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
군산시 문화관광해설사 강경희 작가 등단 23년 만에 첫 소설집 『고향』
1999년 제2회 공무원문예대전에서 소설 부문으로 우수상을 받고 퇴직 후 군산시 문화관광해설사로 일하며 ‘군산여류문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인 강경희 작가가 등단 23년 만에 첫 소설집 『고향』을 출간했다.
강경희의 소설집 『고향』은 작별과 만남을 이야기한다. 등장인물들은 끝자락과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곤 한다. 가을의 끝자락과 겨울의 시작, 장례식, 귀향과 만남, 이별과 그 끝에서 새로 맞는 풍경들을 펼쳐낸다. 소설집 세 번째에 놓인 「가을비는 겨울을 재촉한다」의 여자는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인간관계가 그녀를 막다른 골목으로 내몬다. 아들의 연인이 남편의 잠자리 파트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자는 겨우겨우 지탱하고 있던 세계가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소설의 말미에서 여자는 빗속에 혼자 서 있다. 돌아갈 곳이 없다. 마음을 놓아둘 자리는 사라졌다. 비 오는 거리에 홀로 남았다. 물이 넘치는 순간, 자신을 간신히 달래며 지낸 시간이 실은 자기기만의 연속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할까.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본다. 시간은 거꾸로 흐르기 시작한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사는 게 녹록치 않다면, 인간관계가 비틀렸다면 되묻게 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나는 죽을 것처럼 힘든데 다들 잘 살고 있구나. 억울해. 내가 뭘 잘못했을까? 아니,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사람, 그 쓸쓸함에 대하여」 중에서)
강경희의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교도소라는 특정한 공간에 갇힌 인물의 내면을 서간문 형식을 취하여 적극적으로 토로한다는 것이다. 편지는 듣는 사람을 설정하고 자신의 사정과 마음을 적어내는 글이다. 내밀한 고백이 펼쳐진다. 누구에게 말하든, 독자는 화자의 목소리를 가까이서 듣는 수신자가 된다. 「그 여자의 창(窓)」의 화자는 이모에게 자신을 옭아맨 ‘살(煞)’의 이력에 대해 고백한다.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운명, 목숨보다 간절히 원하는 사람까지 불행하게 만들었다. 이모에게 과거를 말하면서, 과거에서 놓여나는 살풀이가 된다. 또다른 소설 「선택」은 교도관과 죄수 민희진의 친구였던 정인과의 편지로 전개된다. 편지의 수신자인 정인은 친구 희진에 의해 연인을 잃었다. 교도관은 정인에게 희진 대신 용서를 구하지만 정인은 단호하다. 과거의 비극이 인물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될지언정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고.
표제작 「고향」은 자신의 과거 시간이 고인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공간의 회귀는 자연스레 회상과 맞물린다. 비워내야 채워진다. 받아들여야 사로잡히지 않는다. 과거를 말하는 것은 되풀이를 막겠다는 의지의 소산이다. 또한 고여 있는 것을 넘쳐 흐르게 하는 출발점이 된다. 소설집의 마지막에 놓인 「여자, 엄마」는 엄마를 보내주며 나를 놓아주는 이야기다. 이별의 순간은 끊어내기가 아니라, 보내주고 떠나가는 움직임이 만나는 자리다. ‘안녕’이란 말은 작별인사이며 또한 새로운 시작을 반기는 말이기도 하다. 겨울은 가장 추운 계절이며 동시에 봄의 전조이듯. 끝은 그렇게 시작과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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