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
최윤경 시인은 은둔의 시인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침묵의 시인이었고 고요의 시인이었다. 그러한 최윤경 시인이 시집을 한 권 내더니 버쩍 그 자리에서 일어나 길을 떠나 먼 길 위에 서고 있다. 아니, 그 길은 가까운 길, 오히려 내면의 길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새롭게 떠난 그 길에서 시인은 ‘나’의 존재와 함께 ‘너’를 읽어내고 있다. 이것은 아주 작은 일 같지만 아주 큰 일이다. 외연의 확장은 물론이고 시야가 확 열리면서 세계가 새롭게 밝아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시인이든지 자기 샘물만으로는 평생 시를 쓸 수 없는 일이다. 때가 되면 타인의 물을 받아 내가 저수지가 되는 시기가 온다. 지금, 빠른 것 같기는 하지만 최윤경 시인은 바로 그 저수지의 시기에 이른 것 같다. 어디까지나 샘물을 잃지 않은 저수지여야 한다. 그러니까 ‘샘물을 품은 저수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로지 내 설움, 내 기쁨만으로 시를 이루는 건 아니다. 남의 설움, 남의 기쁨을 받아들여 내 설움, 내 기쁨으로 바꾸는 단계다. 그렇게 하는 동안 시인은 보편성이 무엇인가 그 아름다움을 깨닫게 될 것이고 세상에봉사하고 도움이 되는 시를 낳기도 할 것이다.
- 나태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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