬네일 사진 : <벽>, 정진호
사진출처 : 서울신문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60618019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